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어느 날 아침 갑작스레 찾아온 삼촌의 소식을 우리 가족 모두 믿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또 술을 드시고 다치셨구나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오후에 걸려온 전화는 뇌출혈이 있어 급하게 수술을 했고, 지금은 중환자실에 누워계신다는 내용이었다.

머릿속에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릴 적 삼촌이 오토바이에 날 태우고 동네를 신나게 돌아다녔던 일, 방학이 되면 유난히 바다를 좋아하던 삼촌과 함께 밤새 낚시를 하던 일, 가끔씩 사촌들 몰래 과자를 숨겨놓고는 나에게 몰래 전해주던 삼촌의 모습. 눈물이 핑 돌았다. 삼촌이 나에게 주었던 추억이 이토록 많은 줄 미처 몰랐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삼촌이 하시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늘 진한 스킨향기가 나던 삼촌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 늘 농담을 건네고 같이 놀아주던 삼촌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댔다. 숙모와 싸우는 횟수가 잦아지다 결국 서로 한 명씩 아이를 맡고 이혼하셨다. 삼촌은 민석이를 데리고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게 되었다. 민석이는 커갈 수록 말수가 줄어들었고 삼촌과 할아버지가 다투는 날이 많아질수록 다른 형제들과도 다투는 날이 많아졌다. 너무 많이 달라져버린 삼촌을 보면서 어느 날 부턴가 나도 모르게 삼촌을 미워하게 된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삼촌이 너무 미웠다.

가끔씩 민석이를 만나면 항상 주눅들어있고 말을 하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창 사춘기인데 항상 술에 의존하는 아빠와 지내야하는 민석이를 보면서 마음 속으로 큰 상처를 입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어느 날 밤, 술에 취한 삼촌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날도 어김없이 삼촌은 전화를 붙들고 같은 말을 반복하였고 참지 못한 나는 삼촌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자라 자기 자식한테도 상처를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삼촌과 나는 그날 전화를 붙들고 몇 시간 동안 소리를 지르며 싸웠고 결국 그 날 이후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제사 때문에 온 가족들이 모였다. 잠깐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데 현관 앞에 서 있는 삼촌의 모습이 보였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삼촌이 날 부르셨다.

“미안하다.. 그래도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라..”

그 말에 난 매몰차게 말했다. 괜찮다고. 그냥 평소 하시던대로 하시라고. 민석이는 내 동생이니 내가 알아서 챙겨주겠지만 삼촌과는 삼촌이 변하지 않는 한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후 삼촌은 내가 보는 앞에서 더 이상 술을 드시지 않았다. 가끔 만날 때 먼저 말을 건네시고는 내가 짧게 답하면 그걸로 좋아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모습으로 내 앞에 계셨다.

면회시간에 맞춰 중환자실에 들어간 나는 수술을 마치고 겨우 눈을 뜨고 있는 삼촌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날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삼촌의 손을 잡고 멍하니 서있었다. 면회 시간이 끝나고 내일 다시 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중환자실을 나왔다. 다음 날, 아버지에게서 삼촌이 어제 새벽 위독한 상황이 되어 다시 수술을 했고 결과가 그리 좋지 않다는 연락이 왔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닐 거라고, 이번에도 삼촌이 날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또 외쳤다. 중환자실을 향해 달리는 와중에도 다 거짓말이라고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어제와는 달리 눈을 뜨지 못하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삼촌을 보면서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후로 일주일 정도 매일 면회시간에 맞춰 삼촌을 만나러 갔다. 아무런 차도가 없는 삼촌의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변화를 찾아내려 보고 또 보았다.

꿈에 삼촌이 나왔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의 삼촌을 나는 따뜻하게 안아드렸다. 그 꿈을 꾼 날 저녁,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친구와 몇 주 전부터 한 약속이라 취소하지 못하고 삼촌을 만나러 가지 못했다. 친구와 한참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설 때 쯤 휴대폰 벨이 울렸다. 삼촌이 가셨단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미친 듯 병원으로 달렸다. 면회시간이 아니라며 잡는 간호사를 뿌리치고 중환자실로 뛰어들어가 삼촌 침대 앞에서 주저앉아 소리내어 울었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는 말 하려했는데 왜 끝까지 내 말 듣지 않고 삼촌 마음대로 하냐고 울었다. 그렇게 매번 망설이다 하지 못했던 말을 삼촌이 떠나고 난 후에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삼촌을 보냈다.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다. 누구에게도 쉽게 삼촌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내 가슴 속에 아픈 기억으로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내 아픈 기억 속에서 삼촌의 모습을 꺼내려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아픈 기억이 아닌 나에게 많은 사랑과 추억을 남겨준 행복한 기억으로 삼촌의 모습을 새길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하늘에 편지를 부칠 수 있다면 삼촌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삼촌!! 삼촌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내가 늘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하는 내 삼촌입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제주시 화북1동 김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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