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나무의 겨울나기 1]

▲ 과수원 과수원은 잡풀과 잡목이 뒤섞여 밀림을 이루고 있었다. ⓒ 장태욱 귤나무
 
고향에서 귤 농사를 짓는 숙부로부터 반가운 전갈을 받았다. 주변에 방치된 과수원이 있으니 빌려서 농사를 지어보겠느냐는 거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과수원을 구할 수 없어서 못 짓는 것이 지금 제주도 농민들이 처한 현실이다. 찾아다니던 과수원을 구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귀가 솔깃해졌다.

땅 주인은 지금 서울에 살고 있다고 했다. 토지주가 먼 친척 농민에게 땅을 빌려줬는데, 그 농민에게 사정이 생겨서 관리를 제대로 못하게 되어 새로운 관리인을 찾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 넝쿨로 뒤덮인 귤나무들 수많은 넝쿨 식물들이 귤나무를 뒤덮고 있다. ⓒ 장태욱 귤나무

 
얘기를 듣고 찾아간 과수원은 오래 방치되었다는 것을 첫눈에도 알아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귤나무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여러 종의 넝쿨로 뒤덮여 있었고, 군데군데 잡목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수풀사이로 작년에 열린 귤들이 나무에 매달린 채 남아 있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데다가 나무에 먹을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으니 새들에게 이 같은 낙원이 어디 또 있으랴? 밀림으로 변한 과수원 여기저기서 새 지저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귤 나무에 매달린 귤을 새가 쪼아 먹다 남겼다. ⓒ 장태욱 귤

 
건강한 귤나무는 그 잎이 연중 짙은 초록빛을 띤다. 하지만 이 과수원에 있는 나무는 한결같이 잎이 누렇게 탈색되어 있었다. 몇 해째 거름을 맛보지 못한 데다가 잡초넝쿨에 가려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토지 주인은 귤나무의 상태를 잘 파악하고 있는 눈치다. 첫해는 나무의 기력을 회복하는데 만도 공이 많이 들 것이므로 임대료를 대폭 깎아 주겠다고 했다. 정상적인 과수원이 되도록 애써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계약을 체결한 후 먼저 해야 할 일은 귤나무의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선 가족들을 총 동원해서 잡목과 잡풀을 제거하기로 했다.

▲ 우진이 톱으로 베어낸 나무를 불가로 나르고 있다. ⓒ 장태욱 우진이
 
▲ 진주 톱으로 베어낸 나무를 불가로 나르고 있다. ⓒ 장태욱 진주

내가 톱을 이용해서 잡목을 베어 내는 동안 아내는 낫을 들고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는 넝쿨들을 잘라서 제거했다. 억새도 과수원 군데군데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낫으로 베어도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 것이 억세다. 어쩔 수 없이 삽을 들고 다니면서 뿌리째 뽑았다.

한 모퉁이에 모닥불을 피웠다. 제거한 잡목과 잡풀을 태워 없애기 위함이기도 하거니와, 추위를 달래기 위함이기도 했다. 모처럼 야외에서 불을 지피니 아이들이 무척 즐거워했다. 진주와 우진이는 아빠와 엄마가 잘라놓은 잡목과 잡풀들을 모아서 불가로 나르는 일을 했다.

▲ 모닥불 잡풀과 잡목을 태우려고 지핀 모닥불이다. 추위에 몸을 녹일 수 있어 좋다. ⓒ 장태욱 모닥불
 
그런데 아빠가 잠시 삽을 들고 억세 뿌리를 뽑는 동안 우진이가 보이지 않았다. 한쪽에서 잡목 줄기를 잡고 톱질을 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가는 가지 하나 자르고서는 으스댄다. 톱질 솜씨가 훌륭하다고 칭찬했더니 무척이나 좋아했다.

귤나무의 생장에 크게 방해가 되는 녀석들만 제거하는 데도 한나절이 넘게 걸렸다. 다음은 나무에 매달려있는 열매들을 제거했다. 새들이 쪼아 먹은 것이 태반이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나무에 매달린 채 시들어가고 있었다.

▲ 톱질 톱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몰래 톱을 들고 작은 나무가지를 자르고 있다. ⓒ 장태욱 우진이
 
 
봄에 꽃이 핀 이후부터 늦가을 열매를 딸 때까지 나무는 열매를 위해 모든 기력을 다 소진한다. 그래서 겨울은 나무에게 휴식과 회복이 필요한 시기다. 만약 늦게까지 가지에 열매를 남겨둘 경우에 나무는 치명적인 해를 입게 되고, 다음해에는 결실이 부실해진다. 마치 출산한 산모가 충분한 산후조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4인 가족이 하루 노동을 투입하고 나니 처음에 흉물스럽던 과수원도 이제 제법 볼 만해졌다. 물론 이 나무들이 체력을 회복해서 제대로 결실을 맺게 하려면 거름으로 영양도 보충해주고, 가지치기도 정성껏 해주어야 한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을 요량이면 낫을 들고 풀도 자주 제거해줘야 한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첩첩산중이다.

▲ 일을 끝낸 뒤 모습 귤나무에 붙은 넝쿨들과 잡목들을 제거하니 한결 시원해 보인다. ⓒ 장태욱 귤나무

그래도 우리 가족이 틈틈이 열정을 쏟을 수 있는 터전이 하나 더 생겼다는 사실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진주와 우진이가 이 과수원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달라고 서로 난리다. 귤을 재배하는 일이 더 보람있는 것은 아이들에게 일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주말이 기다려진다.<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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