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큰아들이 하루 휴가를 냈다며 아침부터 집에 왔다. 집에 오자마자 내게 영화 보러 같이 가자고 제안한다. 요즈음 많은 관객을 기록하고 있다는 워낭소리를 구경 하자는 것이었다. 주말엔 영화관이 만원되므로 평일에 일부러 휴가 받았다면서.

아들이 느닷없는 영화 구경이라니 의아스럽다. 지 마누라는 출근했고 아이들은 학교와 어린이집에 갔는데, 불혹의 나이를 내다보는 녀석이 혼자 무슨 재미로 영화를 본단 말인가. 게다가 휴가까지 내면서 영화를 본다니 마뜩찮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궁금하기도 했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그렇지 않아도 최근 신문이나 방송에서 워낭소리라는 영화가 관객 호응도가 높다는 말을 들었고 ‘워낭’이 무슨 뜻인지 몰라 국어사전까지 뒤져 본 터였다.

장령의 아들과 영화관을 가는 게 멋쩍은 일이었으나 호기심으로 동행했다. 영화관으로 차를 몰고 가던 아들이 “옛날 아버지하고 ‘벤허’를 보러 갔었는데…. 그것도 보훈지청에서 입장권을 보내주니까”라고 하며 히죽거린다. 공짜 영화니까 구경시켜주었다는 말이다.

차안에서 아들이 무심코 하는 말이 내가 살아온 지난날을 뒤돌아보게 했다. 사실이다. 영화 보러 가는 게 얼마 만인가. 하도 오래어 얼른 가늠되지 않는다. 큰아들이 어렸을 때니까 30년은 족히 되었지 싶다. 하기는 여태껏 처자식들과 영화 한 편 보는 여유도 없이 살아왔다. 오죽해야 아들이 그걸 기억하고 있을까.

영화관은 아카데미극장이다. 예상과는 달리 평일이고 오전 시간이라서 사람들이 별로 붐비지 않았다. 관람실은 규모가 작게 여러 개 방으로 나눠져 있었다. 안내원이 안내해주는 곳은 100명도 채 앉을 수 없는 소규모의 방이다. 널따란 영화관에 수백 명이 운집해서 영화를 보던 옛날과는 분위기가 영 다르다.

경상도의 어느 농촌에서 팔순의 노인이 늙은 소와 어렵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영화화한 것이었다. 수레를 끌고 가는 늙은 소의 느린 걸음과 워낭소리. 연로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비틀거리는 노쇠한 소의 걸음걸이가 너무나 닮았다. 바라보는 눈길이나 앉아서 졸고 있는 모습도 비슷하다. 눈까풀이 내려앉은 소의 눈과 팔순 노인의 눈이 그렇게 닮을 수가 있을까.

성치 않은 몸으로 농사일을 놓지 않은 노인, 소에게 온갖 정성 다하는 노인을 보면서 불현듯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 모습이 떠올린다. 아버님은 30여 년 전, 향년 73세에 돌아가셨다. 오랜 세월이 지난 탓일까. 아버님에 대한 기억은 거의 잊어지고 있었는데.

칠순을 넘기셔도 몸져눕는 날까지 농사일을 놓지 않으시던 아버님. 자식들이 다 장성해서 굳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편히 지낼 수 있는데도 매일같이 밭에 나가셨다. 영화 속에서 소를 돌보는 노인의 뒷모습은 영락없는 우리 아버님이었다. 소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워낙 각별하셨던 아버님이었기에.

우리 밭은 구석구석이 깨끗했다. 농약을 뿌려서 잡초를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님은 잡초가 자라면 깨끗하게 베어 소를 먹였다. 밭 구석 돌담 틈에 돋아 난 나무는 아끼며 잘 키우시던 분이다. 그러시면서 들판에 나무가 울창해야 시국이 좋아지고, 편안한 세상이 돌아온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아버님은 왠지 꽃은 좋아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린 시절, 나는 유별나게 꽃을 좋아했는데. 장마철 비가 그친 어느 날, 동네 아이들과 같이 야생화를 캐러 들에 갔다. 호미를 하나씩 들고. 동네어귀를 지난 밭에 빨간 꽃이 피고 잎도 불그스름한 야생화가 많았다. 우린 낑낑거리며 그걸 여남은 개씩 매어 집으로 왔다. 동생들에게 돌멩이를 주워 오도록 하고, 마당 한구석에 화단 경계까지 만들어 정성껏 심었다. 

그날 저녁 밭에서 돌아오신 아버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없애버렸다. 화가 난 것 같아 아무 말도 못했다. 누구의 짓이냐고 당장 꾸짖을 것 같아 방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우리 집은 마당이 그리 넓지 않아 화단을 할 만한 적당한 곳이 없었다.

언젠가는 땅꽃이라는 아주 작은 꽃을 친구네 집에서 몇 포기 얻어 대문 앞 긴 골목 돌담 밑에 정성껏 심어두었다. 아버지 눈에 그게 잡초로 보이셨는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뿌리 채 없어지고 그 자리에 고추 모종이 심어 있지 않은가. 마당이 널찍해서 화단이 있는 집을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어렸을 때의 그런 마음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성인이 된 후엔 꽃에 대한 정감이 사그라져버렸다. 내가 자란 환경 탓이 아닐까 싶다. 아버님인들 어린 아들의 마음을 어찌 헤아리지 못했을까. 어렵고 배고픈 시절, 많은 식솔을 먹여 살리기가 힘든 처지에 꽃을 보며 감상에나 젖어 있을 수 있었으랴.

영화 속의 노인이 아버님 생전 모습과 자꾸 겹쳐진다. 거동마저 불편한 노인이 소를 위하는 마음이 살갑다. 소는 노인의 마음을 알고 일이 힘들어도 묵묵히 복종한다. 인간과 소가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 아름다운 동행. 그들은 함께 늙고 쇠약해졌으나 서럽거나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죽음까지 예측하고 마지막 소의 고삐를 풀어주는 광경, 죽은 소를 매장하고 들판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한 시간 남짓한 그리 길지 않은 영화. 나는 몇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오랜 세월 속을 헤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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