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칼럼] 새해 아침 ‘歷史'를 생각하며

한 동안 잊고 지냈던 ‘역사(歷史)’의 의미를 새해 아침 새삼 떠올려 봅니다.

카(E.H.Carr)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문을 남겼습니다. 현재를 거울삼아 과거를 통찰하고,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하여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의미를 다시 거론하는 것조차 무색한 유명한 문구입니다.

그러나 요즘 형국은 이 보다 맑스의 얘기가 더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이명박 정부 1년, 반민주악법 제정을 둘러싼 여야 대치와 언론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 크리스마스 연휴기간에 터져 나온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습. 그리고 제주...

반복되는 것 같은 역사를 보며 ‘희극’으로 받아들일 만큼 마음이 여유롭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오히려 ‘비극’만이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니...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반복 같은 역사이지만 조금씩이라도 진보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얼음장 밑에서도 물은 흐르고, 밤과 겨울이 깊으면 새벽과 봄이 멀지 않은 것이니,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밀레니엄을 한참 넘긴 2009년에 다시 되새길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70년대 유신체제와 80년대의 군부파시즘 체제하에서 숨죽여 아침이슬을 부르던 그 때에나 희망했던 그 바람을...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제주

제주는 어떤가요?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MB정권의 난맥상이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제주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형국입니다. 평화의 섬 제주에 ‘해군기지’가 막무가내로 추진되고 있으며, 그동안 도민사회의 반대로 접었던 ‘영리병원’, ‘한라산케이블카’, ‘내국인카지노’ 등등이 줄줄이 내년에는 추진될 것으로 예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의 의미를 찾아보기는커녕 ‘역사의 비극적 반복’만 떠올려질 따름입니다.

물론 이는 제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국적으로 ‘개발독재의 지방적 변형’이 풍미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를 빌미로 정부는(지방정부 포함) ‘지속가능성’에 대한 정책적 고려 없이, ‘좀더 크게, 좀더 많이, 좀더 빨리’를 모토로 하는 ‘성장만능 개발지상주의’라는 ‘개발중독증’에 빠져 있습니다.

자본의 요구라면 무엇이든 들어준다는 지나친 환대정신(?)이 주민주체 개발을 공허하게 만듭니다. 이미 제주도 곳곳이 ‘재벌들의 소왕국’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공동목장 뿐만 아니라 도민 공유자산인 국공유지를 헐값으로 재벌들에게 골프장왕국 용도로 팔아넘긴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해안변 주요 경관지역 조차 주인이 바뀌고 있습니다. 강정유원지를 사유화한 ‘풍림’을 필두로, 섭지코지를 점령한 ‘보광’, ‘현대’의 표선 해비치 등등... 국내 재벌도 모자라 이제는 ‘버자야’라는 해외자본에게까지 아름답던 예래동 해안은 팔려나갔습니다.

주인이 바뀌고 있는 제주

종종 행정의 치적으로 홍보되는 자본유치(실적)가 절대선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건설과정에서 떡고물식으로 나눠주던 지역건설업체들의 참여도 점차 축소되고 있다는 소식 듣습니다. 재벌들의 소왕국은 이른바 리조트단지로서 단지 내에서 모든 서비스가 가능합니다. 골프장도 이제는 골프텔이 생겨 그들 왕국 내에서 모든 게 가능해 졌습니다.

그 동안 수조원에 달하는 자본이 유치됐다고 하고 작년 580만명의 관광객 유치목표를 달성했다고 자축하고 있지만, 왜 도민들의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져만 가는지 주의 깊게 연구하고 살펴 볼 일입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리조트붐의 참담한 결과(버블붕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며, ‘개발이익의 역외유출’이라는 고전적 명제를 다시금 꺼내 볼 필요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역사를 두려워하시라

하여 정책책임석에게 다시금 한마디 고언(苦言) 드립니다. ‘역사’를 두려워하십시요! “역사는 항상 기록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혹여 많은 도민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현재의 개발정책의 결과가 제주의 가치와 정체성을 송두리째 훼손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이 ‘판도라의 상자’를 언제 누가 열었는지 분명히 기록되고 평가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는 분들 또한 나름의 관점과 애향심에서 비롯됐다는 것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대화’가 필요함을 절감합니다. 형식적인, 일방적으로 짜놓은 구조와 타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대화의 자리가 아니라 진지하지만 치열하게 토론하고 대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소통이 될 때까지... 합의가 안되면 ‘주민통합’을 위해 의제에서 빼는 유연함도 필요합니다. 제주의 미래를 결정한 중요한 의제이기에 그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도 나옴직 합니다. 그 정책이 진정 다수를 위한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설사 그 주장이 맞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억울하게 피눈물 흘리는 주민(강정같은)이 생기게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99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마리 양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자세라 저는 생각합니다.

강조되어야 할 ‘절차적 민주주의’

평소 존경하는 제주 원로분이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 인상 깊은 구절이 있습니다.

“이 땅은 우리가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얘기 속에 조금 어려운 듯한 단어인 ‘지속가능성’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 담겨 있습니다. 잠시 빌려 쓰고 있는 이 땅을 현재 사는 우리들이 맘대로 팔아버리고 훼손할 권리가 없다는 진리를 말해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발 눈을 들어 어머니 산 한라산과 어머니 가슴 오름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척빈민한 화산섬에서 삼무의 공동체정신을 이어왔던 선조들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4·3의 비극 속에서 ‘평화’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 우리 제주가 갖고 있는 ‘빛(光)’과 ‘가치’, 그리고 나가야 할 ‘방향’이 있음을 알게 될 터이니...

▲ 이지훈 편집위원 ⓒ 제주의소리
‘이어도’를 생각하며

신영복 선생은 제주를 “희망과 절망이,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있는 섬, 저항과 좌절, 승리와 패배가 응어리져 있는 섬”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어도'의 의미부여인 셈입니다. 그리고 “일몰 속에서 일출을 읽을 수 있는 열린 정신이 지식인의 참된 자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식인 되기가 참으로 어렵다(難作人間識字人)”는 매천 황현(梅泉 黃玹)의 시가 절실하게 다가오는 요즘, 새해 어디에서 일출을 맞던지 이러한 ‘결합의 지혜’를 함께 공유하였으면 합니다. /  (사)지역희망디자인센터 상임이사  이지훈<제주의소리>

<이지훈 편집위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