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폐교에 자리잡은 교육공동체 ‘들살이’

▲ 색종이와 풀 등을 이용해 자유롭게 만들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
제주시내에서 승용차로 40여분 남짓. 여느 제주 농촌마을과 마찬가지로 한라산이 내려다보이는 평화로운 마을, 남제주군 성산읍 난산리에 도착했다. 토질이 비옥한 편이어서 화학비료가 나오지 않았을 때도 곡식이 잘 자랐다는 난산마을.

도시로 사람들이 나가면서 아이들 수가 급감, 문을 닫은 옛 난산분교 자리에 ‘행복한 배움, 조화로운 삶’을 내건 교육공동체 ‘들살이’가 소중한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아이들 스스로 교과목 배정 ‘자립심’ 쑥쑥
계절 캠프 다양한 수업 호응…재정 뒷받침

#  하루 일정표, 우리가 정해요

교실 6개의 작은 학교인 옛 난산분교에 들어서자 반갑게 맞이하는 고동원·김정이 씨. 들살이의 운영자이자 지킴이인 이들의 안내로 교실로 들어섰다. 기숙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방학이라 자리를 비웠고 대신 겨울캠프에 참여할 몇몇 학생들만 눈에 띈다.

현재 들살이 학생은 8명. 기숙사 생활을 하며 주당 5일 교육을 받고 있다. 들살이의 하루는 아이들의 회의를 통해 스스로 결정한다. 오전 8시에 아이들이 일어나 시끌벅적하게 이불도 개고 화장실도 간다. 아이들 스스로 결정되는 시간이라 좋아하는 과목만 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모든 과목을 적당하게 분산시켜 놓을 정도로 합리적이라는 게 고동원씨의 설명이다. 아이들은 주로 오전에 과학원리 이해와 생태, 역사, 수원리 이해, 철학, 말, 글 등의 과목을 중심으로 배정하며 오후에는 집짓기, 연극놀이, 음식 만들기, 목공, 풍물 등 생활과 예술영역이 배정된다.

▲ 아이들에게 가장 신나는 시간인 목공예시간.
#  무엇이든 직접 해보니까 좋아요

들살이에서 기숙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기존의 제도교육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민주 어린이는 “나는 학교에서 목공수업이 가장 재미있었다. 나는 망치로 나무에 못을 박아 무엇을 만드는 것이 신이 난다”며 “나는 목공시간 때 우선 크기부터 쟀다. 그리고 기계로 크기대로 자른 다음 나무에 못을 박아 연결시킨다...목공 말고 다른 수업도 저번 학교와 달리 모두 직접 해봐서 좋다”고 말한다.

한 학부모도 “우리 애들이 컸을 때 학과공부에만 뛰어나고 이기적인 사람보다는 남을 배려할 줄 알고 공동체의식이 있으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필요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고 자신감이 차 있었다.

#  어려운 재정난, 처음 마음으로 극복

제도교육에 대한 문제를 느끼고 대안을 찾아보자고 해서 1년간 스터디를 통해 시작하게 된 대안학교. 7∼15세까지 초등학교 과정을 개설해 놓고 있는 들살이의 지난 3년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작은 학교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고동원 씨는 교육비와 기숙사비 등으로 웬만한 중산층도 보내기 힘든 귀족학교, 인텔리학교로 변하고 있는 대안학교들을 보면서 많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들살이는 학비가 없는 학교다. 가장 기본적인 아이들의 생활비만 받을 뿐 나머지는 일절 받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학교운영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학교운영비 충당을 위한 대안으로 마련한 게 계절캠프학교.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마련한 계절캠프학교가 다행히 호응이 좋아 운영에 도움이 되고 있다. 올 겨울에도 두 번에 걸쳐 실시되는 겨울캠프가 정원을 마감했다.

생활교사 3명을 비롯, 풍물, 민요, 과학 등 분야별 외부강사 5명이 초빙돼 수업이 이뤄지며, 운영을 맡은 김정이 씨와 고동원 씨가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고동원 씨는 “들살이를 도와주는 선생님들에게 작으나마 수고비를 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을 되새기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 민속생활용품인 솟대와 새총을 만들고 한 자리에 모였다.
#  작은 학교, 많이 생겨야 합니다

지난 2002년 7월 개교한 들살이는 8년간 학원 운영을 해온 김정이, 이안표, 이숙희 씨가 아이들의 영혼을 멍들게 하는 현 교육제도로는 미래가 없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무대 미술과 연극을 하는 고동원씨와 함께 대안 찾기에 골몰하다 만들게 됐다.

어느덧 상설학교 운영을 시작한지 벌써 2년 반을 훌쩍 지났다. ‘행복한 배움, 조화로운 삶’을 표방하는 들살이의 교육방식은 기존 제도교육과는 확연하게 차별화를 이룬다.

들살이는 다른 대안학교들과는 달리 정규학력을 인정받을 수가 없다. 정규화과정인 특성화 대안학교는 중·고등학교 과정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고동원씨는 “뭔가 거꾸로 되고 있다.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탈 학생이 갑자기 늘어나니까 대안학교를 특성화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인정했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교육은 천천히 하는, 느리게 하는, 배움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는 것”이라는 고동원 씨는 “모든 문화가 도시에 집중되면서 문제가 시작된 만큼 농촌으로 학교를 끌어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농촌교육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폐교를 활용하는 것은 농촌의 문화운동이자 대안교육이다.”

▲ 겨울임에도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작은학교 ‘들살이’ 전경
#  농촌 마을, 생기가 넘치다

들살이가 성산읍 난산리에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난산분교가 폐교되면서 마을이 조용해졌다가 다시금 아이들 소리가 들리고 생기를 찾게 된 것이다.

들살이에서 마을과의 유대를 위해 방학동안 난산지역 어려운 가정의 자녀를 무료로 캠프에 참여시키고 제주전통의 생활지혜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마을 주민을 체험교사로 모시는 등 농촌마을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

이밖에도 들살이는 민요교실을 열고 난산마을은 물론 인근 마을의 초등학교 학생들을 초청해 멋진 발표회를 갖기도 했고 주민들과 어울림 공연을 하기도 했다.

현경선 난산리 사무장은 “문화학교 들살이가 난산분교에 생긴 후 마을행사를 할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며 “마을 부녀회원을 대상으로 황토물들이기를 할 때에도 각종 재료와 장소까지 공급을 해주는 등 주민들에게 많은 협조를 해주고 있어 고마울 따름”이라고 칭찬했다.

이어 그는 “특히 방학 때면 마을아이들을 캠프에 참가시켜 주고 공부도 시켜줘 고맙게 생각한다”며 “김 기자님! 될 수 있으면 크게 홍보해 달라”는 특별한 부탁을 잊지 않았다.

"농촌의 작은학교가 새로운 희망입니다"

[인터뷰] 농촌학교를 말한다 - 안동우 제주도의원

▲ 안동우 도의원
 “창의력과 도덕적 가치관이 풍부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농촌의 작은학교가 새로운 희망입니다”

농민단체장 출신으로 농촌교육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안동우의원은 농촌학교에 대해 이같이 말하고 농촌의 희망을 작은 학교에서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안동우 의원은 “농산물 수입개방에 이은 쌀개방 협상과 농촌인구의 급격한 감소 등 농촌학교의 미래가 암울하기만 하다”며 “수년전부터 경제논리로 농촌소규모학교를 인위적으로 통폐합할 때부터 이미 예견됐던 일 이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초등학교가 폐교된 지 4~5년여 지나고 나니 그 여파가 중학교로 밀려든다”며 “ 제주지역 농촌지역의 중학생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당국이 학교통폐합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농촌주민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꺾어 놓았다는 점은 참으로 큰 잘못”이라며 강도 높게 지적한 안 의원은 “소규모라는 이유로 시설투자를 외면하고 통폐합을 시도함으로써 학부모들에게 농촌교육의 질 저하라는 불안감을 가중시켰고 이는 곧바로 이농을 부채질하는 결과만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안 의원은 “교육환경이 열악한 농촌지역에 다양한 가치관과 칭의성을 스스로 키워나가도록 다채로운 교육을 시키는 작은 학교가 대안으로 크게 기대되고 있다”며 “농촌학교만이 아니라 과거 활발했던 농촌문화를 재발전 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안 의원은 “기존의 제도교육이 천편일률적으로 가는 것에 비해 들살이는 자연환경과 더불어 지역사회와 함께 열어가는 학교가 되고 있는 모습에서 그 가치가 더하기만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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