[민들레의 책읽기⑦] 사춘기의 뇌, 위험과 희망의 파도타기

▲ 십대들을 이해하는 새로운 모색, 뇌과학은 청소년 이해를 위한 획기적인 발견이 되고 있다. 바버라 스트로치 지음.
도대체 나는 어떤 혼령에 씌웠던 것일까? 지금도 20년 전 여름의 순간적인 결정과 후회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결행했던 일탈을 이해할 수 없다. 숱한 이유를 대면서 그 시간의 나를 이해해 보려고 했었다. 어떤 때는 부모님과의 무언의 갈등을, 어떤 때는 서울로 가고 싶었던 유치한 동경을, 어떤 때는 자기가 했던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나의 어설픈 의리 때문이었다고 해 보아도, 그때 아무도 모르게 잠적한다는 말에 유혹된 나의 정신과 기어코 표를 끊어 부산으로 향하는 카페리를 탔던 나의 몸은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덩어리로 남았다. 그것이 뭔가 저지르고 싶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욕망이었다면 그 욕망은 이후 내 생의 발목을 잡아 옴싹달싹 못하게 얽어내는 역할을 충분히 했고 일단 저지른 일은 깨진 그릇의 넘쳐 나는 물처럼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 시간의 수레를 타 버린 후였다. 잠적한다는 문학적 용어에 매료되는 그 일은 사실 어떤 갈망이었다기보다는 폭풍과도 같은 충동이었다. 그리고 이후 나는 내내 그때의 그 시간을 후회 속에 보냈다. 조절할 수도 있었던 충동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로 나를 붙들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마음에 들었다 안 들었다 해?” 힘없이 굽은 아들의 어깨가 괜히 마음에 걸리는 걸 눈치 챈 남편의 질문이다. 나, 의욕 없음, 나, 말하기 싫음, 나, 기분 나쁨, 등등의 메시지로 읽히는 아들의 굽은 어깨와 흐느적거림은 종종 내 속을 긁어 놓는다. 충분히 내 아들을 사랑하고 있으며 아들 없이 어떤 무엇도 중요한 게 없을 것 같이 굴다가도 아들에게 속사포처럼 화풀이를 해 댈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좋은 엄마 되기 같은 것은 나 모른다. 정말 속상해 죽겠다. 이렇게 속상해 가면서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면 나 싫어!!! 나 싫다구!!! 하고 악을 쓰고 싶어진다. 이럴 때 거의 나는 아들에게는 좋은 엄마가 되고자 하는 의지 따위는 벗어던진 야생의 짐승 모습을 한 공포의 엄마가 되기 일쑤다. 그 동안 쌓아두었던 아들에 대한 불만이 범람해서 나 먼저 그 격랑에 휘몰리다 보면 내 몸이 병이 날 것 같다. 다음 날 친구들이랑 모여 아이들 교육에 대해 이야기 할라치면 또 침이 마르게 자랑을 하게 될 이 아들이 가끔 내 마음을 긁어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나란 사람이 공포와 위협의 존재가 되도록 하게 하는 데는 뭔가가 있다. 내 문제일까? 아니면 아들의 문제일까. 그도 아니면 아들과 내가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인가, 또 그도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문제도 아닌 문제인가.

▲ 아이들, 만 세 살은 태아 때부터 발달한 뇌가 가장 발달하는 시기로 알려졌다.
나의 젊은 시절의 충동에 대해 이해하고 싶었고 지금 아들이 보내고 있는 시기에 대한 이해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골랐다. 책의 저자는 사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키우기 전까지는 청소년기에 대해서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뇌의 문제라면 더욱 그랬다. 자기가 뇌를 전공으로 연구하는 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기의 뇌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 데는 우리가 지금까지 믿고 있었던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다.
대개 우리들은 태아 때의 뇌에 대해 알고 있고 태아 때부터 성장을 거듭하던 뇌는 만 세 살 즈음에 폭발적으로 발달한 후에 만 8살 전후로 거의 완성된다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이 스스로 아이를 키워보면서 사춘기를 전후해 자신의 아이들이 겪고 있는 변화가 혹시는 뇌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 MRI와 같은 첨단 의학 기계가 도입되고 그 안전성이 증명되면서 청소년의 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1990년대 중반부터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제 더 이상 뇌가 만 8살을 전후해서 성장이 멈춘다는 사실을 믿지 않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동물실험은 물론 청소년을 대상으로 직접 연구한 결과에서도 이제 청소년기의 뇌가 이상하리만치 성장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청소년기의 뇌에 대한 연구 보고서 같은 책이면서 아이들을 잘 키운 경험 많은 선배가 조곤조곤 말해주는 것처럼 십대 청소년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우리가 겪고 있는 아이들과의 경험과 당황이 미국이라고 해서 또는 유럽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는 것도 재미있다. 또한 이 책을 읽다 보면 뇌 과학, 그 중에서도 청소년의 뇌에 대한 연구가 현재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십대 청소년들의 보편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십대들의 행동과 그 행동을 유발시키는 뇌에 대한 연구는 결국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면서 당황해 하는 어른들의 문제를 연구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이 세상에 나온 여러 가지의 이론으로 아이들을 이해하고 싶어 하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던 셈이다. 과학자이면서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저자의 경험 때문인지 그녀의 이야기 방식은 친근하다. 과학자들의 연구를 파헤치면서 지금 바로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문제처럼 십대들의 문제를 꺼내어 이야기하는 방식은 이 책을 보다 더 수월하게 읽게 한다.

요즘 십대들의 행동은 우려할만한 수준으로 위험도가 높아졌다. 위험한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 이 책에서 알려주는 대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그들의 뇌 탓이겠거니 하며 그들을 여유롭게 이해한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행동을 제지하고 바르게 인도해야 하는 어른들로서는 또 다른 고민이 쌓여가게 된다. 보다 더 유혹이 많아지는 사회와 보다 더 경쟁이 심해지는 사회에서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고 경쟁력도 잘 갖춘 아이로 키워야 하는 어른들은 자식 교육에 관한한 무거운 숙제가 점점 더 무겁고 힘에 부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뇌가 발달하면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일은 희망이면서 동시에 위험한 통과의례다. 저자는 그러나 낙관적인 전망을 한다. 앞으로 뇌과학의 발달이 교육제도 개선은 물론 사회 전반에 걸친 가치관을 조정해 주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아이들은 위험과 희망의 아슬아슬함 줄타기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라는 것을 부모들이 제대로 받아들이기를 권고한다. 출렁이는 물결 속에 성장을 향한 변화의 에너지가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아이들에 대한 기대치를 조정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 자신의 행동 또한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청소년기라는 안개를 건강하게 잘 지나가게 하기 위해 부모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등과 관련해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한 번에 한 번씩, 천천히 조용하게 반복해서 이야기 하는 방식, 아이들에게나 우리들 자신에게나 좀 더 관대해질 필요를 저자는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사회가 대단히 압력이 심한 사회라는 걸 부모들이 인정하고 그들이 방황하고 고민할 시간도 허용해 주어야 한다는 게 거듭되는 저자의 생각이다.

아이들에 대한 뇌과학이 현재의 교육제도라든지 사회 전체의 구조를 바꾸기는 요원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을 제대로 잘 키우는 것이 내가 아이에게 가진 진정한 희망인 이상 나 먼저 아이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아이에 대해 거는 기대가 무엇인지를 점검할 때다. 그러니 청소년기의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같이 폭발적으로 성숙하여야 할 시간이 마련된 셈이다. 그러니 이제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할 때가 되었다. 성장의 혼란 속에서 낙관적인 의지를 어떻게 잘 꾸려나가며 살아가는지 그 과정에서 가꾸는 노력과 실천에 따라 나와 아들은 의미 있는 결실을 얻을 것 같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