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임의 오름기행〕소록산(족은사슴이 오름)

▲ 소록산에서 본 목장 ⓒ 김강임
제주공항에서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가는 길은 여러 길이 있다. 하지만 제주시에서 번영로를 지나 교래리와 서귀포시 가시리를 잇는 도로에 접어들면 너른 들판을 달리게 된다.

이 도로는 지난 2006년과 2007년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길 100선 가운데 하나이다. 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도로주변을 수놓기 때문이다. 입춘을 사흘 앞둔 지난 2월 1일, 정석항공로(녹산로) 주변은 아직 겨울 속에 묻혀 있었다.  
 
이 도로 왼쪽에는 오름 2개가 있다. 이 오름은 지형지세가 사슴 같다고 하여 사슴이오름이라 한다. 서로 마주하고 있는 2개의 사슴이오름 중 몸체가 작은 오름을 족은사슴이오름(소록산), 몸체가 큰 오름을 큰사슴이오름(대록산)이라 한다. 
 

▲ 소록산 가는길 스코리아 길 ⓒ 김강임
 
# 소록산 등반로, 붉은 스코리아 길을 밟으며

남북으로 길게 드러누운 소록산(족은사슴이오름) 가는 길은 붉은 스코리아(송이) 길이었다. 제주의 흙은 대부분 검은 흙인데, 오름 등성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스코리아(송이)는 붉은 색깔을 띤 자갈 같다.

스코리아 길로 이어진 등반로 주변에는 삼나무 숲. 해송 숲, 갈대숲이 이어졌다. 추위에 짓무른 억새가 너울너울 춤을 추고, 빨간 청미래덩쿨도 오르미들에게 눈인사를 나눈다. 2월의 아침 기온은 영상 10도, 지독이 눈이 많이 내렸던 지난겨울을 생각하니, 소록산에 내리는 햇빛이 조금은 낯설었다.

▲ 소록산 정상 ⓒ 김강임
 
#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국마(國馬)의 고향

붉은 스코리아(송이)길을 20여분 걸었을까. 전망대에 올라섰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광활한 목장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가슴이 탁 트이는 순간, 오름 정상에서 맛보는 홀가분한  자유를 맛보는 순간이었다. 함께 한 오르미들과 광활한 목장을 전망삼아 마시는 커피 한잔을 마시니 풍경에 취하는 기분이랄까.

한라산을 중심으로 오밀조밀 모여 있는 제주의 오름들, 하늘을 떠다니는 조각구름들이 오름등성이에 걸쳐 있었다. 그 오름과 광활한 목장과의 어우러짐은 바로 제주의 멋 자체가 아닌가 싶다.

제주사람들은 그 광활한 목장을 녹산장이라 부른다. 이 일대는 과거 말(馬)을 기르던 광활한 목장이었다고 한다. 즉, 조선후기 이 일대는 산마장이었다. 산마장 국가에 말(馬)을 헌납하는 목장으로, 녹산장과 침장, 상장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특히 녹산장 갑마장은 국가가 길렀던 말(馬) 중에서도 품질이 우수한 말(馬)이라 하니 품질 좋은 말들은 제주가 고향인 셈이다. '말(馬)의 고향이 제주다'더니 이 녹산장을 두고 하는 말인가?

▲ 정상에서 본 조망 ⓒ 김강임
 
▲ 정상에서 본 목장 ⓒ 김강임

# 산마장, 조선시대 목축의 알토란

"저 광활한 목장이 국마를 길렀던 곳이라니"

소록산과 마주하고 있는 대록산은 덩치가 쾌 커 보였다. 대록산과 소록산, 그리고 따라비 오름 일대가 말들의 고향이었다 하니 소록산 일대는 앞으로 목축의 보금자리가 자리 잡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따라비오름도 한눈에 들어왔다. 이 세 개의 오름 일대가 산마장이었다 하니 과연 조선시대 목축은 이곳이 알토란 아니었던가. 특히 임금님 진상을 위한 수렵도 이 부근에서 이루어졌다하니 소록산과 대록산 일대야말로 수입개방시대 목축의 1번지로 다시 태어났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보았다.

▲ 억새가 허리까지 와 닿아... ⓒ 김강임

 
# 말굽형 분화구 잡초로 우거져

남북으로 길게 드러누운 소록산의 자태는 마치 쌍둥이 같았다. 2개의 화산체를 가지고 있어 쌍둥이 화산체는 대록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르미들과 말굽형 화구 능선을 따라 걸을 수 있었다. 빼꼭이 들어선 소나무와 찔레나무는 등산로를 가로막았고, 아직 봄꽃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북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따라 이동하는데 억새가 사람의 키보다 더 크다. 그 억새 숲을 헤쳐 나가야만 하는 애로사항도 그저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오르미들. 마치 억새 숲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랄까.

드디어 북동쪽 분화구 정상에 서니, 우도와 일출봉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제주의 동쪽 모습을 훤히 조망 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등반로는 험난하기만 했다.    

▲ 삼나무 숲 ⓒ 김강임
 
▲ 소록산 숲속에는 이끼류 식물이 자라고 있다. ⓒ 김강임
 
 
하산은 북동쪽 삼나무 숲을 택했다. 대낮인데도 삼나무 숲은 어두컴컴하다. 이끼류의 식물들이 공생을 하는 삼나무 숲은 낙엽마저 촉촉했다. 오름 길잡이 오선생님은 무성한 잡초를 일으켜 세우기도하고, 쓰러진 나무를 바로 세우기도 하고, 죽은 나뭇가지를 자르는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다. 자연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 두개의 쌍둥이 화산체 ⓒ 김강임

 
# 임금께 올리는 진상... 사슴이오름에서?

삼나무 숲을 빠져 나오자, 다시 억새밭 길, 억새 숲에는 노루의 분비물을 발견했다. 노루 분비물을 보자,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하기 위해 날짐승을 바쳤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어떤 짐승을 사냥했을까? 소록산 기슭에 노루 분비물이 있는 것을 보면, 한라산 노루가 소록산까지 먹이를 구하러 온 모양인데, 옛날에도 노루나 사슴, 멧돼지 등이 소록산 기슭에서 살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다면 임금께 올릴 진상도 노루나 사슴, 멧돼지 등이 아니었을까?

가슴까지 와 닿는 억새 숲을 빠져 나오자, 등에서는 후줄근 땀이 맺혔다. 소록산 2개의 쌍둥이 화산체와 대록산은 삼각형을 이루고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길렀다는 말(馬)들은 어디가고 광활한 목장은 봄을 기다리고 있는가?

 

소록산(족은 사슴이오름)은?

▲ 쌍둥이 화산체 ⓒ 김강임
소록산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 87-1번지 일대로, 표고 441.9m, 비고,102m, 면적 386,069㎡로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는 형태이다. 북동쪽으로 크게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이룬다.

오름 남측 사면에 남서쪽으로 벌어진 작은 말굽형화구를 갖고 있는 쌍둥이 화산체며, 화구방향으로 해송, 삼나무가 조림되어 숲을 이루고, 그 반대 사면은 풀밭을 이루고 있다. 

기슭자락 낭떠러지에 가마천이 있고, 하천 주변에는 자연림의 울창한 숲을 이뤘다. 지형지세가 마치 사슴과 비슷하다고 족은사슴이(소록산)라 부른다. - 제주특별자치도 관광정보 중에서 

▲ 쌍둥이 화산체 ⓒ 김강임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제주공항 - 번영로 - 명도암  입구삼거리 - 남조로교차로(직진) - 선흘입구(직진) - 대천동사거리(우화전) - 정석항공로-소록산(작은사슴이오름) 

*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산 11-16번지에서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2527번지를 잇는 도로명칭을 ‘녹산로’와 '정석항공로'로  의견이 분분하다.  이 도로는 총 연장 12㎞ 가운데 가시리에 10.5㎞, 교래리에 1.5㎞ 정도 걸쳐있다. 길 옆에는 대록산(큰사슴이오름)과 소록산(족은사슴이오름)이 위치 해 있다. 이곳 일대는 과거 말을 기르던 광활한 목장으로 조선시대부터 ‘녹산장’이란 이름을 붙여 ‘녹산로’  ‘정석항공로’, 로 부르기도 한다. <제주의소리>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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