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충민의 제주맛집] 제주시 일도2동 가마솥몸국

   

어린 시절 동네에 큰일이 있으면 괜히 내가 설레었다. 우리 집안이든 그냥 이웃이든...
마당 한 구석 혹은 우영팥이라고 부르는 텃밭에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 넣고 돼지를 삶기 시작하면 괜히 그 주위를 기웃거리곤 했었다.
하루 세끼를 꼬박 그곳에서 해결하고도 누구 하나 눈치 주는 사람 없이, 먹는 인심하나는 끝내주게 후한 터라 정작 많이 먹지 않고도 배가 부르는 느낌이었다.
    

▲ 몸국, 몸국수, 돔배고기, 고등어구이 한상 ⓒ 제주의소리

그런 큰일이 있을 때 유독 군침을 흘렸던 음식이 바로 몸국이었다.
큰일이 나면 커다란 가마솥에 장작을 활활 때서 하루 종일 돼지 예닐곱 마리를 삶아냈었다. 그 진한 국물에 마지막 수애라고 불렀던 순대까지 삶아내면  몸국은 사실상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다 몸 혹은 몰망이라고 부르는 모자반을 넣어 끓이면 몸국인 것이다.

이제 슬슬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면 시간 끌지 말자. 바로 몸국이다. 거기에다 옛날 고기반을 떠올리게 하는 돔베고기까지... 그런데 다 좋은데 소주 한 잔 생각 간절할 텐데 빨리 문닫는다고? 걱정하지 마시라. 딱 술 마시기 좋게 저녁부터 새벽까지 하는 곳이다. 이쯤 되면 이제 나의 팬서비스도 확실하지 않은가.(잘난 척 했다면 무한한 아량으로 넘어가 주시길...)
오늘 소개하는 곳은 제주시 일도2동 인제아파트 근처에 있는 가마솥몸국이다.
    

▲ 몸국수 ⓒ 제주의소리

아세 곧주 우린 흉내만 냄수다?

상호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이곳의 대표선수는 몸국이다. 또 몸국에 잘 어울리는 돔베고기다. 그 진한 국물에 말아주는 국수도 괜찮을 듯싶어 이렇게 주문했다.
돔베고기는 20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단다. 미리 시간을 예약한다면 기다릴 필요 없다는데 그 동안 몸국과 몸국수의 맛을 음미할 요량을 했다.

저녁 일곱시를 넘긴 시간이라 알맞게 배는 고파오는데 몸국과 몸국수가 먼저 나왔다.
상에 낸 몸국을 가만히 보니 빛깔이 참 곱다. 몸국에 웬 빛깔타령이냐 할 수 있겠지만 모자반의 색이 살아있어 흡사 바다에서 금방 나온 것 같다. 모자반을 너무 오래 끓이면 파란 모자반 본래의 색이 없어져 흡사 김처럼 보이는데 이 집은 그렇지 않다. 진한 국물에 모자반을 적당히 끓여 낸 것이 맛을 보기도 전에 입안에 침이 고인다.
    

▲ 몸국을 휘휘 젓는다 ⓒ 제주의소리

양념으로 올린 고춧가루와 파를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비로소 맛을 보니 어린 시절 먹던 그 맛을 추억하게 한다. 특히나 싱싱한 모자반이 진한 국물과 어우러져 담백한 맛이 입안에 척척 감긴다. 게다다 쏠쏠하게 건져지는 고기도 쫄깃하게 씹는 감촉이 좋다. 더구나 밥이 압력밥솥에 한 것인지 상당히 기름지고 맛있다.  밥이 맛있다면 웃긴가.
이 집 상당히 진한 국물인데도 잡냄새가 없고 알맞은 농도의 국물이다. 보몸국을 끓일 때 옛날 맛을 내기 위해 물에 갠 메밀가루를 넣는다. 그런데 이 메밀가루를  너무 많이 넣으면 흡사 스프와 같은 농도가 되어 걸쭉하다 못해 오히려 비리게 된다. 그런데 이 집은 물에 갠 메밀가루가 진한 국물을 잡지도 않고 모자반의 상큼한 맛을 오히려 살려주고 있다.
괜히 아는 체하며 몸국이 참 맛있다고 하니 이 집 현정옥사장이 뜻밖의 말을 한다.
    

▲ 몸국, 보기만 해도 배지근하다 ⓒ 제주의소리

“아세 곧주 진짜 옛날 우리 어린 때 먹어난 몸국에 비교행 한 오분의 일이나 냄신가? 진짜 몸국이앤 허민 호루 저무랑 돼지 몇 마리 솖아난 물에 허난 오죽 국물이 진헙니까게... 경허곡 메밀놓은 수애도 솖당보민 국물 맛 더 좋으랜 역불로 터쳐불고 허는디 거기에 따라가집니까게... 우린 기냥 비슷허게 흉내내는 거주 마씀게...”

(미리 얘기하지만 옛날 어릴 때 먹던 몸국에 비교하면 오분의 일이나 될까요? 진짜 몸국이라고 한다면 하루종일 돼지를 몇 마리 삶은 물에 하니 얼마나 국물이 진하겠어요? 그리고 메밀을 같이 넣은 순대를 삶으면서 국물이 더 맛있으라고 일부러 순대를 터트리기도 하는데 거기에 따라갈 수 없죠. 우린 그냥 흉내 내는 거죠.)

그러면서 시원스레 웃는데 듣는 내가 참 기분이 좋다. 그런데 조금 혼란이 생긴다. 겸손한 것인가. 솔직한 것인가. 그러면서 “참 기자분이 촌말 잘 쓰곡허난 잘도 편안허다예. 꼭 우리 남동생같은 생각 들엄쪄게.” 한다. 난 그 말에 “게민 이제부터 누님헙서게” 맞받아친다.
아싸 누나 생겼다. 그것도 맛난 몸국을 끓이는 식당주인인...
    

▲ 기름지고 오동통한 고등어 구이 ⓒ 제주의소리

어 고등어구이 안 시켰는데...

동행한 안현준PD도 같이 배꼽잡고 웃느라 사진을 못 찍겠단다. 뭐 까짓 거 사진 좀 안 나온다고 무슨 대수랴.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이런 게 사는 맛이지.
안현준 PD가 웃느라 한 눈 파는 사이 몸국수를 계속 먹어주는 센스. 몸국에 국수 하나 말았을 뿐인데 참 개운하다. 술 먹고 난 다음 입가심으로도 좋겠다.

찬찬히 기다려 드디어 돔베고기가 삶아져 나왔다. 삶아져 있는 것을 데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문 들어오면 압력밥솥에 천일염과 통마늘만 놓고 20분간 삶는다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다. 가끔 보쌈이나 수육을 집에서 해 먹을 땐 가격이 부담스러워 앞다리 살이나 목살을 사는데 그야말로 껍질, 비계, 살코기의 완벽한 삼겹살을 만난다. 맛집기사 쓰는 게 정말 잘한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 돔배고기 ⓒ 제주의소리

그런데 웬일로 한 눈에도 실한 고등어구이가 반 마리 같이 나왔다.

“어 고등어 구이 안 시켰는데...”

혹시 모를 취재비 과다지출을 우려하지 않을 수도 없어 얘기했더니 서비스란다. 만5천원이상 주문하면 반 마리, 2만원 이상 주문하면 한 마리가 서비스로 나온단다. 그런데 이 서비스라는 것이 그냥 메뉴에 고등어구이 1만원에 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직접 간을 했다는데 짜지도 않고 싱싱한 것이 그야말로 배지근하다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 돔배고기 한점을 쌈싸고 있다 ⓒ 제주의소리

돔베고기는 금방 압력밥솥에 나온 것이라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나는 것은 말할 것 없고 삶아진 정도가 딱이다. 너무 삶으면 가죽부위가 흐물흐물하고 덜 삶아지면 질긴데 입안에서 쫄깃거리는 것이 옛날 잔치때 바로 삶아서 먹는 그 맛이다.
    

▲ 현정옥 사장 ⓒ 제주의소리
거기에다 옛날 추억을 떠올리게 양념간장에 살짝 찍고 자리돔젓갈을 얹어 어린배추에 쌈을 싸먹으니 행복하다. 입가심으로 마농지를 베어 먹으니 참 잘 어울리는 맛이다.

이 집의 찬들은 자극적인 맛은 전혀 없다. 살강거리는 무나물무침이나 마농지나 깻잎무침도 어쩌면 조금 밋밋하다. 그런데 참 내 입에 맞는다. 그래서 물어봤다. 모든 음식에 화학조미료 전혀 안 쓴단다. “찬이 맛 없지예..” 하면서... 내 입맛엔 맛있다. 우리 집 음식담당인 나도 화학조미료 전혀 쓰지 않기에 그 맛을 안다.

“진짜 옛날 맛 그대로 허고 싶어 마씸. 가마솥에 낭불땡으내 돼지 삶고 수애 담곡해그냉 멍석깔앙 잔치집 추룩 허고 싶어 마씸. 경허난 가게 이름도 가마솥이 들어가수게.”

(진짜 옛날 맛 그대로 하고 싶어요. 가마솥에 나무로 불을 때고 돼지 삶고 순대 담고 멍석깔아서 잔치집 처럼 하고 싶어요. 그래서 가게이름도 가마솥이 들어갔어요.)

희망사항이라고 하는데 참 행복하게 보인다. 참 이집 현정옥사장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사람이다. 웃음에도 같이 척척 호흡을 맞추는 여자분이 있어 누군가 물었더니 20년 친구란다. 편한 친구이기에 시작한지 오년 넘었는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같이 일을 한단다. 
    

▲ 애기배추를 넣어 국물맛이 시원하다 ⓒ 제주의소리

유쾌하게 이야기 하고 같이 웃고 떠들며 일어서려는데 마지막 입가심으로 시원한 국물을 내준다. 돔베고기를 삶았던 국물에 기름은 걷어내고 맑게 애기배추를 넣고 끓인 것이라는데 발목을 잡는다. 돔베고기 삶았던 국물, 딱 그만큼의 양이다.

푸짐한 밑반찬보다는 소박한 제주의 밥상을 닮은 찬에, 진짜 몸국에는 못 따라간다며 겸손해 하는 마음이 이미 원조를 닮아 있는 곳이다.

어느 날 돔베고기에 소주 한 잔 생각날 때 약속장소를 이곳으로 잡아, 정말 나를 남동생대우를 해주는지 지켜볼 일이다.

   

<가마솥몸국 안내>

위    치 : 구제주 인제아파트 뒤편, 신산종합시장옆
전화번호 : 064-756-2777
영업시간 : 오후 네시부터 다음날 새벽 다섯시까지
주 차 장 : 없음
차 림 표 : 몸국 5,000원, 몸국수 5,000원, 돔배고기 15,000원(소), 돈낙탕 25,000원

▲ 약도

   

강충민기자는 아들 원재와 딸 지운이를 둔 평범한 아빠입니다.

사소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차별 없는 사회,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현재 제주몰여행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제주참여환경연대 출판미디어사업단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위에 소개하고 싶은 음식점이 있다면 '댓글'에 달아주시거나 제주의소리 편집국이나 강충민기자에게 직접 제보 바랍니다.  (취재계획이 확정되더라도 평가시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지면 기사화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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