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 배제' 첫 케이스

"내가 만약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 또 만약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이 사건을 진상조사하고 국가가 잘못했으면 배상하도록 하겠다."

2002년 봄,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자는 제주도 모슬포 속칭 '섯알오름 학살터'를 방문하고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 피학살자 유가족들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노무현 후보는 경선 1번지인 제주도에서 승리한 후 승승장구하여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나는 스스로 '뉴욕 노사모'가 되어서 밤낮없이 뛰었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문자 그대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약속을 지켰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진상조사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진실/화해 위원회'가 구성되어 진상조사를 수년째 해오고 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특별법'과는 별개의 법이다. 제주도 예비검속자 학살사건 진상조사는 2007년 11월에 마무리되었다.

울산/포항 지구 보도연맹 학살 사건도 필자가 당시 포항지구 해군사령부 사령관 남상휘(당시 뉴욕거주, 작고)를 찾아내어 <한국일보>(2000년 1월)에서 보도한 바 있다. 그는 "약 250명을 함상에서 처형해 포항 앞바다에서 수장했다"고 진술했다.

필자는 그동안 "대전형무소 '정치범' 처형 사건"(1950년 7월 초, 1800명), "전주형무소 '정치범' 처형 사건"(1950년 7월 중순, 1600명), "제주도 예비검속자처형"(1950년 8월 약 1000명) 등을 조사했고 반인륜적 전쟁범죄에 대해 꾸준히 '공소시효 배제'를 주장했다. 즉, '국가가 그 사건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순간부터 공소 소멸시효가 적용된다'는 합리적인 주장이며 또 국제법에 의하더라도 '민간인 집단학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2009년 2월 10일, 중앙지법 제19민사부(재판장  지영철, 판사 김호석, 판사 정현미)가 그것을 받아들였다. 국가가 울산 국민보도연맹 희생자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유족들은 2007년 11월 27일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정을 통해서야 희생 경위 등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며 "공소시효가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유족 508명은 총 200여억원을 보상받게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제주도 조그만 산골짝에서 유가족들에게 한 약속이 이제서야 지켜진 셈이다. 물론 아직 대법원 판결까지는 또 험난한 고비를 지나야 한다.

'만약'이란 약속이 이루어질 확률(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것도 '만약'을 두 번씩이나 했다면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일어난 것이다. 기적이다.

▲ 이도영 편집위원 ⓒ제주의소리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 기적이요, 또 '탄핵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것도 기적이요, 기세등등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기세를 무력화시키고 '한국전쟁 전후민간인 학살 진상조사 특별법'을 제정하고 '진실/화해 위원회'가 꾸려진 것도 기적이다.

중간에 풀뿌리 '촛불'이 거대한 배후세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맺힌 영령들과 또 유가족들의 간절한 염원 그리고 신의 가호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꿈인 것만 같다.<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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