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이슬비가 내리던 날 아침 저는 당신의 영정을 들고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을 뒤로하고 나섰습니다. 당신이 평생 사랑하시겠다던 어머니도 울고, 지켜주겠다던 동생들도 우는데, 저는 울 수가 없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조용하지 않은 침묵의 시간동안 저는 당신을 떠올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어떻게 힘든 오늘 하루를 마칠 수 있을까, 오늘 일을 도와준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리고 내일은 어떻게 일어나고, 무슨 일이 생길까 … 오통 뒤죽박죽인 그때는 오늘의 주인공이신 아버님, 당신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관이 내려지고, 어른들이 이말 저말 하며, 젖은 흙들이 당신을 덮고 있을 때가 되어서야 제 마음이 덜컹하며, 한줄기 눈물이 주룩 하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래도 소리 내서 울 수 없었던 것은 사람들에게 기대 오열하는 어머니와 동생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순간 이후 제가 지고 가야할 시간들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그리고 2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던 시간들을 어머님, 동생들 그리고 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버님이 지켜오던 공간들이 가끔은 우리 가족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어머님의 말씀처럼 항상 우리주변에서 지켜봐 주시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달래보기도 합니다. 가끔 마음이 심란해서 아버지를 찾아 뵙고 오는 날은 왠지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보면 그게 꼭 빈말은 아닌 듯 합니다.

걱정 많이 되시죠? 어머니도, 저도, 동생들도… 이제 제 나이가 33살이고 동생들도 나아가 모두 차 이제 하나 둘 결혼도 해야 하는데, 아마 계셨다면 많이 걱정하셨겠다는 생각과, 맏이인 저 조차도 아직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사실에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동생들이 하나 둘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서 가고 있고, 어머니도 아직까지는 건강하시고, 무엇보다 다른 친인척분들과 그리고 아버지의 지인 분들이 많이 도와주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걱정은 덜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 고맙습니다. 사실 아버지의 오랜 투병기간 동안 원망을 했었습니다. 아버지 치료비와, 가끔 가족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건강을 소홀히 하실 때는 정망 밉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맙습니다. 비록 몇 년에 걸친 오랜 투병기간 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기간만큼은 아버지는 우리의 기둥이셨고, 하늘이였고, 땅이었습니다. 그렇게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면 쳐다봐 주시고, 안아주시고, 웃어주시던 아버지셨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픈것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셨던 모습들이 하나둘 떠오를 때문 지금도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집니다.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버지의 음성, 아버지의 숨결, 아버지의 미소… 그 모습 오래도록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하나하나 기억하게 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아버지… 가끔 아버지를 보러 갈 때, 아버지를 앞에 두고 울 때도 있었습니다. 못났다 하시겠지만, 아버지… 그래도 그 순간에도 저에게는 아버지십니다. 안개가 자욱하던 그날 소리내 울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조용히 아버지가 그리워 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강해지고, 힘을 얻고, 다시 세상에 한걸음 한걸음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매순간 아버지가 항상 곁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음을 느끼며, 이렇게 독백처럼 편지를 써 봅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

2009년 어느 봄날
아들 올림. 

<제주시 일도2동 황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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