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누드비치 개설 소식, 주민들은 '호기심 반 우려 반'

   
▲ 함덕해수욕장 겨울이라 사람들은 없고, 물새들만이 놀고 있다. 멀리 보이는 오름이 서우봉이다. 누드비치 개설 장소 후보지 중 한 곳이라고 전해졌다.  ⓒ 장태욱  함덕해수욕장
 
'제주자치도는 10일 행정 관계자와 도내 해수욕장 운영주체 등 20여 명이 참석한 '찾고 싶고 즐기고 싶고 놀고 싶은 제주도 해수욕장 사계절 운영활성화 방안 간담회'에서 누드비치 운영방안이 논의됐다고 11일 밝혔다. 이른바 미국의 라이트하우스, 프랑스의 니스, 호주의 버디 등 외국의 유명한 누드비치처럼 국제관광지 제주에도 누드 해수욕장을 개설하는 방안이다.' - <제주의 소리>(2월 11일자)

'제주도는 지역주민 의견을 수렴해 누드비치 장소를 정한 뒤 일정 구획을 설정, 나체 일광욕을 위한 시설을 설치하고 개방할 계획이다. 누드비치 개설 장소로는 서귀포시 예래동 해안과 제주시 함덕해수욕장 서우봉 해변 등이 검토되고 있다. 강태석 해양자원담당은 "누드비치가 개설될 경우 전국 최초라는 상징성을 확보하고, 프랑스 니스의 누드비치 등 유럽의 유명한 해양관광지와 어깨를 겨를 수 있는 개방성도 확보하게 된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2월 12일자)

지난 2월 11일을 전후로 제주도 내 지방 언론사는 물론이고 <한겨레> <경향신문> <연합뉴스> 등 유력 언론사들를 통해 제주도에 누드비치가 만들어질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사를 접한 이들은 그 추진배경에 귀를 기울였고, 이 기사가 보도된 <제주의소리> 게시판에는 일부 독자들이 이 사업을 추진하려는 제주자치도를 비난하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누드비치 개설 아이디어, 어떻게 나왔나

누드비치 개설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을 듣기 위해 실무담당자와 통화를 시도했다. 언론에 관련 내용이 보도된 과정에 대해 제주자치도 해양수산과 김용덕 주사의 해명은 이렇다.

지난 2월 10일 오후에 제주도청 해양수산국 회의실에서는 제주도 해양수산국장, 과장 및 실무자들이 행정시(제주시와 서귀포시) 해양수산 실무 담당자들과 해수욕장이 소재하는 마을의 이장 청년회장 등을 초청해서 간담회를 열었다. 이 간담회는 해수욕장을 활성화시킬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매년 한차례 열리는 행사였다. 예년에는 해수욕장 개장이 이루어지기 전인 4, 5월에 열렸었지만 금년에는 해수욕장을 연중 활성화시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특별히 2월에 열었다는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해수욕장 바가지 요금을 근절하기 위한 방안과 해수욕장 시설개선 사업 등의 일상적 과제가 논의되기도 했고, 해수욕장을 여름철뿐만 아니라 사계절 상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심도 있게 모색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마을에서 오신 분이 누드비치를 아이디어로 제시한 겁니다. 자리에 모인 분들은 그거 새로운 생각이니 한 번 검토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회의 자료가 언론사에 제공되자, 언론사에서는 많은 것이 이미 결정된 것처럼 너무 앞선 보도를 한겁니다."

세간의 관심과 비난이 부담스러웠는지 김 주사는 누드비치 개설 사업은 회의도중 나온 일부의 아이디어일 뿐, 실무 차원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 논의도 해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누드비치 개설과 관련해 처음에 보도했던 지방언론사 기자의 말은 이와 조금 다르다. 그 기자에 따르면, 해양수산과에서 2월 10일 논의했던 내용을 기자들에게 홍보자료로 배포했고, 그 자료에는 누드비치에 대한 개설내용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이 자료를 읽어본 기자가 "그럼, 금년 내에 누드비치가 개설될 수도 있는 거냐?"고 물었더니, 담당자가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거다.

양측의 해명을 종합해보면, 주민대표가 내놓은 누드비치 개설 아이디어를 제주자치도 해양수산과에서 받아들였고, 이에 대해 담당자들끼리 정책검토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언론에 발표했다가 일부에서 반발할 기미를 보이자 서둘러 진화하려 하는 듯했다.

"누드비치 자체는 반대 안한다, 장소 물색이 어려울 듯"

   
▲ 함덕해수욕장 여름철에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이다.  ⓒ 장태욱  함덕해수욕장
 
그렇다면 제주도민들은 누드비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제주자치도가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려 한다면 도민합의를 모아낼 수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주민들의 의견을 물었다.

이에 대해 이영웅 제주도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이에 대한 단체의견은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가 이 사업에 반대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며 "다만 도민합의를 모아서 실행을 옮기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하면 동네 남자목욕탕 수준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양윤녕 민주당 제주지치도당 사무처장은 "누드비치 자체에 대해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며 "그런데 상식적으로 누드비치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차단된 곳에 만들어져야 할 것 같은데, 제주도에 그런 격리된 해수욕장이 있나? 장소 물색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해당 마을 주민들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누드비치 적지 중 한군데로 거론되고 있는 함덕마을의 현창호 사무장을 만났다.

현창호 사무장은 "누드비치 개설 장소로 함덕해수욕장이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을 저도 언론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며 "우리 마을 주민들도 아직까지 거의 모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마을은 농촌 지역에 속해있기 때문에 노인분들이 많이 살고 있다"며 "이 분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격한 인터넷 반응과는 다른 제주 시민들 반응

청소년들의 의견도 궁금했다. 서귀포시 S여고에 다니는 한소정양은 "누드비치가 아이디어로는 참 신선해 보인다, 국내에 한 군데만 있다고 하면 관광객들이 호기심을 품고 많이 올 것 같다"며 "그런데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지역의 미풍양속을 해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노인들보다는 청소년을 자녀로 둔 부모님들의 우려가 클 것 같다"며 "구체적 방안을 가지고 주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중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식당에서 남편과 식사중이었던 40대 한 여성은 "며칠 전에 아는 분들과 모여서 이에 대해 얘기를 했다"며 "아줌마들이 전부 몸매를 관리해서 누드비치에 가보고 싶다고 난리다, 모두 다이어트 시작했다, 호호호, 나도 가볼까 생각 중이다"라고 말했다.

농담이 짙게 묻어나는 대답 속에서도 누드비치에 대한 주민들의 호기심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60대 한 남성은 "외국에는 그런 거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글쎄 제주도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인터넷상에서 독자들이 보낸 반응과 달리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격한 반대의견을 내지는 않았다. 한라산 케이블카, 영리법인 병원, 해군기지 등의 현안 문제에서 심각한 주민갈등을 겪었기 때문인지, 내가 만난 도민들은 누드비치 개설에 대해서는 예상보다 관대한 입장이었다. 제주자치도 당국이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