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민의 상상의 섬] 지속가능한 개발의 관점

한라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논의가 공론화된 시점을 제주도에서 6만원의 조사비용을 책정한 1962년으로 소급한다면 40여년의 시간이 경과된 현 시점에서도 사회적 합의는 도출되지 못하고 있다.

공론화가 시작된 1960년대 초반부터 경제적 파급효과에 주목한 찬성 입장과 환경보전의 미래가치를 강조한 반대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현 시점인 2009년도에도 케이블카 설치계획은 무산된 상태이다. 결과론적으로 환경보전의 논리가 채택된 한라산은 성산일출봉과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와 아울러 2007년 7월 국내 최초의 세계자연유산 목록에 등재될 수 있었다.
 
한라산에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고 가정하면 탐방객의 증가로 일정수준의 경제적 효과는 발생하지만 역으로 탐방객 증가로 일정수준의 환경훼손은 불가피해진다. 무엇보다도 케이블카 운행을 가능케 하는 인공구조물의 존재로 인해 자연경관의 가치가 저해되므로 세계자연유산의 관할기관인 유네스코의 엄격한 심사기준 충족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유사한 사례로 광범위한 산악면적에서 자생하는 각종 동식물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로부터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연중 탐방객의 방문이 끊이지 않은 설악산을 국내 최초의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고자 한 국가 차원의 시도는 실패하였다.

지질학적 / 생물학적 관점에서 설악산 및 한라산과 유사한 가치를 평가받고 있는 산악지형은 세계 도처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지만 케이블카가 설치된 설악산과는 달리 한라산처럼 인위적 개발이 최소화된 공간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논의가 본격화된 1960년대 초반부터 환경보전의 논리를 강조한 반대 입장에서도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적 파급효과를 강조한 찬성논리에 동조하는 여론이 강화되면서 환경보전으로 인한 편익을 유형화할 필요성이 시급한 반대 입장에서는 국내 최초의 세계자연유산 등재는 적절한 대상이었던 것이다.

결국 팽팽한 찬반양론으로 40여년 가까이 케이블카 설치가 무산되면서 후속세대는 의도치 않은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후속세대를 배려하여 케이블카 설치를 보류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후속세대에게 한라산을 세계자연유산목록으로 등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유산으로 남겨 준 것이다.
 
서구의 합리성에 근거한 과학기술의 무한한 잠재력을 확신하고 있던 1970년대 초반 당대 석학들의 모임인 로마클럽에서 제시한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는 비단 환경론자의 근거이론으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장지상주의자에게 영향을 주었다. 즉,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서 환경의 중요성이 인식된 결과, 이른바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라는 표현이 도출되었지만 현 시점에서도 명확한 개념은 정립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표현의 일반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계기는 1987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위원회'(WCED)에서 발간한 보고서인 ‘우리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 일명 브룬트란트 보고서(Brundtland Report)에서 정립한 개념정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미래세대의 욕구충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으로, 만약 한라산에 케이블카가 설치되었다면 미래세대로서는 세계자연유산 등재라는 욕구충족이 사실상 불가능해졌을 것이다.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위원회(WCED)에서 정의한 ‘지속가능한 개발’의 전제조건은 미래세대의 욕구충족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개발된 최고의 과학기법을 적용하더라도 단기시점의 미래예측의 적중률도 높지 않아 역술이나 샤머니즘 등의 비과학적 방식을 대안으로 선택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최소한 15년이나 30년 후인 미래세대의 욕구를 과학적 방법으로 예측하는 건 명백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관계로 현 세대로서는 최대한의 잠재력을 남겨 주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2007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한라산의 원형을 최대한 보전하는 것이 현 세대의 의무이다. 골프장의 난립으로 중산간의 이용 잠재력 대부분을 소진해 버린 현 세대에서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줄 유산은 한라산밖에 없다. 따라서 한라산 케이블카의 결정권한은 단기적으로 15년 후인 2020년 또는 장기적으로 30년 후인 2035년을 즈음하여 미래세대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마하트라 간디(Gandhi)는 “지구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만 한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도 부족하다”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한라산은 제주도민과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공유된 자산으로 특정계층의 욕구충족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케이블카 설치로부터 한라산을 보호한 전 세대 덕택에 현 세대에서 세계자연유산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면, 미래세대의 욕구충족이 가능해지도록 최대한의 잠재력을 남겨 주는 것이 현 세대의 당연한 의무이다. <제주의소리>

<문성민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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