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의 경제칼럼] 국가주의 vs 시장주의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번진 지 두번째 해다. 소비위축이 생산감축을 낳고 생산감축은 대량해고를 낳으며 실직은 다시 구매력을 감소시켜 소비를 한 단계 더 위축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는 한번 자리를 잡으면 끊어지기 어렵다. 금년 1/4분기에도 주요국들의 GDP는 일제히 크게 후퇴했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마이너스의 폭, 그리고 그에 따라 그 나라 정부와 국민이 받는 충격은 상당히 차이가 있어 보인다.

프랑스의 전분기 대비 -1.2%는 가장 우수한(?) 성적이었다. 프랑스는 세금을 많이 걷고 그 돈으로 많이 쓰는 나라다. GDP의 52%가 정부의 지출로 구성된다. 부양자(provider)로서의 국가의 역할이 중시된다.

공공부문의 고용이 클 뿐 아니라 실직수당도 통상임금의 75%까지 지급되기도 한다. 몇년 전까지도 정부의 ‘4개년 전략계획’ 하에 주요 사회간접자본이 조성돼왔다. 영국이 2017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도시간 장거리 지하철을 프랑스는 1960년대에 이미 착공해 현재 4개의 TGV 네트워크가 가동되고 있다.

국가주의 vs 시장주의

규제 - 규칙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지도 모르지만 - 도 대단하다. 파리 시내의 택시는 1만5300대를 넘지 못한다. 화물자동차는 일요일에 고속도로를 달리지 못한다. 상점들은 일년에 두번까지만 세일을 할 수 있다. 은행은 원리금 부담이 소득의 3분의 1이 넘는 고객에게 대출을 해주면 안된다. 그러나 프랑스 모델이 불황기에 다소 빛이 난다고 하여 그것이 반드시 우수한 모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르코지 대통령 자신도 대선 때는 영국과 미국의 시장주의를 도입하여 프랑스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국의 시장주의는 그 동안 일련의 금융위기 해법 그리고 최근의 자동차회사 부실 처리방법에서 잘 나타난다. 작년 10월 수천억달러의 월 스트리트 구제금융을 집행하면서 우량은행과 불량은행을 선별하는 역할을 정부 스스로 거부했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일정한 비율로 자금을 지원했다. 지원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주주로서의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를 사주는 방법을 택했다. 결코 은행을 국유화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크라이슬러 자동차 회사가 지난 4월 30일 파산법 제11조에 의한 자산보호 신청을 연방법원에 제출했다. 법원의 주관 하에 채무조정을 포함한 근본적인 회사 갱생방안을 채권자와 회사가 합의하도록 하되 그 기간 중에는 채권자들 - 납품업체들 포함 - 이 일체의 권리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미국 특유의 제도다.

합의가 안 되면 청산 단계로 들어가 회사자산을 처분하여 변제 우선순위에 따라 빚을 상환하고 회사는 없어진다. 이미 최대 채권자 중의 하나인 JP Morgan Chase 은행은 받을 돈의 3분의 2를 탕감하기로 했고 또 다른 최대 채권자인 노동조합(UAW; United Auto Workers)도 조합원들을 위한 회사 적립금의 절반을 주식으로 전환하는 데 동의했다.

이것이 미국식 방법이다. 정부의 지원은 일단 불가피했다. 그래서 실물경제의 부실이 월 스트리트에 흡수되게 하고 이에 따른 월 스트리트의 손실을 정부가 자금으로 지원한다. 그러면서 정부가 돈을 풀어 시장을 지원하되 시장을 지배하지 않는다. 해답은 시장이 찾아낸다.

독일은 수출을 중시하는 경제다. 물건을 만들어 대부분 남들에게 팔고 자신들은 검약한 생활을 하는 것, 그 자체는 나쁠 것이 없다. 그래서 이번 위기에 수출이 가장 크게 타격을 받았고 그에 따라 GDP 감소폭도 유럽에서 가장 크다.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소비지출이 거의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의 검약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만하다. 문제는 독일 모델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들이 빚을 내어 과소비를 해야 성립되는 모델이라는 점이다. 장기적으로는 국제사회에서 조화되기 힘들다.

우리 발전모델에 참고해야

프랑스와 같이 공공재건설, 사회안전망 조성, 규칙제정 등의 분야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느냐, 아니면 미국처럼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창의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느냐? 양자의 균형을 바란다면 어느 선에서 그 경계를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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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지금 지구촌은 오직 실험실에서만 가능했을 실험이 실제 상황으로 벌어지고 있는 세계경제 역사상 매우 드문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후발주자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선발주자들의 발자취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 와중에서 이것이 우리나라가 자기에게 맞는 발전모델을 모색하는 데 유용한 참고가 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대학교 산학초빙교수

※ 이 기사는 내일신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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