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영의 뉴욕통신]맨해튼에서 열린 '통일의 사도‘ 문익환 목사 11주기 추모식

▲ 통일의 사도 늦봄 문익환 목사. 문 목사의 추도식이 뉴욕에서 열렸다.
"동환아 우리 이 팽이 아궁이에 집어넣어 버리자"

"왜? 안되! 형!"

"우리 이러다간 예수님 잊어버리겠다, 팽이 때문엡"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어릴 적 노리개 감이라곤 마른 막대기밖엔 없었던 시절, 숙부가 조카들을 위해서 애써 만들어준 팽이, 팽이 돌리기가 너무나도 신나서 하루 종일 정신없이 놀았는데, 익환 형이 그걸 아궁이에 집어넣고 말았다. [문익환 목사 평전에서 조금 각색, 필자]

그 후 형도 동생도 모두 신학공부를 하고 목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겨레에 대한 사랑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시퍼렇던 시절(지금은 시들시들하지만) 동경을 거쳐 북경으로 그리고 평양으로 날아가 김일성 주석을 만나 감격의 포옹을 한다.

북측에서는 판문점을 통해서 서울로 가도록 허락하였지만, 남측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국가보안법 위반자였다. 죄목도 무시무시했다.

잠꼬대 아닌 잠꼬대
                                  문익환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강 흐르는 물에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풀어버리는 거지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살 스무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아 얼마나 좋을까
그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이천만이 한마음이었거든
한마음, 그래 그 한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은 당나라 백만대군을 물리쳤잖아

아 그 한마음으로
칠천만이 한겨레라는 걸 확인할 참이라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말이야
아마도 서로 부둥켜안고 평양 거리를 딩굴겠지
사십사년이나 억울하게도 서로 눈을 흘기며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서로 찔러 죽이면서
괴뢰니 주구니 하며 원수가 되어 대립하던
사상이니 이념이니 제도니 하던 신주단지들을
부수어 버리면서 말이야
뱃속편한 소리 하고 있구만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

객쩍은 소리하지 말라구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구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터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로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 두라고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 나의 형 문익환 목사는 억압받는 겨례에 대한 사랑때문에 미쳐버렸습니다.

 

 

 

 

 

 

 

 

그 후 문 목사는 한겨레 통일사도가 되어 미쳐버렸다.     
                                              
문동환 목사(83)는 당시 형의 그런 행동을 회상하면서, "나의 형은 미친 사람입니다. 정말로 미친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미친 사람입니다. 당시 억압받던 민중들을 위한 '사랑'때문에 미쳐버린 사람들입니다, 내일이면 마틴루터 킹 목사의 탄신 기념일인데, 그도 인권을 위해서 미친 사람입니다. 미치지 않고는 그런 일들을 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없이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 문익환 목사님의 그 통일의 열정을 이어받은 차세대 주자, 우리의 희망, 우리의 꿈, 그리고 감동. 이제 그녀는 통일얼짱 이라고 나는 부른다.

 

 

 

 

 

 

 

한 추모객은 문익환 시집을 들고 와서 낭송하려는데, 주최 측이 제공한 팸플릿에 그게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이심전심일까 아니면 텔레파시일까?

다시금 우리의 심금을 울리며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었다.

서울에서 태평양을 건너 맨해튼 추모식장까지 찾아온 어린 학생이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서 너무나도 낯익은 모습 '사랑만이.                                                    

   

   

 

 

 

 

 

 

탄핵촛불 시위에서 시쳇말로 '얼굴짱'으로 등장하고 그 후 송두율 교수 석방 탄원에 열성팬으로 앞장서기도 했던 '노사모'

"얘야, 너 대학 못가면 난 너의 부모님 뵐 면목이 없다"고 노짱은 무척이나 염려했었다.

▲ 문동환 목사님과 사랑만이, 통일 할아버지와 통일 손녀의 만남
그녀가 고3때 대선이 치러지고 있는데, 하라는 공부는 뒷전에 미뤄둔 것도 그녀가 ‘노사모’였기 때문.

그런 그녀가 어엿이 성균관대 대학생이 되고 롱아일랜드 대학과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의해서 1년간 유학 와 있는 차, 문익환 목사님을 위한 추모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허드슨 강 모진 바람도 무찔러버리고 달려와 추모객들의 시선을 몽땅 또 독차지했다.

문동환 목사님은 너무나도 기특해서 '사랑만이'에게 차세대 통일일꾼의 바톤을 넘겨줬다.

문익환 목사님은 마틴 루터 킹 목사처럼 억압받는 우리 겨레와 자라나는 차세대에게 '희망'과 '꿈'과 '감동'을 듬뿍 선물해 주었다.

한 추모객은 또 “여기 오늘 40여명이 모였습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일대에 약 40만 한인동포들이 살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1당 만을 대표해서 오신 분들입니다…문익환 목사님께서 젊은 시절 한신대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친 일이 있었는데, 하도 원칙을 고수하니까 학생들이 문 목사님께 별명을 부쳐줬어요. '문이꽝'이라고…그런데 말년에는 통일의 문을 활짝 여는 '문이환'이가 되었답니다”라고 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16일 오후 5시경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시작되고 또 문익환 목사의 생전을 비디오로 보여주고…행사는 그칠 줄 몰라 저녁 9시까지 진행되었다.

마지막 '음복'이 있었는데, 뉴욕 한인교회(한성수 목사시무) 교인들이 애써 준비한 맛 김치와 뜨끈한 소고기 국밥. 나는 건강상 이유로 다이어트 중 침만 꿀꺽 꿀꺽 삼키다왔다.

▲ 필자인 이도영 박사와 통일소녀 사랑만이.
내 아내에게는 30분 정도로 인사만 하고 곧 귀가 한다고 해놓고, 핸드폰으로 계속되는 호출도 무시해 버리고…밤이 으슥해져 나타난 나는 시침을 떼면서 아양아닌 아양을 떨어야 했다. 능청을 떤 셈이다. "으응, 그 어떤 부흥회보다도 감동 먹었어…." "사기꾼, 거짓말쟁이…이상한 사람" 모두 귀 뒤로 흘려버리고…자다 말고 일어나 자판을 두들긴다. 아참, 사진도 올려야지. 나도 점점 미쳐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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