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꽃과 함께] 제주도 한 바퀴 도보여행 나서다 9

한 주는 모처럼 휴가 나왔던 녀석을 챙겨서 보내노라, 또 한 주는 조카 결혼식이 있어 도보여행을 나서지 못했다. 연속 2주를 거르고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일요일을 기다리는 어느 날, 전날 번개팅에서 과음을 했던 관계로 이튿날 퇴근시간이 되면서 몇몇이 해장을 위한 벼락치기 각재기국 번개팅이 이뤄진 자리다. 멜튀김과 돔베고기를 시켜놓고 다시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자니 생각지도 못했던 민호 녀석이 들어왔다. 후후, 녀석도 역시 해장이 필요했다나? 돌아오는 일요일에 도보여행을 같이 가자고 했더니 네가 가자는데 안 갈 수 있느냐며 기분 좋게 응낙해 주었다. 그래놓고는 일요일에 다른 계획은 없지만, 가파도 청보리축제나 가볼까 했다며 아쉬운 소리 한 마디 던진다.

'가만, 가파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 솔깃했다. 목적지를 바꾸자고 해놓고는 같이 갈 사람을 모집하마고 했다. 아홉 명이 같이 하였다.

미리 배표를 예약하려고 했더니 전화상으로 예약은 받지 않는다며 현장에서 끊으면 된다고 했다. 10시 배를 탈 요량으로 아홉 시 30분쯤에 도착했는데 웬걸, 12시 배도 만선이 되고 1시 배뿐이 없단다. 배가 있거나 없거나 표는 너희가 알아서 해라, 난 대기실에서 만나는 이들과의 미팅에 벌 한 마리가 되어 이리저리 카메라를 들고 누볐다.

대기실 안에서 볕도 부족 하련만 공주처럼 고운 빛깔과 다소곳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베르게니아.시베리아가 원산지로 시베리아바위취라고도 하며 그 외에도 설화, 히말라야바위취, 설원화, 동설화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베르게니아

이파리에 숨어서 숨바꼭질을 하나보다, 굵직한 모습으로 이파리 아래에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카메라를 들고 앞에서 얼쩡대는 나를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큰천남성

별 수 없이 오후 한 시 배를 예약해 두고서는 근처의 오름을 산행하기로 했다. 군산으로 갔다. 별로 높지는 않은 곳이었지만 한라산 이남이 한눈에 보이는 정말 기가 막히게 멋있는 곳이었다. 산을 오르며 헉헉거리자니 숨도 차고 다리도 아프고, 게다가 일행을 따라가자니 숨돌릴 시간도 없다. 잠깐잠깐 셔터를 누르자니 거친 숨결을 못 이긴 카메라가 죄다 흔들려 아까운 구슬붕이도 버려야 했다.

   
꿩의밥

   
꿩의밥과 제비꽃

양지꽃도 제법 피어나고 있어 아직은 쌀쌀한 산의 정상을 포근하게 감싸 돌고 있었다.

   
양지꽃

산은 온통 제비꽃 천지다. 이들과 함께하는 발걸음이 힘들지만은 않다.

   
제비꽃

마련된 산책로 계단에 누군가의 발길에 밟히기도 했으련만 다친 곳이라고는 하나 없는 금창초가 곱다 못해 눈이 부시다.

   
금창초

군산에 오르는 동안은 할딱거리노라 몇 컷 건지지도 못했거니와 또 메모리스틱 에러까지 발생해서 애를 먹였다. 밧데리며 칩을 몇 번이나 뽑아냈다가 다시 꼽았지만 되지 않았다. 되지도 않는 카메라만 만지작거리자니 울화통이 터졌다. 물론 산의 정상에 오른 기분이 와르르 무너졌고 그 기막힌 풍경도 눈앞에서 입술을 삐쭉거리며 나를 약 올렸다. 속이 메슥거려 죽을 것만 같았다. 산에서 내려와 무심코 카메라를 다시 켰는데 요행인지 정상으로 돌아왔다. 살 것 같다. 일순간 속이 메슥거리던 증상도 사라졌다.

모슬포에서 유명하다는 밀냉면을 점심으로 앞에 놓고 김연아의 스케이팅 세계기록 장면에 우리 일행은 다시 환희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여행을 즐겼다. 다시 가파도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한 대기실, 아침에 보지 못했던 금낭화가 있었다. 실내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 집 마당의 금낭화보다 꽃은 더 많이 피어 있으면서도 연약했다. 조롱조롱 달린 양귀비과의 금낭화는 영락없는 소녀의 모습이다, 양 갈래로 머리를 곱게 묶은 해맑은 소녀 말이다.

   
금낭화

돌단풍도 있었고 우리 집에 있는 하늘매발톱은 언제 피려나, 이곳엔 벌써 잔뜩 피어 있었고 그 좁다란 화분에 작약도 합세하여 사이좋게 피어 있었다.

   
하늘매발톱

   
작약

배가 다가온다. 저 배 안의 사람들이 내리면 우리는 그 배를 타고 가파도로 갈 것이다. 가이드인 듯싶은 갈매기도 따라온다.

   
가파도에서 나오는 배

15분가량을 타고 가면 도착이 된다는데 반가운 나머지 벌써 가파도는 저만치서 손짓한다. 한눈에 보아도 평화를 떠올리게 하는 섬 속의 섬 가파도. 다다르기도 전에 흥분의 물결이 파도에 뒤질세라 온몸을 휘감는다. 배에서 내리는 즉시 민호와 군자는 돌아가는 편을 예약하고 우린 또 행여 한 사람이라도 빠질세라 배표와 3,000원짜리 제주사랑 상품권을 교환했다.

화사한 봄기운을 일행에게 안겨주고 싶음인지 맨 먼저 민들레가 반긴다. 히야, 내가 찍었지만 내 실력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맘에 드는 민들레다. 저 꽃술 사이사이로 금방이라도 노랑병아리 하나 둘 삐약거리며 튀어나올 것만 같다.

   
민들레

행사장으로 향하여 걸어가는 길, 섬은 온통 청보리였다.

   
청보리에 둘러싸인 마을

   
청보리 평야

그야말로 청보리 평야다. 어느 집 마당에 핀 섬딸기나무 꽃이 곱다.

   
섬딸기나무

행사장에 도착하여 우린 막걸리 네댓 병에 모둠회 안주를 시켜놓고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무료시식회를 기다리면서 낮술을 즐기고 있었다. 27,000원어치 상품권과 모자라는 금액을 충당하여 계산하고 나니 80명 선착순 뿔소라 무료시식회의 안내방송이 행사장을 누빈다. 낚시꾼까지 죄다 불러 모을 심산인가 보다. 미애와 난 앞서 달렸다. 돌소금 위에서 지글지글 끓으며 구워지는 소라를 바라보며 이쑤시개를 들고 어린아이처럼 얌전하게 기다렸다.

   

ㅎㅎ 난 그 앞에 섰다가 자그마치 다섯 개나 먹을 수 있는 횡재를 누렸다. 최고 많이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대현이는 여섯 개나 먹었다 했고 영준이도 다섯 개를 먹었단다. 일행 대부분이 네 개씩은 먹었나 보다. 어쩌면 우리 일행이 80개의 뿔소라 중 반은 먹어치웠는지도 모르겠다.

행사장을 나서고는 고인돌 군락지로 들어섰다. 고인돌은 청보리 물결 사이에서 아늑하니 누워 보리피리를 불고 있었다. 희진이와 수아는 저만치 뒤처져서 냉이 캐노라 정신이 없다. 고인돌을 등지고 한 컷 기념촬영을 하는 친구들을 뒤에서 잡았다.

   
고인돌을 등지고 한 컷

보고 또 보아도 그림이다. 저 멀리 송악산 위에 걸터앉은 산방산과 그 옆의 형제섬도 풍경을 연출하는데 한 몫 톡톡히 하고 있었다.

보리밭/박화목 작시 윤용하 곡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 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이지 않고
저녁노을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보리는 채 익지도 않았는데, 엿기름, 누룩도 채 빚어내지 못했는데 술은 익었나 보다. 술에 취한 듯 멋들어지게 뽑아내는 윤용하님의 가곡 보리밭이 어디선가 들려온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부르는 이 없는 데 말이다.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그가 왜 알콜 중독자가 되어야만 했던가를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원래 박화목이 가사를 만들었을 때 제목은 '옛 생각'이었다고 한다.

   
보리밭 사잇길로

   
청보리밭 산책로 B코스

   
그림 같은 섬 안의 청보리밭 물결

아직도 해국은 남아 있다. 바닷가에서 톳을 채취하는 관광객도 신이 났다.

   
톳을 캐는 관광객

배는 다시 돌아오고 우리는 그 배에 몸을 실었다.

   
가파도로 들어서는 배

송악산과 산방산도 형제섬도 평화를 떠올리게 하는 작은 섬 가파도도 안녕.

   
배안에서 돌아다 본 가파도 마을 풍경

처음엔 무작정 나선 도보여행이었지만, 비양도나 마라도는 가본 곳이기에 뒤로 젖혀두고서라도 문섬이며 우도까지도 다 가봐야 하겠다는 목표 하나가 이번을 계기로 하여 더 생겨났다. 가만히 누워 있어도 가파도의 청보리 평야가 눈에 아른거린다. 꼭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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