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영 칼럼] 주민없는 일방통행 자성계기 되기를

주민자치의 새로운 역사가 제주에서 시작되었다. 광역 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 운동이 전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도지사 주민소환의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4월27일 정부와 제주도간의 해군기지건설협약(MOU)체결이었다. 협약이 체결되자마자 도지사는 도피하듯 외유에 나섰고, 협약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제주사회는 들끓었다. 각계에서 껍데기뿐인 굴욕적 협약이라는 비판과 성토가 쏟아졌다. 제주도의회는 사전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체결된 협약을 인정할 수 없으며 도지사의 즉각적인 사과를 요구하였다. 제주경실련, 천주교평화위원회 등에서 김태환지사의 주민소환을 촉구하는 성명과 기자회견이 이어지면서  20여 시민사회단체와 천주교, 기독교 등의 종교계, 그리고 서귀포 강정마을회는 ‘김태환지사주민소환운동본부’를 구성을 결정하고  도지사 주민소환을 위한 공식절차에 들어갔다. “도민이 선출한 도백을 그 임기가 다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심판대에 세우고자하는 심정은 참담하다”고 ‘주민소환운동본부’는 밝혔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궁색하기만 한 김 지사 답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가! 무엇이 그리 급했는가. “정부가 약속한 내용이 변질될까 우려해서 문서화 한 것이다.” 서둘러 귀국한 도지사의 답변은 궁색하기 그지없다. 정부가 무엇을 약속했단 말인가. ‘남부탐색구조부대에 전투기배치 않기로 한 것’이 그 증거란다. 국방부가 공군이 이에 대해 확약을 했는가. 1988년 모슬포 공군기지 반대투쟁 이후에 제주공군기지를 포기한다는 공식 언급은 없었다.  지사는 말이 없다. 60만평에 달하는 탐색구조부대는 어디에 들어오는가. 지사는 이를 용인한 것이 아닌가. 이 60만평의 탐색구조부대는 그 자체로 공군기지인데도 지사는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전투기 배치는 언제해도 상관없는 시간문제인데도 말이다.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부지의 무상양여는 세부협약에 담아오겠으니 믿어 달라”고 한다. 기본협약에 담지 못한 것을 세부협약에 담겠다는 논리는 들어보지 못했거니와 이미 다 퍼준 협상이 아닌가. 일제가 강제 수용한 주민들 땅을 돌려주고 일대를 평화유적지로 조성하는데 국방부가 선선히 동의할 거라 믿는 도민이 얼마나 되는지 지사는 정녕 모른단 말인가. 

“서귀포 해군기지는 국가가 추진하는 안보사업으로 지방자치단체도 일정부분 책무가 있다.”고 지사는 말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럴수록 정당하고 투명하게 추진해야한다. 행정이 노골적으로 개입하여 유치신청을 이끌어 낸 정황이 이미 강정마을에서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는가. 절대다수의 주민이 참여한 주민투표에서 90%가 넘는 주민이 반대의사를 표했는데도 지사는 요지부동이다. 단 한 번의 여론조사, 그것도 인지도 조사도 없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여론조사로 밀어붙이는 지사야 말로 국가 안보정책을 위태롭게 하는 장본인이지 않은가.

"영리병원 추진 않겠다“고 밝혔던 김 지사, 1년도 안된 지금은...

주민소환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앞두고 ‘다수 주민의 뜻에 따라 제주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데 노력할 뿐’이라는 지사의 발언의 진정성을 믿는 도민도 그리 많지 않다. 지사가 어디 주민의 뜻에 순순히 따르는 분인가.

“주민의 삶을 좌우할 국가 주요정책을 여론조사로 결정하지 말아 달라. 왜 지사가 있는 것이냐. 소신이 그러하다면 소신대로 밀고 나가시라. 또한 시민사회단체 역시 양식과 소신에 따라 옳고 그름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 하겠다. 대신에 사회적 공론화의 기회를 충분히 마련해 달라.” 작년 영리병원 파동 때 지사께 직접 드린 충언이었다. 지사는 듣지 않았다. 이미 도민의 혈세를 쏟아 부은 관제 여론몰이에 전 공무원과 유관단체를 총동원한 상태였다. “도민의 찬성이 50%를 넘지 못하면 영리병원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하면서. 그 약속이 1년이나 갔는가.  

도민들은 이제 절실히 느끼고 있다. 도지사를 소환해야할 이유가 단지 군사기지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지사가 사활을 걸다시피 추진하는 주요 정책의 추진 과정 과정에서 오만과 독선이 자리 잡고 끊임없이 지역사회갈등을 불러오고 있다. 그런 갈등에서 소진되는 사회적 비용은 주민소환으로 소요되는 비용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임기가 1년여 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려야하는 이유이다.

공무원 동원해 어리이날 행사장에서까지 ‘카지노’ 서명 받는 제주도정

왜 어린이날 행사장에 가족과 지내야할 공무원이 동원되어 카지노 허용서명을 받아야 하는가. 그런 공무원들의 심정을 지사는 단 한번이라도 헤아려 보았는가. 공무원노조와 서귀포시장 사이에 서명 강제동원을 둘러싼 일전이 벌어지고 있기까지 하다.

왜 한-아세안 정상회담 친절 교육장은 병원장이나 의사들(이해당사자들)의 영리병원 홍보장으로 변해야한단 말인가. 찬반양론이 존재하고 정책 시행의 부작용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 검토가 필요함을 정부도 인정하는 영리병원 사안인데, ‘오해와 진실’이라는 문구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담당국장을 면박주고 언론에 대서특필된다고 일 잘하는 지사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매 사안마다 도민의 심판을 받을 각오로 도정을 이끌고 왔다. 갈등해소를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하고 반대하는 분들과의 대화문도 항상 열어놓겠다”는 지사의 말의 진정성을 정말로 믿고 싶다. 허나 어찌할 것인가. 지사가 진정 그러하든 지금까지처럼 그러하지 안하든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 허진영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지금 이 순간 대명천지에 피를 토하며 쓰러질 만큼 억울함을 가눌 길 없는 강정마을 주민들 처지를 지사는 헤아려 보시기 바란다. 주민소환의 전 과정은 짧고도 길다. 그것은 제주의 미래를 염려하며 선택하는 도민들의 조용하고도 분명한 명예혁명이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은 
성공하든 혹은 실패하더라도 정말로 지역사회가 가야할 옳은 길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리라 믿는다.

“다만 이렇게까지 오게 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모든 것이 저의 부덕의 소치로 생각한다.”는 지사의 말처럼 일방적, 성과주의적 정책추진의 오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검토되는 기회가 되기를 도민들은 바라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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