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눈물과 함께 살아내야만 했던 어머니의 삶
한숨, 눈물과 함께 살아내야만 했던 어머니의 삶
  • 김진숙 (-)
  • 승인 2009.05.11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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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삶은 아픔과 한숨, 눈물로 범벅된 질곡의 삶 그 자체였다.

눈물과 한숨으로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삶을 살았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으며 가  족을 위해 꿋꿋하게 참아내고 이겨내신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글썽이고 마음   이 쓰리고 아파온다.
 
외할머니가 결혼 후 여러 해 동안 애기가 없다 어머니가 태어나서 어렸을 적에는 외 할아버지 무릎 위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그렇게 아끼고 예뻐하는 사랑스런 자식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의식이 있고 깨어있는 분이셨다. 여자도 배워야 한다며 어려운 가운데서도 초등학교에 입학시켜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사랑을 받으며 학교 다니던 어느 날 외할아버지가 홀연히 일본으로 가버리셨다. 외할아버지가 일본으로 가신 후 다니던 학교를 중단하고 어머니를 도우며 막내 동생과 함께 셋이서 어렵고 고단한 생활을 하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을 늘 가슴에 안고서... 
 
20대 초반에 사촌오빠의 소개로 옆 마을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했지만, 아버지는 생활력이 부족하고 도박을 좋아해 어머니를 많이 힘들게 했다.

내가 어렸을 적 아버지는 밖에서 화투를 쳐서 돈을 좀 딴 날에는 꼭 과자를 사다주곤 했는데, 나는 어머니가 속상해하는 줄도 모르고 기쁘게 받아먹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야속한 딸이었다.  아버지는 가출도 자주 했었다.

서울로, 부산으로, 특별히 하는 일 없이 한량처럼.. 어머니는 너무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지만 속으로만 삼키며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더 악착같이, 열심히 세 아이 들을 돌보며 일을 하셨다. 혼자서 삭이고 삭이며...

외할머니는 일본에 간 큰 아들이 북송선을 탔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아 실명을 하게 되었다. 그때 어머니 마음이 어땠을까? 아버지는 일본에 가시고, 어머니는 실명을 하고 남동생은 북송선을 타서 북으로 갔고, 남편은 도박을 좋아해서 가정은 돌보지 않고....

정말 기가 막혀서  말도 안나오고 눈 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남편이 힘들게 하고, 어머니가 실명을 한 가운데서도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셨다. 새벽부터 밤까지, 놀기 좋아하는 남편을 얼르고 달래면서 그렇게 다른 사람보다 더 일찍 ,더 많이 일하면서 악착같이 노력했다. 덕분에 재산도 조금씩 늘어갔다.

어머니가 그렇게 많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자식들을 키우고 열심히 일했지만, 자식들 또한 어머니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항상 어릴 때 부터 비교가 되었던 옆집 자식들은 의대, 교대에 척척 합격했지만, 어머니의 자식들은 고졸에다 한라대 간호과에 입학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리고 자식 셋 다 결혼을 했지만 결혼생활도 평탄치 않았다. 아들과 큰 딸의 이혼과 한명뿐인 아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이일 저일에 손 대면서 재산을 탕진시켜 나갔고,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큰딸의 만성신부전증으로 진단을 받아 일주일에 세 번씩 혈액투석을 받아야만 하는 기막힌 상황이 되었다.

어머니는 혼자 집에서 여러 가지 생각에 눈물만 흐른다고 한다. 집이 아닌 밖에서는 항상 씩씩하고 용감하다. 일하는 것도 동네에서 1등이고, 무슨 일을 하든지 사전 준비 등 늘 철저하시다. 내 친구는 “진숙아, 네 어머니는 전혀 안 늙을 것 같다, 워낙 씩씩하잖아”라며 웃으면서 얘기를 한다. 그런 모습을 보이려고 남몰래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몇날 몇일  뜬눈으로 밤을 지셨을까? 어느 누가 어머니의 아픔과, 한숨, 눈물의 삶을 헤아릴 수 있을까?

어느 날 인가 부엌에서 울부짖듯이 한 말이 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혀있다.  

“내가 낳은 자식들은 무사 하나같이 이렇게 못 살암신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도 안 주고, 헤꼬지도 안했는데 내 삶이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있을 수 밖에... 그렇지만 어머니!!!  이게 삶의 전부는 아니잖아, 앞으로 살다보면 우리에게도 더 좋은날, 신나게 웃을 날이 반드시 올거니까, 아프면 아픈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그 삶을 받아들이고 그냥 그렇게 살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 인거야. 그게 인생인 걸 어머니!!!!
     
 나는 어머니에게서 강인함을 느낀다. 삶의 폭풍에 용감하게 맞서고 실패가 무엇인지 알고
슬픔과 고통을 느끼고 비탄의 구렁텅이에 빠져보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강인함이 어머니
의 삶 속에 그대로 살아있다. 그 아픔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품어 안으시는
너그러움 또한 많은 이들을 감동시킨다.
어머니!!!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어릴때부터 부끄러움도 많이 타고 말이 없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 또한 어머니의 삶이 고달파서인지 어렸을 적에는 다정다감한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철없는 난 40이 다 되어서야  어머니의 그 아픔과 한숨, 눈물이 이해되고 마음속 깊이 공감하면서
어머니가 얼마나 강하고 위대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의 삶 속에서 닮고 싶은 점 몇 가지와 늘 강조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첫째는 어떤 상황에서든 당당하게 맞서고, 싸워 나가는 강인함과 부지런함이다.  

어머니의 삶이 고통과 아픔과 한숨, 그리고 눈물의 삶이었지만 결코 그 삶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그 삶을 사랑한다.  둘째는 당신은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살았으면서도 어머니는 늘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셨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줄 때는 항상 최고 좋은 것으로 챙긴다. 

그리고 늘, 항상 강조했던 말씀은 “무슨 일을 하든지 남 보다 더 많이 하고,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욕먹을 짓은 하지 말 것이며, 정확하고 철저하게 일 해라”고 하셨다.

나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늘 이 말씀을 생각하곤 한다. 아직 어머니의 발 뒤꿈치 만큼도 못 따라가지만 어머니의 그 삶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어머니가 자랑스러워 하는 딸이 될 수 있도록.....

이제 밭에 심어놓은 마늘을 수확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5월 18일부터 마늘 작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사무실에 연가를 내고 아이들과 함께 농사일을 도와주러 갈 계획이다.

나는 4년 전 부터 마늘을 수확할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농사일 도와주러 친정에 간다.

힘들게 일하시는 할머니ㆍ 할아버지를 도와주는 기쁨도 알게하고, 일을 해서 용돈을 버는 경제관념도 심어주고 어렵고 힘든 농촌생활 체험으로 자신들의 생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어머니는 분명 아이들이 좋아하는 딸기 주물럭을 해놓고 기다리실 것이다.

땡볕에 와서 일하는 손녀들에게 줄 용돈도 함께.... 

몇 일 후 뜨거운 햇살아래서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을 어머니와 아버지, 나, 그리고 세 딸들을 그려본다. 

열심히 일 하다가 흙 묻은 손으로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딸기 주물럭을 맛있게 먹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스하고 행복해진다.  

 아픔과 한숨ㆍ눈물과 함께한 할머니의 삶이었지만, 강하고 부지런함과 다른 사람에게 늘 좋은 것으로 주시는 따스한 마음을 내 딸들이 오랫동안 가슴에 간직하며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제주시 용담1동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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