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낙의 심리적 기제 관점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심리적 방안으로는 크게 1) 문에 발 들여놓기 기법(foot-in-the-door technique)과 2) 얼굴 들이밀기 기법(door-in-the-face technique)이 있다. 문에 발 들여놓기 기법의 역순(逆順)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얼굴 들이밀기 기법은 문에 발 들여놓기 기법과 동일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심리적 기제는 일상생활에서 본인이 주체가 되거나 또는 대상이 되는 방식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문에 발 들여놓기 기법이란 말 그대로 문을 닫지 못하도록 발을 문지방에 걸치는 것이다. 주로 방문판매원이 가가호호의 초인종을 누른 후 판매하고자 하는 상품설명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 집주인이 문을 닫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발을 살짝 걸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냉정히 뿌리치지 못하고 방문판매원을 집 안으로 들여 놓으면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을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데 충동구매로 인해 심리적 불균형 상태에 빠진 집 주인으로서는 심리적 균형상태를 회복하고자 추후 방문판매원 출입을 거부하거나 또는 필요치 않지만 추후 필요성이 생길 것이라는 자기합리화 기제를 선택할 수 있다. 만약 방문판매를 거부하는 사람이 증가한다면 안정적인 방문판매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방문판매원으로서는 초기 판매단계에서 저렴하고 실속 있는 상품에 초점을 두어 상품구매자인 집 주인으로 하여금 자기합리화가 가능하도록 한 후 점증적으로 고가의 상품구매를 유도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작은 요구로부터 단계적으로 수준을 높여가는 문에 발 들여놓기 기법과는 정반대로 문에 얼굴 들이밀기 기법은 무리한 사항의 요구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백화점 완구매장에서 50만원으로 책정된 RC자동차(Radio Control & Remote Control Cars)를 사 달라고 떼를 쓰는 자녀의 무리한 요구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지만 그치지 않는 자녀의 떼로 인해 20~30만원 상당의 완구제품을 대안으로 고려하게 된다. 평상시라면 완구제품 구매비용으로 10만 원 이상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부모라 할지라도 50만원으로 출발한 기준점(anchor point)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문에 얼굴 들이밀기 기법은 노사협상과정에서도 빈번히 채택되는 심리적 전술이다. 즉 첫 번째 협상에서 노사 양측 현실적으로 수용 불가능한 사항을 요구하지만 협상이 진행되면서 상호 양보안을 제안하면서 유연한 최종안이 타결된다. 이처럼 다소 과격한 뉘앙스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문에 얼굴 들이밀기 기법은 인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의 메뉴에서 초고가로 책정된 음식은 실질적인 판매목적이라기 보다는 다음 메뉴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것처럼 인식시키는 전술이기도 하다.

제주해군기지조성 협상과정에서 전투기가 배제된 남부탐색구조부대 설치를 명문화한 공군은 문에 발 들여놓기 기법과 문에 얼굴 들이밀기 기법을 적절히 활용하여 최대 수혜대상으로 부상하였다. 해군기지 유치의 당위성을 확보하고자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지만 당시 찬반의 대상은 해군기지에 국한되었을 뿐 공군과 관련된 사항은 여론의 동의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따라서 제주사회에서 진행 중인 격렬한 갈등의 당사자는 대한민국 해군일 뿐 공군은 논의조차 되어 있지 않다가 기본협약서(MOU)에 남부탐색구조부대의 설치를 명문화한 공군은 어부지리의 실리를 취한 것이다. 기본협약서 타결 직전 언론을 통해 전투공군기지 검토방안을 흘린 후 제주사회의 강력한 거부 분위기를 은연중 조성한 후 비전투 명목으로 공군기지를 관철한 것은 효율적인 문에 얼굴 들이밀기 기법이다.

전투기 배치가 배제되었지만 제주도에 공군기지 설치가 가능해면서 문에 발 들여놓기 기법이 진행될 것이다. 당분간 탐색구조부대라는 당초 취지로 공군기지가 운용되겠지만 2014년 제주해군기지가 조성된 후 주변정황이 긴박하게 돌변하면 전투대대 설치를 허용할 수밖에 없게 될지도 모른다. 즉 제주도 남방해역의 주도권을 두고 해양대국인 일본과 중국과 대치하는 와중에 상대적 열세인 공군의 작전반경범위로 인해 해군전력이 밀리게 되면 들끓는 국민여론의 압력으로 전투대대 배치가 합리화될 수 있다. 제주도로서는 애당초 공군기지 자체가 조성되지 않았다면 전투대대 배치를 목적으로 한 공군기지 조성계획 자체를 반대할 명분이 있지만 남부탐색구조부대의 형태로 공군기지가 운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행기종만 전투기로 변경하는 방식을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남부탐색구조부대의 명분으로 허용된 공군기지를 발판으로 전투비행기지로 변경을 염두에 둔 공군의 문에 발 들여놓기 기법은 효율적이다.

인명구조가 주목적인 남부탐색구조부대의 성격이 전투비행기지로 변질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는다면 향후 제주도로서는 제시할 협상카드가 없게 된다. 이런 점에서 남부탐색구조부대의 설치는 허용하되 운용될 비행기종으로는 인명구조용 헬리콥터로만 제한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헬리콥터의 특성으로 최소한의 계류장만 필요할 뿐 비행기 착륙에 필수적인 활주로는 건설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애당초 남부탐색구조부대 부지의 최소화가 가능할 것이다.<제주의소리>

<문성민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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