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의 경제칼럼] 국민과 투자자 고통분담 가능성

4월말이면 발표될 미국의 19개 대형은행들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 결과에 대해 시장의 관심이 지대하다. 스트레스 테스트란 어떤 제품이 악조건에서 제 기능을 유지하는가를 실험하는 절차다. 이번 스트레스 테스트가 가정한 ‘악조건’이란 2010년 말까지 집값이 28% 더 떨어지고 실업률은 금년 9% 내년에 10% 이상으로 늘어난다는 내용이다. 그 발생 확률을 10% 내지 15%로 높게 보고 있다. 실험 결과는 은행의 자본금이 2010년까지 살아남기에 충분한가, 부족하다면 얼마나 부족한가에 초점을 맞춘다. 해당 은행들은 6개월 이내에 주식을 발행하여 자본금을 늘려야 한다. 이것이 실패하면 정부가 그 은행의 우선주를 매입해 주어 구제한다는 계획이다.

6개월의 기간을 둔 것은 형식적 절차일 뿐, 불량 은행으로 밝혀진 은행들이 현재의 시장 분위기에서 증자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정부가 구제해 준다는 말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정부의 구제가 결국 은행의 국유화로 보는 시각이 더 유력해 보인다.

국민과 투자자 고통분담 가능성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소속 브래드 셔먼 의원은 “(불량)은행들은 법정관리에 들어가 채무 구조조정을 거쳐야만 보다 건전한 금융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서슴지 않는다. 채무 구조조정은 법원을 거치지 않더라도 소위 워크 아웃을 통하여도 가능하다. 주주와 채권자가 보다 현실적인 입장에 서서 자기의 받을 권리를 축소하는데 합의 해 주는 것이다. 어차피 회사가 법정관리 되면 주식은 휴지가 될 수 있으며 채무증서도 액면대로 상환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해 지는 만큼 채무를 깎아 준다거나 또는 그 금액에 해당하는 주식으로 전환하는 해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의 은행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 주식소각 및 채무불이행 사태가 벌어지는 광경은 상상하기 어렵다. 미국 정부는 이미 은행을 지원하기 위해 2천억 달러 이상의 은행 주식을 매입하였고 은행이 신규로 발행하는 채무증서에 대해 상환보증을 해 준 것만도 2천4백억 달러에 이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미국의 대형은행들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강행은 그 이면에 시장이 고통분담의 기능을 수행해 주기를 바라는 의도가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고통분담의 한편에는 정부, 다시 말해 납세 국민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은행의 주식 또는 금융상품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있다. 은행이 안전하다 하여 은행에 돈을 맡긴 예금자와 돈을 좀 더 벌기 위하여 은행에 투자한 투자자를 은연 중에 차별하고자 하는 사고가 저변에 깔려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전자는 국가가 보호하여야 하지만 후자들을 일반 납세자들의 돈으로 보호해 주어야 할 명분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미 시장의 가격에 나타나고 있다. 은행들의 보통주의 가격은 위기 이전에 비해 10분의 1 심지어 100분의 1까지 하락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은행들의 우선주 및 상환 기일이 정해져 있지 않은 영구채 등 소위 ‘후순위채’(subordinated debt)는 액면의 15% 내지 45%에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미국 상위 10개 은행들의 우선주와 후순위채만 합해도 5천4백억 달러에 달한다고 하니 월스트리트의 헤어 컷(hair cut) 규모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대마불사의 신화는 이번에도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금융기관에 투자했던 개인 및 기관투자자들의 손실은 상당히 커질 수 있다. 이들의 이러한 경험은 새로운 시장질서의 요구를 낳을 것이다. 이야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항목 중에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투명성에 관한 것이다. 금융 파생상품의 고도화를 막을 수도, 인간의 부에 대한 끝없는 욕구를 부정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도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으로 많은 신종 금융상품의 출현을 경험할 것이다. 이를 지나치게 규제하는 것은 시장의 발달을 막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상품설명서의 개선과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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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그러나 그럴수록 새로운 금융상품의 설명방법은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A-4 용지 한 장의 KIKO 상품 설명서나 5백 쪽짜리 투자설명서나 소용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정보의 완전한 공개(full disclosure)가 곧 투명성을 담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간결 명료한 언어를 사용하여 상품의 구조를 충분히 설명하였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기준만으로 등급을 매기는 투명성 등급 산정기관이 시장자생적으로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복잡하기 때문에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투자자들이 자기의 최종 책임하에 금융 상품을 선별하려는 노력도 그래야만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 것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제주대학교 산학초빙교수

※ 이 기사는 내일신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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