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민의 상상의 섬]제주설화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의 적용

한라산은 예로부터 제주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정신적인 지주일 뿐만 아니라 한민족 전체의 신성시된 장소로 간주되었다. 제주인은 산정 화구호인 물장오리 오름과 한라산의 영실기암(奇巖)을 제주 전래의 설화(說話)인 설문대할망 및 오백장군(五百將軍)과 자연스럽게 결부하여 정체성을 형성한다.
 
또한 한라산은 백두산과 금강산과 아울러 민족의 3대 영산(靈山)으로 오래 전부터 신성시되어 통일을 염원하는 상징적 의례로서 백록담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의 물이 합수(合水)되고 있다.
 
이처럼 한라산은 제주인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거주하는 민족 전체에게 신비의 대상으로 각인된 관계로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논의는 전국적인 관심사로 대두되어 왔다.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집단에서는 환경보전의 당위성을 논리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의 결과 반대의견을 피력한 제주도민 전체가 환경훼손에 대한 우려감으로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세계적인 관광목적지를 지향하는 발전전략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관광기반조성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야기되는 환경훼손은 일정수준 범위에서 용인되어 왔지만 친환경적 공법을 전제로 한 케이블카 도입계획은 번번히 반대여론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즉, 한라산 케이블카 조성계획을 반대하는 여론의 기저에는 환경파괴의 측면도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제주 정체성의 근간인 신비성(神秘性)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지역으로 거론되는 영실기암은 실수로 어머니인 설문대할망을 살해한 오백 명의 아들이 죄의식을 참지 못해 기암괴석으로 형상화된 장소로 구전되고 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어머니를 향한 아들의 사랑이 심리적으로 왜곡되어 아버지를 경쟁자로 간주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미움감정이 행동으로 표출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 측면에서 오백장군의 이야기는 양면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즉, 서구사회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의 심리적 상태를 묘사한 것이므로 실수로 어머니를 살해한 제주의 설화는 정반대 상황인 것처럼 보이지만 제주 전통설화에서 등장하지 않는 아버지의 존재, 즉 설문대할망의 남편은 이미 아들인 오백장군에 의해 살해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이처럼 제주설화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자녀들을 먹어치운 아버지 크로노스(Cronos)와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새로운 신화의 시대를 개막한 제우스(Zeus) 관점으로부터의 해석도 가능하다.
 
한라산 영실기암의 스토리는 학술적 연구주제로의 가치가 무궁무진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흥미 진지한 이야깃거리로 평가될 잠재력도 충분하다. 이러한 제주의 전통설화를 접하면서 성장한 제주도민이 작금의 과학문명의 시대에서도 제주설화를 근거 없는 비합리적인 미신으로 치부하지 않는 기저에는 보편성과 특수성이 동시에 내재된 제주설화의 독특한 구조에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인 방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정서적으로 제주설화의 유무형적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제주도민으로서는 제주설화의 중심지인 한라산의 신비성을 훼손하는 케이블카 설치에 깊은 우려감을 표명하고 있다.
 
즉, 제주설화의 신비성을 저해하는 인위적 개발은 지양하고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리스 / 로마신화를 모델로 제주설화의 세계화를 모색하는 콘텐츠 개발방안이 지향되어야 한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관광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차별화 방안으로 스토리텔링(storytelling) 기법이 주목받고 있다. 관광시장에 뒤늦게 합류한 관광목적지로서는 낮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고급화 전략을 채택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대동소이한 관광목적지 간의 차별화에 실패하면서 재정파탄의 위기에 직면한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치킨게임(chicken game)의 딜레마에서 탈피할 수 있는 차별화된 방안으로 스토리텔링의 효율성이 입증되면서 관광목적지에서는 독특한 이야기 발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차별화된 이야기의 발굴은 결코 용이하지 않은 관계로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창조하려고 해도 신비성이 형성되지 않아 고민하는 관광목적지도 부지기수인 점과 비교해 보면 스토리텔링의 원재료로서 제주설화의 잠재가치는 무궁무진한 것으로 평가된다.
 
제주 전통설화의 중심지인 한라산에 케이블카가 설치된다면 일정수준의 이용수익은 발생하겠지만 신비한 매력이 소멸되면서 제주설화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의 성공가능성은 희박해지게 된다.
 
즉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따라 탑승요금이라는 눈앞의 단기이익을 쫓는다면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제주설화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의 잠재가치에 집중한다면 케이블카 설치는 미래세대의 선택으로 남겨주어야 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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