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은 지금 ⑨] 현기영 "평화의 섬에 해군기지? 천부당만부당"

▲ 5월 14일 오전, 제주시 중앙성당에서 김태환 지사 소환운동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 강요배 화백과 작가 현기영씨가 참여하였다. ⓒ 제주의소리

13일 저녁 주민소환운동본부가 1700여 명의 수임인 신청자 명단을 선관위에 접수함에 따라, 14일 오전에 선관위에서 수임인들에게 수임인 신고증(주민소환투표 청구인 대표자 서명 요청권 위임 신고증)을 발급했다. 주민소환 서명을 받을 주체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도민 전체를 대상으로 소환투표청구 서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기자회견장에 강요배 화백과 작가 현기영씨 참여

14일, 강정마을 주민들 50여 명이 이른 아침에 제주시 중앙성당으로 향했다. 김태환 지사 소환운동본부가 오전 11시에 중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로 예정했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35개 단체에서 약 2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지난 5월 6일 도청 앞에서 주민소환운동을 시작한다고 선포할 당시 참여를 선언한 단체 수가 29개였는데, 8일 만에 6개 단체가 더 합류를 선언한 것이다.

주민소환운동본부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주민소환운동이야말로 지난 시절 잃어버린 제주의 참모습을 회복하는 일"이며, "오늘부터 우리는 참다운 제주미래를 위해 첫걸음을 내딛을 것"이라고 그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인사들이 참여하여 소환운동본부 활동가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소설가 현기영씨와 강요배 화백이다.

현기영씨는 "제주는 평화의 섬으로 선언해서 평화의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주민은 평화와 전쟁반대를 외칠 수 있다. 그런데 환경을 엄청나게 파괴하면서 모두가 우려하는 해군기지를 세우려 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며 김태환 지사 소환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최근 작가 황석영씨가 권력을 두둔하는 발언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과는 정반대의 장면이다. 강정마을 해군기지저지 양홍찬 위원장은 필자에게 현기영씨와 강요배씨의 동참으로 천군마마를 얻은 심정이라고 했다.

 

▲ 주민소환운동본부 상황실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실에 마련된 상황실은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 장태욱
 

기자회견을 마치자 소환운동본부는 곧바로 서명 작업에 들어갔다. 그 와중에 소환운동본부 상황실이 마련된 제주참여연대 사무실에는 주민소환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시민들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었다. 상황실에 활기와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장정마을 주민들, 서귀포시 오일장 누비며 소환투표 청구 서명 받아

한편, 선관위로부터 수임인 신고증을 교부받고, 기자회견을 마친 강정마을 주민들은 곧바로 서귀포를 향해 길을 재촉했다. 마침 서귀포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라 주민들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수임인 신고증'과 '주민소환투표 청구인 서명부'를 들고 오일장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 서귀포시 오일장 14일이 마침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기자회견을 마친 강정마을 주민들은 서귀포시 오일장을 찾아 상인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명을 받았다. ⓒ 장태욱
 

"삼촌, 서명 한번만 해줍서."

"무슨 서명?"

"도지사가 지 맘대로 우리 동네 해군기지 만들켄 허난, 소환허잰 마씸."

"소환이 뭐라?"

"도시사 잘못햄댄 우리가 내려오게 만드는 거우다.(도지사 잘못한다고 우리가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드는 겁니다.)"

넉살좋은 김규남씨가 과일 장사하는 아주머니와 구수한 사투리를 섞어가며 나누는 대화다. 마을 주민들의 활동이 시장 상인들의 눈에도 그리 거슬리지는 않는 눈치였다.

 

▲ 서명 강정마을 주민들의 서명 요청에 많은 상인들이 흔쾌히 응해 주었다. ⓒ 장태욱
 

시장 안에서 서명 받기를 한 시간쯤 하자, 주민들로부터 마을로 철수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강정마을 주민 50여 명이 한꺼번에 시장 안을 누비고 다니다보니 상인들 장사에 피해를 주게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결국 대여섯 명만 남기고 주민들은 강정마을로 돌아갔다.

강정마을로 돌아간 주민들은 저녁이 되자 다시 마을회관으로 모였다. 저녁 7시 25분부터  KBS제주방송에서 주민소환에 대한 전문가 토론이 방영되고 있었다. <집중진단 제주>라는 토론 프로그램으로 '도지사 주민소환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것이었다.

토론은 김부일 KBS제주방송총국 방송심의위원이 사회를 맡았으며 한석지 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최창수 고려대학교 공공행정학부 교수, 하승수 제주대학교 법학부 교수 등이 패널로 참여하였다.

저녁에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 서명 준비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혹시 주민소환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방송을 지켜봤다. 하지만 주민소환의 절차적 문제점 등은 제기되었지만, 현 주민소환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주민들은 방송에 만족스러워했다.

 

▲ 토론 방송 5월 14일 7시 25분부터 KBS제주가 <집중진단 제주>라는 프로그램에서 ‘도지사 주민소환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열었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이 토론방송을 함께 시청했다. ⓒ 장태욱
 

방송이 끝나자 해군기지저지 주민대책위 임원들이 다목적홀에 모여 선관위에서 받은 서류를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오전에 선관위에서 발급받는 수임인 신고증, 청구인 서명용지, 서명요령 등 서류용지 세 가지를 세트로 묶어 파일에 철해서 보관하기 편리하게 정리하는 일이었다.

강정마을에서 수임인으로 신고한 주민은 190여 명에 이른다. 이중 오전에 기자회견장에 가지 않은 주민들은 저녁에 마을회관에 와서 대책위 임원들로부터 서명 요령에 관하여 다시 설명을 듣고, 이들이 정리해준 파일을 건네받았다.

 

▲ 문서정리 주민대책위 임원들이 모여 선관위로부터 받은 서류를 분류해서 수임인들에게 나눠 주었다. 이번 소환운동에 강정마을에선 190여 명의 주민이 수임인으로 신고했다. ⓒ 장태욱
 

"공부도 젊을 때 하는 건데, 늙엉 허잰허난 원…."

"늙어도 난 오늘 일곱 명 서명 받아서."

칠순을 넘긴 할머니들의 대화다. 주민소환의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할머니들이 배워서 적용하기에는 여간 혼란스러운 것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도지사 주민소환에 대한 할머니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여느 날처럼 강정마을회관에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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