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어미가 되어 갑니다.
저도 어미가 되어 갑니다.
  • 부복정 (-)
  • 승인 2009.05.11 1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부지 막내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키우며 어미마음을 조금씩 터득해가는 이야기입니다. 막내라는 텃세로 누군가 모든 일을 해 주길 기대하며 응석받이로 크다 어머니라는 이름이 부여되며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하다는 어머니가 되어갑니다.

아이가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밤잠 설치며 기저귀 갈고 젖 먹이다 보면 짜증도 나겠죠. 그러나 사랑이 생기더군요.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고 아깝지가 않더랍니다. 나의 분신이 있음이 감격스럽기만 하였습니다. 콜록하고 기침이라도 한 번 하는가 싶으면 혹여 탈나서 아이가 힘들어하진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심정이었고요. 모든 생활은 아이한테 맞춰졌습니다. 식단도, 취침시간도, 외출도요. 어미가 된다는 것은 그렇게 나를 잊고 사는 거였습니다. 부모님도 저를 그렇게 키우셨겠죠.

아이들이 크면서 저도 영락없는 엄마가 되어 갑니다. 어머니가 저희에게 그랬듯이 엄청난 잔소리꾼이 되어 버렸습니다. 문지방 밟지 마라, 끼니때엔 남의 집에 가지마라, 음식은 어른먼저 드시고 난 후에, 가족 중에 누군가 자리에 없다면 덜어서 남겨두어라…. 사소한 행동에도 조심하라고 훈계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 형제 많은 집에 살면서 한두 번 다 들어본 소리를 제가 하게 되더랍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내가 하는 잔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더니 청소년기가 되면서 조금 컸다고 쏘듯이 말대답을 합니다. 과거의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닌 ‘꼭 너 같은 딸 낳고 살아봐라.’ 하셨죠. 지금 와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혼자 멋쩍게 웃어봅니다. 어머니의 가슴을 콕콕 찌르는 말로 아프게 하였던 저인데 이제 내가 어머니의 자리에서 겪게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도 한마디 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너 닮은 딸 낳아라.’ 어느새 저도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어머닐 모시고 고사리 꺾으러 다녀왔습니다. 매해 벗 삼아 다니는데 힘이 많이 부치는 거 같아 올해부턴 다니시지 말라고 했지만 끝내 어머니 고집을 꺾을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뒤를 쫓았습니다. 혹시 당신 혼자라도 가시면 걱정스런 일이니까요.

귀가 먼 어머니를 놓칠세라 고사리 꺾는 건 뒷전이고 가시덤불로 우거진 숲을 헤치며 다니려니 여간 벅찬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시에 찔리고 긁혀 온 몸이 상처투성이에다 옷도 여기저기 찢겨졌습니다. 굳이 힘들게 이래야 하는지 투덜거리게 되더군요. 그런데 누군가 그러대요. 고사리 꺾으려면 고개를 숙이게 되는데 하날 꺾으면 한 번, 열 개를 꺾으려면 열 번, 그렇게 고사릴 꺾을 때마다 산에다 절을 하게 되니 그보다 더 정성스러운 게 어디있냐고요. 그렇게 조상님 제사상에 올려 질 고사리는 정성이 들어간다고, 그래서 힘들어도 직접 꺾는다고요. 비록 쇠한 기력에 점차 줄어드는 고사리의 양이 아쉽지만 어머니는 항상 그러한 마음인 것을 그제야 알게 되더군요. 몸이 고달프더라도 자식을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집안을 위해서 한 평생 그렇게 살아 오셨던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동생을 보살펴야 했던 어머닌 그 나잇대 어르신들이 다 그렇겠지만 4.3사건을 겪으시며 우야곡절이 많으셨습니다. 소설 몇 권의 분량으로도 소화할 수 없다는 인생사는 그 후 아버지를 만나시고 행복을 찾는가 싶더니 그것도 잠시잠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일찍 돌아가시며 남겨진 건 빚과 5남매뿐이었으니까요. 어머니가 살 수 있는 길은 당차고 열심히 사는 일이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사셨습니다. 당시 농촌에서는 진학을 포기하고 일찍이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게 당연시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닌 농사를 지으면서도 자식들을 교육시키려 애쓰셨어요. 최소 고등학교라도 마치라고요. 그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인데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마음이 더 아플까? 어떻게 하면 어머니가 후회하실까? 하며 어휘선택에 신중을 기했던 철없는 딸이었답니다. 어려운 형편에 못해주는 어머니의 마음은 아랑곳 않고 그저 남들처럼 해주지 않는 것만 섭섭해 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닌 아무 말 없으셨죠. 단지 호로 자식이라는, 버릇없이 컸다는 말 듣지 않고 사람 노릇하며 평범하게 살기를 원했을 뿐입니다. 허나 원대로 아무 탈 없이 모두 잘 살면 더 할 수 없겠지만 살다보니 세상사 맘대로만 되던가요? 그렇지가 않더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고 속상한 일도 많고 기쁜 일도 많았습니다. 더러는 가슴이 찢기는 슬픔으로 한이 맺힐법한 일도 겪었습니다. ‘시간이 약’이란 말이 일리가 있음도 체득하였습니다. 웃고 울며 때론 마음을 졸이며 83년을 살아오셨습니다. 막둥이 시집가는 거 볼 수 있을는지 걱정하시더니 손자들이 혼기가 찰 정도로 커가는 것을 보십니다.

허나 세월에 장사 없다고 최근 들어 예전의 모습이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습니다. 항상 기운차고 활력이 넘치시던 분인데. 언뜻언뜻 마음을 비우신 듯 허하게 계신 모습이 초라해 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시간을 거스를 수도 없습니다. 그 처지가 안타깝습니다. 이젠 남은여생이나마 모든 것을 놓고 마음 편하게 사셨으면 좋겠는데.

어머니! 고단했던 당신의 삶은 저희 자식들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었습니다. 자식들 못 산다고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저희들에겐 그저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음이 행운이었고요. 어머니의 자식으로 어미가 되어가며 사랑을 전해줄 수 있음도 행복입니다.

5월입니다. 얼마 전만 해도 도시가 꽃향기로 넘실대더니 어느새 초록세상으로 변했습니다. 따스한 햇살과 어우러진 풋풋한 잎사귀들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듯합니다. 싱그러움에 가만있어도 좋은 날입니다. 작은아이의 등쌀에 나들이 계획을 세웁니다. 부모님께는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한 통 쉽지가 않더니만. 어쩌면 찾아뵈어야 하는 의무감만 있을 뿐이었죠.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지나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님은 마냥 기다려주시지 않을 터인데요. 이번 봄 소풍은 조‧손간 손이라도 붙잡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 할듯합니다. 앞으로 남은 기회가 많지 않겠죠. 아이한테 전합니다. 할머니한테 전화 드리자고.

<제주시 화북1동 부복정>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