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유도시의 정책결정 논리와 사회제도에 대한 공적신뢰

19세기 중반 이후 농업사회로부터 산업사회로의 급속한 전환이 진행된 미국사회의 배경을 연구한 사회학자 주커(Zucker, 1986)는 이러한 성장배경의 동인(動因)으로 신뢰유형의 변천과정을 제시하였다.

소규모 동질적인 공동체 기반인 농업사회였던 미국으로 유럽 및 아시아 국적의 이민자 행렬이 급증하면서 기존 인적교류라든지 주변 평판에 의존한 상거래 관행은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규모의 확대와 더불어 이질성이 증가된 미국이 극심한 갈등의 여파로 분열되지 않고 통합사회로 변모된 이면에는 공식적인 제도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주커(1986)는 인적교류 또는 주변 평판에 근거한 신뢰를 1) 과정의존적 신뢰, 혈연이나 인종처럼 귀속적 특성에 근거한 신뢰를 2) 특성의존적 신뢰, 그리고 공식적인 사회제도에 근거한 신뢰를 3) 제도의존적 신뢰로 명명하였다.
 
이탈리아의 중북부 지역보다 사회경제적 성취수준이 미약한 남부지역의 상황을 연구한 퍼트남(Putnam, 1993)에 의하면 남부지역에 만연한 사회제도에 대한 불신의 여파로 출현한 마피아로 인해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악순환이 강화되었다. 즉, 공식적인 제도를 불신한 남부의 거주민으로서는 상대방의 기만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응징능력이 있는 집단의 보호를 요청하면서 마피아가 성장하게 되었다.

결국 보호의 대가를 공식적인 기관에 세금의 형태로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마피아에게 전달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경제성장은 지체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후쿠야마(Fukuyama, 1995)는 고신뢰 수준의 국가와 저신뢰 수준의 국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제도의존적 신뢰를 제시하였다.
 
사람과 상품, 자본의 자유이동을 허용하는 국제자유도시의 환경은 주커(1986)가 연구한 미국사회의 단면과 유사하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섬의 특수성이 반영되어 동질성 수준이 높은 제주도에서 국제자유도시의 기본전제인 문호의 전면개방을 추진하면 이질성의 수준은 급속히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천차만별의 문화적 차이로 초래될 오해를 사전에 최소화하고 발생한 갈등관리의 성공여부는 공식적인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즉, 기존 제주도에서 통용되던 기준의 일방적 수용을 강요하거나 명확한 원칙의 부재로 일관성이 부족하다면 국제자유도시로의 실현가능성은 불투명해진다. 결국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에 부합되는 제도의존적 신뢰가 제주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존재해야 함을 의미한다.
 
공식적인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정책결정과정의 투명성, 정책기조의 일관성, 그리고 정책의 논리성이 전제되어 한다. 극소수 엘리트 집단에 의한 비공개 정책결정의 관행으로부터 정책결정의 전 단계에 참여의 폭이 확대되는 방식이 투명성이다. 최상위 목표에 부합되도록 정책은 위계에 의해 구성되어야 하고 동시에 기존 정책기조 방향이 유지된다면 일관성이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정책의 논리성이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에 근거한 정책결정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국제자유도시 실현이 최상위 목표로 설정된 제주도의 정책이 투명성과 논리성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여론조사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여론조사의 결과를 정책결정의 기준으로 적용한 공식적인 사회조직으로의 신뢰수준은 높아진다. 이런 맥락에서 2007년 5월 해군기지 유치 및 2008년 7월 영리병원 도입유무를 여론조사로 결정한 제주도의 정책은 국제자유도시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충족시키고 있다.

정책결정과정의 주체로서 일반대중의 참여로 정책의 투명성이 확보되고 합리적 이론을 토대로 적용된 과학적 조사기법으로 논리성이 담보된 여론조사는 일관성이 병행되어야만 제도의존적 신뢰의 수단으로 인식된다. 즉, 여론조사로 결정된 정책의 효력은 법률적인 정책과 동일하며, 여론의 동의가 전제되지 않는 한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 없다.
 
2008년 7월 영리병원 허용유무를 결정한 여론조사 결과 1.7%의 근소한 차이로 우세한 반대여론 결과를 수용하여 영리병원 도입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불과 6개월도 경과되지 않는 시점에서 재검토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제주도정의 행위는 일관성이 중시되는 정책신뢰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여론조사의 결과가 환경변화의 요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될 경우 공식적인 사회조직, 즉 제주도정은 이러한 상황변화를 설득논리로 활용할 수는 있지만 독자적인 변경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여론조사의 결과를 여론조사로 번복한다면 여론조사 자체의 신뢰성이 상실되는 문제점을 감안하면 유일한 대안은 주민투표를 적용하는 것이다.
 
영리병원 불허를 결정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재판단할 목적으로 주민투표가 실시된다면 동일한 논리가 해군기지 여론조사 결과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즉, 해군기지 유치를 찬성한 여론조사의 결과도 주민투표방식으로 재판단을 구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주민투표에 소요되는 비용을 감안하면 단일 조사는 비효율적인 관계로 영리병원 추진과 해군기지 유치를 묻는 주민투표를 동시에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소요예산의 확보문제 및 주민투표의 중압감이 부담스럽다면 2010년 6월에 실시될 지방자치단체 선거와 연계하는 것이다. 영리병원과 해군기지의 찬반유무를 선거공약으로 명시한 후보의 당선유무를 근거로 해당 정책의 수용여부를 재판단하는 것이다. <제주의소리>

<문성민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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