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내 몸같이..."도시락 파동 우리 모두의 '죄'"
이웃을 내 몸같이..."도시락 파동 우리 모두의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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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영의 긴급제언] 결식아동 도시락 사건을 물건너에서 바라보며
해방 60주년을 맞이하며 또 한국동란 55주년...OECD가입 몇 주년...

얼마전까지만 해도 서귀포는 감귤산업으로 인해서 전국에서 '가장 잘 사는 마을'로 손꼽혔다. 이런 부잣동네에서 결식아동이 기백명에 이른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리와인드(되감기)되면서 가슴이 쓰리다.

왜구가 35년동안 할퀴고 또 외인부대가 쳐들어와 우리집안의 가장들과 쓸만한 청년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여버린 때, 그 와중에서 내가 태어났다. 동네에는 호열자(콜레라)라는 병마가 창궐하고...

그 와중에서도 우리 동네에서는 병에 걸려 죽어갔지만 굶어죽어가지는 않았다.

끼니가 모자라 미국에서 들여온 밀겨울(가축사료용)로 굶주린 배를 채워야 할 때도 있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조상적부터 물려받은 아이디어로 동네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망정 도움을 받지는 않고 우리 식구들과 마소를 먹였다. 항상 1년치 정도의 곡식(주로 보리와 조, 산듸 소량)과 촐(=꼴)을 비축해 두었다. 흉년이 들 때를 항상 염두에 두었다. 그해 거둔 곡식이나 촐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해 먹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집이 부농에 속한 것은 아니었다.

'4.3'으로 인해서 앞집 두집과 옆집 그리고 뒷집 모두 가장들이 몰살당하고 홀어미들이 가장인 극빈가정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뒤주나 항아리(통개)에 비축된 보리들을 퍼서 이웃들에게 굶어죽지 않도록 적당히 나눠주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한 말정도 주라고 하면 어머니는 거기에다 몇 되를 더 얹어서 내줬다. 특히 보릿고개를 넘기기가 너무나도 벅찼다. 봄철이 되어 농사일이 시작되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집에 도와주러 왔다. 어머니는 그 분들의 품싻을 계산해서 주로 보리나 조로 나눠줬다.

한 번은 모슬봉 앞에서 자갈밭 한 도르겡이에 보리농사를 지은 앞집 아주머니네가 있었는데, 군인들이 연병장을 만든다면서 밭임자 허락도 없이 불도저로 밀어버려 먹을 것이 전무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지은 보리단을 마차에 실어 그집 마당으로 가져다줬다. '곡물(보리쌀)을 가져다 주면 되지 왜 보리단으로 줍니까?'고 어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저들 손으로 보리단을 만져보고 타작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농사짓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는다'고...그리고 '거두어드리는 기쁨도 있다'고 할아버지는 대답하였다.

어머님이 폐암으로 모슬포 집에서 투병생활을 할 때 뒷집에 살던 아주머니 딸이 가끔씩 찾아와서 어머니 머리를 손질해 주고 가곤했다. 제주시에서 잘나가는 미용실을 한다고 했다. 너무나도 고마워서 동생에게 물어봤다. "어릴 때 제삿떡을 얻어먹었던 것이 너무나도 고마워서..."라고. 지금도 어머니 제삿날을 기억하고 제주를 들고 찾아온다.

결식아동 도시락 문제를 논하면서 왜 이런 옛이야기로 자랑을 하느냐고 어떤 독자들은 나를 힐난할 지도 모른다. 결코 자랑이 아니다.

나는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홈레스(노숙자)도 되어봤다. 내가 오갈 곳이 없어서 기숙사 지하실 벤치에서 자고 있었는데, 한 한국유학생 청년이 오더니만 자기가 거처하는 방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밤에 일하고 낮에는 공부하기 때문에 밤동안은 내방을 써도 된다'고 했다.

영어를 하루속히 배우고 싶어서 '성경공부'하는 그룹에 들어갔다. 그곳 학생들(모두 미국인들)이 얼마나 친절하고 봉사정신이 투철한지 그들의 행동에 내가 반해버렸다. 한국에서는 내 아내가 교회나가자고 조르면 '목사부자 만들어주기 싫다'고 하면서 거역했었다. 저들은 내 입을 것과 먹을 것들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공부와 일에 시간이 쫓겨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줄 알고 번갈아가면서 시간을 내어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놀아주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홀트아동복지 기관을 통해서 고아들을 수출하는 나라이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우리 부부는 미국에서 다섯 고아들을 키운 셈이다. 이제 모두 장성하여 출가하여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내 아내는 종종 김치찌게를 해서 퍼나른다, 끼니를 굶지 말라고.

내가 살고 있는 뉴욕 시내에서는 식당에서 배식하고 남아돌아가는 음식물은 '푸드 프로그램'에 의해서 수집되고 끼니를 굶는 노숙자들에게 배달된다. 주로 자원봉사대원들에 의해서 행해진다.

노약자들을 위한 '런치 프로그램'도 교회와 같은 공동체를 통해서 정부보조를 받아서 운영하고 있다.

'내새끼'밖에 모른다면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가 될 수가 없다. '이웃을 내 몸같이'만 생각한다면, 이웃에 사는 어린이가 '내새끼'라고 생각한다면, 한 끼 점심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나라'에서 주는 2500원은 없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

혹시나 내 마음속에 '저새끼'가 죽어야 '내새끼'가 산다는 치열한 경쟁의식 때문에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 결국은 이런 우사스런 일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반성해 봐야 한다. 급식관련 공무원들만 나무랠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죄'다.

결식 아동의 심각한 문제는 한끼 끼니를 넘어서 이웃과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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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2005-01-13 10:02:10
선생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1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