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날, 산이수동에서 대평까지

연변에 가 있으면서 방학 기간에 와 있는 선배와 동행하게 되었다. 무수천에서 모슬포로 가는 버스 중 사계를 거치는 버스는 40분에 한 번꼴. 11시 10분을 조금 넘기며 사계에 도착하고는 산이수동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을 안 가로수 아래엔 마가렛이 거적을 깔고 앉아 살짝 윙크를 보내더니 점을 보고 가란다.  복채가 없는데 어떡하느냐며 카메라를 들이밀고는 나 역시 셔터를 살짝 누르며 씩 웃어주었다.  간혹 애정영화에 보면 '그는 나를 사랑해, 사랑하지 않아.' 하면서 점을 치듯 하얀 꽃잎을 하나씩 따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는데 바로 그 꽃이다. '사랑을 점친다.’ 혹은 ‘진실한 사랑, 예언, 비밀을 밝힌다.'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으며 꽃 모양이 데이지꽃과 비슷하여 서양에서는 보스톤데이지 (Boston Daisy)라고도 한다.

마가렛

옛날부터 기생꽃나무, 처녀꽃, 보춘화, 산당화, 아가씨나무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정도로 조상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명자나무. 햇살은 따사롭고 외출준비는 완벽하게 마쳤건만 누구 하나 명자를 불러주는 이 없다. 애원하듯 나를 불러세운다.

명자나무

나 혼자였으면 알지도 못할 농로 따라 사계에서 산이수동으로 가는 길, 즐비한 마늘밭 가장자리엔 적잖은 냉이가 돋아나 봄날을 반죽하고 있었으며 감자 캐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밭 돌담길 옆으로 피어난 민들레 한 송이도 봄날이 구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민들레

이별을 고하고 떠난 님을 좇아가다 쓰러진 건 아닐까? 차디찬 길바닥에 두 발 가지런히 모으고 생을 다한 까치의 영혼은 님 계신 곳 찾아갔을까?

농로에 죽어 있는 까치

송악산 아래의 산이수동 해안가를 따라 사계 바닷가로 향했다. 팬션이 줄지어 있는 길가엔 몇 년을 살았는지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손바닥선인장이 꽃망울을 내밀고 있다.

손바닥선인장의 꽃망울

모슬포에서부터 쭉 연결된 해안의 모래 바위는 정말 작품이었다. 예닐곱 해 전 이곳을 찾았을 땐, 만발한 배추를 배경으로 하여 사진을 촬영하는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유채꽃이 치맛자락을 펼치고 앉아 살랑살랑 흔들고 있다.

산방산 배경의 유채꽃

유채꽃의 유혹에 동하는 말 한 마리는 무심한 척 풀만 뜯고 있다, 못이긴 척 누워 뒹굴어도 좋음직 하건만.

유채꽃 만발한 옆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 한 마리

용머리 해안가를 돌아 하멜표류 기념탑을 지나고 잠시 앉아서 바라보는 바닷가. 까치 한 마리 바위에 앉아 떠날 줄 모르고 있다. 제아무리 목을 빼도 공작이 되지 못하련만 무슨 사연일까?

바닷가의 바위에 오래도록 앉아 있는 까치

일어서며 뒤를 돌아보았더니 지나온 용머리 해안의 상설전시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스쳐가는 한 척의 배까지도 그림이다.

용머리 해안 하멜 상설전시관

아스팔트 길로 막 나가기 전, 귀퉁이의 보리뜰 열매를 보자 어릴 적 소 꼴을 베러 밭에 갔다가 따먹던 보리수가 떠오른다. 몇 알 따고는 선배더러 먹어보라 해도 별 이상한 것을 다 먹는다며 고개를 젓는다. 왜 이런 게 이상하다는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 혼자 서너 알 입에 넣었다.

보리뜰나무

최대한 바닷가를 같이하며 걷다 보니 길이 막혔다. 누군가의 발자국이 남아있는 모래사장으로 내려섰다. 따개비 어슬렁어슬렁 주의를 겉도는 바위에 상형문자 새겨놓은 듯 신기한 모습이 눈에 잡혔다. 무얼까? 물속에도, 바깥에도 기절할 정도로 많았다. 외국에서 들어와 우리 해안을 점령하는 못된 놈은 아닐까? 먹지 못하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내가 활동하는 야생화 동호회 카페에 올려놓았더니 어느 분께서 지중해 담치라며 홍합과의 차이점까지도 자세하게 일러주셨다.

"홍합은 지중해담치보다는 약간 깊은 곳에 서식합니다. 모양이 거의 비슷하지만 패각의 각이 약간 다릅니다. 모주꾼들이 포장마차 등지에서 소주를 마실 때 국물로 주는 것이 지중해담치입니다. 사람들은 물론 홍합으로 잘못 알고 있지요. 가격도 홍합이 훨씬 비쌉니다. 지중해담치는 15세기 이후 유럽 선박들이 아시아나 아메리카 등지로 항해하면서 어린 종패들이 배에 붙어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습니다. 몇 년 전까지 <진주담치>로 불리다가 최근에야 정식 국명이 <지중해담치>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사례는 비교적 흔합니다. 망둥어는 우리나라 등 동아시아 고유어종인데 배에 붙어 북미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민을 한 셈입니다."

지중해담치

화순목욕탕 앞의 중화요리와 간단한 한식을 겸하는 음식점에서 우동을 시켜 먹었다. 중국집 우동과 고기국수를 절충하였는데 개운하면서 참 맛깔스러웠다. 농로를 따라 계속 걸었다. 맞은 편에서 두 아들과 같이 걸어오는 아버지가 보인다. 당연히 밭에서 돌아오는 가족인 줄로만 알았는데 앞에 다다르자 인사를 한다. 가방을 메고 그들 역시 도보여행 중이었다. 음지의 자주괴불주머니가 파이팅을 외친다.

   
자주괴불주머니

내가 사는 마을 안길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어느 밭 돌담엔, 제 집앞 지난다고 텃세라도 부리는 듯 송악이 으스대며 앉았다. 퍼뜩, 뒤뜰의 대나무를 잘라다 폭총을 만들고 쏘아대며 놀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땐, 뒤뜰의 대나무를 잘라다 전문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차롱이며 삿갓을 엮는 게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제사를 앞둘 땐 또 아버지께서도 그 대나무를 잘라다 산적꽂이를 만들곤 하셨는데 그런 모습이 하나의 의식처럼도 여겨졌었다.

송악

어린 시절, 마을의 뒷동산에 올라 뒤로 가면 냇가와 이어지는데 그곳엔 자금우가 참 많았다. 겨울철 땔감으로 쓰이던 솔잎을 긁어모으고자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던 나에게 보인 자금우는 영락없는 사과였다. 아기사과라며 종종 따먹기도 했는데 무슨 맛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안덕계곡을 넘어 경사진 곳을 오르자니 소나무 숲 아래 자금우와 백량금이 무더기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언제봐도 반가운 모습이며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녀가 독을 넣어도 중화될 것 같은 맑은 얼굴이다.

자금우
자금우와 백량금이 어우러진 숲길

한참을 걷다 보니 눈앞에 평야가 펼쳐진다. 지금껏 제주에 살면서도 몰랐던 마을 대평리다. 맑은 공기 흘러다니며 춤을 추고 파도소리 장단을 두들기는 것 같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하지만, 마음아프게도 마을엔 젊은이가 거의 없다고 한다. 초등학교도 폐교가 되어 있었다. 한평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가 시골집 마당에 곱게 피었다. 비록 젊은이들은 대부분 떠나고 없는 마을이지만, 자신의 생명처럼 지조를 소중히 여기는 올곧은 선비처럼 매화는 대평리 마을의 자존심인 것도 같았다. 마을의 점방에 들어가 막걸리 한 병을 앞에 놓고 30분에 하나씩 있다는 버스를 기다렸다.

대평리에서 어느 집 앞의 매화

중문에서 돌아오는 길, 무수천에서 내리고 횡단보도를 찾아 방향을 튼 서쪽 하늘 신호등 저너머에 그림자 짙게 드리운 해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무수천에서의 일몰

횡단보도를 건너고 정류소를 향해 돌아선 동쪽 하늘, 해산을 앞둔 보름달이 일찌감치 떠올라 있었다. 내일은 저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내가 아는 모든 분의 만사형통을 빌어야겠다.

정월 보름을 하루 앞두고 일찌감치 떠오른 달

<제주의소리>

<고봉선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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