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민의 상상의섬]제2신공항과의 선택과 집중의 관점

프랑스의 기술자인 파비에르(Favier)는 말이 끄는 수레가 다닐 수 있는 해저터널 구상안을 1802년에 제안하였지만 동시대 대다수는 검토할 가치도 없는 허무맹랑한 공상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1994년 도버해협의 해저를 관통하는 총연장 50km의 채널터널의 개통으로 불과 200년 만에 파비에르의 상상은 실현되었다. 과거 해저터널에 대한 논의는 기술측면의 실현가능성이었지만 오늘날 논의방향은 천문학적 소요예산의 타당성으로 전환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도버해협을 관통한 해저터널의 사례처럼 한일해협에 해저터널을 설치하여 우리나라와 일본을 연결하는 구상은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 왔다. 이러한 한일 해저터널에 대한 초창기 구상은 기술적 난제로 인해 원론적 수준에서 논의되었지만 한일 양국의 토목기술이 가히 세계 최고수준으로 성장한 이후부터 해저터널의 타당성은 주로 경제적 측면에 집중되었다. 즉 한일 해저터널에 투자한 비용의 상쇄가 가능한 경제적 파급효과가 전제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한일 양국의 역사적으로 미묘한 관계로 인해 편익분배의 공평성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한일 양국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평범한 국민의 판단으로도 한일 해저터널 완공의 최대 수혜대상국은 일본으로 인식되고 있다. 단기적 측면에서 특정 국가의 편익독점은 불가능하지만 장기적 측면에서 일본으로의 편익독점 현상이 예견되고 있다. 즉 현 시점에서는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한일 해저터널이 관통된다면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장으로 물류 중개 수수료를 기대한 북한정부의 전향적인 입장변화가 가능하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최종 종착지로서의 막대한 파급효과가 예견되는 일본과 중개수수료를 기대한 북한과는 달리 남한으로서는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에 직면할 수 있다. 더구나 해저터널로 인해 물류수송체계의 변화가 불가피해지면 중개무역항구를 지향하는 부산항의 미래도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점이 제기될 수 있다.

한일 해저터널의 불평등한 편익분배구조로 인해 한국에서의 논의는 좀처럼 발전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일본으로서는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전력투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간헐적으로 터지는 일본 핵심각료의 역사망언뿐만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태도에 분개한 우리사회의 정서를 감안하면 한일 해저터널의 실현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해저터널을 공론화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일본이 주도하고 한국은 미온적인 한일 해저터널과는 달리 한중 해저터널 계획은 경기도가 주도하는 반면 중국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더구나 총연장 300여km 구간에 소요될 천문학적 비용 조달문제로 인해 현실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가 간 해저터널의 논의는 경제적 타당성뿐만 아니라 정치적 변수까지 개입되면서 수면 아래로 잠복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처럼 복잡한 이해득실 계산이 필요한 국가 간 해저터널 논의와 비교해 보면 영토 내 해저터널 계획은 소모적인 논의를 줄이고 실현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73km의 해저터널 구간을 포함하여 총연장 167km의 해남-제주 고속철도 구상은 2008년 하반기부터 전라남도의 주도로 공론화가 시도되고 있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교통연구원에서 추정한 공사비용은 14조 6천억 원이고 11년의 공사기간은 분명 한일 또는 한중 해저터널의 소요예산과 비교하면 실현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전라남도 해남군과 제주도를 연결하는 해저터널은 호남고속철도의 연장선으로 계획되고 있다. 고속철도의 운용목적은 최대한 신속히 승객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이동시키는데 있는 것으로 화물운송기능은 극히 미미하다. 그런데 천문학적 소요비용에도 불구하고 물류수송의 관점에서 한일 및 한중 해저터널 계획이 논의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승객전용의 해남-제주 해저터널의 타당성 확보는 쉽지 않을 것이다. 즉 관광목적지인 제주가 종착지인 해남-제주 해저터널 이용객 다수의 탑승동기가 레저관광이라는 점에서 국책사업으로서의 우선순위에서 배제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

경기도에서 주도하는 광역급행철도(일명 대심도 전철)의 추정공사비용인 13조 9천억 원은 해남-제주 해저터널 소요예산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고 사실상 승객전용이라는 공통점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광역급행철도의 탑승동기가 일상생활의 일부분인 반면 해저고속철도인 경우 레저관광의 목적이 강하고, 소요예산의 80%를 민자 및 개발이익금으로 충담할 광역급행철도와는 달리 해저고속철도인 경우 사실상 100% 국비지원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해남-제주 해저고속철도의 타당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라남도가 주도하는 해남-제주 해저고속철도 기본구상에 제주도가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히게 되면 효율성 측면에서 제2新공항 건설에 미온적인 중앙정부로서는 합리화의 수단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즉 추정예산 14조 9천억 원의 대규모 사업추진에 매진하면서 동시에 2-5조원으로 추정되는 제2新공항 건설을 동시에 요구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특히 도세가 열악한 제주도로서는 선택과 집중의 논리에 의거해 해저고속철도 또는 제2新공항 중에서 명확한 입장을 견지하지 않는다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우(憂)를 범할 개연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해남-제주 해저고속철도의 기본구상안은 한국교통연구원에서 제시한 것인데 제2新공항 건설타당성 용역도 동일한 연구기관인 한국교통연구원에서 수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1%에 불과한 제주도를 대상으로 14조여 원의 해저고속철도 뿐만 아니라 동시에 2-5조원이 소요될 제2新공항 건설의 타당성도 가능하다는 논리를 동일연구기관에서 제시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사업예산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해남-제주 해저고속철도 논의가 탄력을 받게 되면 제2新공항 건설의 타당성 연구는 관심 밖으로 밀려날 개연성이 높다.

제주도로서는 2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첫째는 한구교통연구원에서 수행 중인 타당성 결과가 발표되기 전 제2新공항 건설 포기를 공식 선언한 후 해남-제주 해저고속철도 기본구상을 지지하는 것이고, 둘째는 해남-제주 해저고속철도 논의를 공식 거부하고 제2新공항 건설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제 3의 대안모색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급적 신속한 제주도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제주의소리>

<문성민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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