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철의 제주해안 따라가기⑨] 구엄리해안

애월해안도로를 따라가다가 극동방송 앞에서 다시 바다로 다가선다. 대략 이 곳부터가 구엄리일 것이다. 지나는 마을사람에게 물어서 하귀2리와 구엄과의 경계를 묻고자 했으나, 지나는 사람이 없다. 가끔식 렌터카만이 무심히 지나고 있다. 그들에게 비친 제주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깎아지른 해안의 절벽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그 위를 유유히 차를 타고 지나는 이들이 바다의 빛나는 생명들과 바다와 함께 토하는 잠녀의 숨비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을까? 군림하듯 지나는 그들이 안타깝다. 극동방송에서 다시 바다로 내려선다.

▲ 바다직박구리 한마리가 날카로운 돌인 양 앉아 있다.ⓒ홍영철

맹수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아아용암의 갯바위가 이어진다. 차가워진 바다에 여전히 잠녀들의 숨비소리가 애달프다. 아주 가까이서 자맥질을 하고 있는 그녀들을 카메라에 담으려고도 했으나, 셔터를 누르면 그들의 삶이 박물관 한구석의 전시물처럼 보일까 두려워 물러선다. ‘애달픈 숨비소리’ 운운하는 감상적인 구경꾼인 나는 날카로운 바위 위를 걷는다. 그들이 바다에 나들며 무수히 맨발로 걸었을 그 길이다.

▲ 소금을 만들었던 소금빌레다. '호겡이(물아찌는돌)'를 구분한 찰흙두렁은 사라져 버렸다.ⓒ홍영철

어느덧 풍경이 바뀌어 평평한 너른 바위로 된 ‘구엄소금빌레’에 이르렀다. “소금 나와라”하는 한마디에 엄청난 소금을 쏟아냈던 동화 속의 그 맷돌 대신에 그저 넓은 바위로 이어진 900여 평의 소금밭이 있을 뿐이다. 동화 속 소금을 쏟아냈던 그 맷돌은 단지 아득한 바람이었을 뿐이다. 소금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구엄소금빌레’는 해안을 따라 길이가 약 400m, 폭이 가장 넓은 곳이 50m 정도다. 바다와 만나는 곳은 곳곳에 주상절리가 발달되어 있는데, 소금빌레 위의 거북등껍질 모양의 무늬도 이 곳 전체가 주상절리의 암반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 마을사람들은 이 소금빌레를 농사를 짓는 밭과 똑같이 생각해서 경계를 나누고, 매매도 했다고 한다. 농사를 짓는 밭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했다고 한다.

▲ 곤(아래아)물을 임시 보관하는 저장고인 '혹'이다. 돌로 쌓아서 흙을 발라서 항아리구실을 했다.ⓒ홍영철

소금은 겨울철 일조량이 극히 적거나, 파도가 심해 빌레를 적시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시사철 만들어졌다. 먼저 찰흙으로 주상절리의 금을 따라서 높이 15cm가량의 칸을 만들었다. 이를 ‘두렁막음’이라고 하는데, 두렁을 막아서 만든 칸을 ‘호겡이’ 또는 ‘물아찌는돌’이라고 불렀다. ‘물아찌는돌’은 표준말로 ‘물을 앉히는 돌’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바닷물을 떠다가 놓는 곳을 말한다. 한 가정의 소금밭이 평균 20~30평이었다고 하고, 한 가정의 소금밭에는 6개 정도의 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다음은 바닷물을 떠다가 ‘호겡이’에다 채운다. 바닷물이 어느 정도 증발하여 염분농도가 강해진 소금물을 ‘곤(아래아)물’이라고 하고, 이 ‘곤(아래아)물’을 따로 정해진 ‘호겡이’에 옮겨 놓는다. 제주도는 비가 오는 날이 많아 비가 오면 염분이 높은 소금물을 종종 ‘혹’이라는 별도 저장소에 보관하기도 했다. 지금도 ‘구엄소금빌레’의 한 켠에는 돌로 쌓아 만든 ‘혹’이 있다. 겨울철처럼 일조량이 적은 때에는 ‘혹’에 보관했던 ‘곤(아래아)물’을 솥에 넣어 불을 지펴서 소금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에서 생산된 소금은 제조방법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는데, 불로 때서 만들어낸 ‘솖(아래아)은소금’과 ‘호겡이’에서 끝까지 증발시킨 ‘돌소금’이 그 것이다. ‘돌소금’은 ‘솖(아래아)은소금’에 비해 굵고 품질이 좋아 훨씬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서해안처럼 넓은 염전이 없는 제주에서 작은 규모나마 소금을 만들어낸 이 곳은 제주민들에게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음이 분명하다.

▲ 소금빌레와 바다가 만나는 곳은 주상절리로 이루어져 있다. 오른쪽의 사진은 갯녹음현상이라고도 불리는 백화현상으로 곳곳에서 관찰된다.ⓒ홍영철
지금 소금밭에는 소금이 없다. 등지고 걸어가니 바닷바람에 소금냄새가 먼저 앞에 서 있다. 그 냄새 속에 진한 땀냄새, 눈물냄새가 스며있다. 제주바다는 땀과 눈물로 된 것이 아닌가?  어이없는 생각도 든다.

※ 홍영철님은 제주의 새로운 관광, 자연과 생태문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대안관광을 만들어 나가는 (주)제주생태관광(www.ecojeju.net )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주의 벗 에코가이드칼럼’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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