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유중희씨, 2000년 '바보 노무현' 인터넷 글- 노무현 답신 9년만에 최초 공개

지난 25일 MBC 뉴스데스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특집뉴스를 내보내면서 '바보 노무현'의 '원칙주의'란 제목의 뉴스를 내보냈다. 이 뉴스 말미에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직전 MBC와 가진 퇴임인터뷰 중 한 단락이 소개됐다. 노 전 대통령의 닉네임인 '바보'에 대한 '바보같은 질문(?)'과 '바보같은 답변(?)'이었다.

기  자 : 바보라는 별명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노무현 : "별명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보 정신으로 정치를 하면 나라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냥 바보하는 게 그게요...그냥 좋아요."

▲ 故 노무현 전 대통령ⓒ제주의소리

노무현 전 대통령 별명의 대명사가 돼 버린 '바보 노무현'. 지역주의 정치 타파를 위해 당선이 안될 줄 알면서도 과감히 뛰어들어 줄곧 낙선을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리켜 한 네티즌이 지은 별명이 '바보 노무현'이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 버린, 불의에 굴하지 않고 자본에 타협하지 않으며, 언론권력에도 과감히 맞서 싸울 수 있는 정치인에게만 붙일 수 있는 '바보 노무현'. 그러나 정작 이 별명이 어떤 유래에서 만들어졌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에서 3번째 낙선한 후 붙여진 '바보 노무현'이 만들어진 비화가 처음으로 <제주의소리>를 통해 공개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바보 노무현'이란 애칭을 붙여준 네티즌이 7년만에, 이제는 고인이 돼 버린 노 전 대통령의 주검을 너무나 안타까워 하면서 인터넷상에 처음으로 올린 글과, 그 글을 보고난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내온  답신을 <제주의소리>에 알려왔다.

'바보 노무현' 작명가인 유중희(54)씨는 당시 삼성에 근무하고 있었으며, 현재는 제주도 모 기업에 중견간부로 몸담고 있다. 

유씨가 지난 2000년 3월22일 유니텔플라자에 '바보 노무현'이란 제목으로 올린 글은 당시 470회 조회되고 82회 추천을 받았다. 또 4월7일 노무현 홈페이지에 인용돼 인터넷 게시판 글 중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이후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언론이 이를 받으면서  '바보 노무현'은 곧바로 정치가 노무현의 상징으로 통용됐다.

바보 노무현

    나는 정치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8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 오공청문회가 처음 열리던 시대
 정경유착의 간판으로 지목된 H그룹 왕회장을 증인으로 세웠는데
 여야를 막론한 국회위원 신분의 질문자들이
 증인을 상대로 지적하고 추궁하기는커녕
 "증인님께서........?"하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허리를 굽실거릴 때
 동료 위원들과 같이 영특하지 못한 어느 바보 같은 사람을 알기 시작하였다.

 "나는 증인과 같은 사람으로부터 자금을 받지도 않았고
 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조용하면서도 논리정연하게 매서운 질문을 던지던
 -키도 작고 별로 잘 생기지도 않은 -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내 머리 속에 각인되기 시작하였다.

    그이는 03이가 대통령 한 번 해 보겠다고 NO통하고
 구국의 결단이란 미명하에 3당 야합을 할 때에도
 같이 갔으면(이후 경선에 불복하고 여당의 선대위원장까지 지낸 이모씨처럼) 좋으련만
 또 한번의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것을 보았다.
 <이모씨와 그이는 연령, 정치입문동기 등에서 흡사한 점도 많으나 이후 역정이 너무 달라 비교 대상임>

     그리고 수도권 또는 전라도를 택하여 국회위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임했더라면
 남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그 좋은 자리를
 몇 번 더 하여 관록을 쌓았을 터인데도
 굳이 떨어질 것으로 확실한 부산에서
 내리 3번이나 더 떨어지는 초라한 바보의 길만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주름살만 더욱 깊어가고
 현역 위원이 아닌 정치인의 모습은 더욱 초라한 바보일 뿐이었다.

  98년 우연히 찾아온 종로의 보궐선거에서 금배지를 다는 맛을 보았지만
 이번에도 또 부산에서 출마하겠다는 바보를 길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만은 노무현만이 바보가 아니라
 그 지역구의 유권자들도 같이 바보이기를 바라고 싶다.

  『바보 노무현』을 국회위원으로 뽑아주는 바보 같은 부산시민들!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영특한 사람을
 국회위원과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너무나 많은 실망을 경험하였다.

    그래서 이제는 전 국민이 우직한 바보가 되어
 우리 대한민국에서 거짓말 하지 않고 정직하며
 소신과 지조를 지키고 야합하지 않는
 바보 대통령이 탄생되는 그날을 기대해 보고 싶다.

   노무현 바보!
   부산시민 바보!
   그리고, 나도 그 바보의 대열에 끼이고 싶다. - 유중희씨의 '바보 노무현'에서

유씨는 <제주의소리>와 통화에서 "1980년대 후반 열린 5공 청문회에서 처음 노무현이란 사람을 알게 됐고, 그 이후 당과 지역을 떠나 개인적으로 좋아했었다"며 "편한 길을 내버려 두고 올곧은 한길을 걸어왔지만 계속 낙선해 안타까운 마음에 '바보 노무현'이란 글을 올렸다"고 글을 올린 이유를 밝혔다.

유씨는 "일부에서는 노사모에도 가입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도 했지만 가입하지 않았다'며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그 사람이 잘 되서 대한민국에서 역할을 해야 사회가 깨끗해지고, 한단계 업그레이드될 것 같았고, 다행히 당신께서 노엽게 생각하지 않고 잘 받아들여 주셨다"고 회고했다.

유씨의 글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6월9일 '노무현 회신글'이라는 답변을 이메일로 유씨에게 보냈다.

   안녕하십니까. 노무현입니다.
   답신이 늦어 죄송합니다.

   제가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한 선거에 패하고 나서 아픔도 있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저를 믿고, 도와주시고,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 참으로 미안하더군요.

   이때 선생님의 저에 대한 격려의 글은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홈페이지에 워낙 많은 글이 실려 전부 출력해서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돌려보았습니다.

   글쎄, 뭐랄까요.
   감동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제가 헛되게 산 게 아니구나, 제 선택은 옳았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는 옛말이 있지요.
   우리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제게 무엇을 바라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란 말이 생각납니다.
   제게 보내주신 이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 변치 않으려 합니다.

   마음을 글로 전한다는 게 참 어렵네요.

   이 소중하고, 귀한 인연.
   헛되이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가장 아름다운 인연으로 가꾸고 키워보려고 합니다.

   최근 인터넷을 매일 한 시간 이상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공부할 자료들,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많이 도와주십시오.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저와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졌으면 합니다.
   성심껏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6월 6일은 정치인 최초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팬클럽이 행사를 해서 대전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덕분으로 '바보 노무현'이 '행복한 노무현'이 될 것 같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0. 6. 9
노무현 드림


유씨는 노 전 대통령과 이메일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됐지만 단 한차례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

유씨는 "제가 하는 업무 때문에 퇴임 얼마전 청와대에 갈 일이 있었지만 만나뵈지 못했고, 제주도 방문할 때 대통령님이 식사하는 식당을 우연히 지나다 보게 됐는데 '만나서 악수라도 한번 할까'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쨌든 그분을 멀리서 좋아하고, 잘 되기를 기원했다"고 토로했다.

유씨는 "서거하기 얼마전 어려움이 많이 겪는 것 같아 '얼마나 어려움이 크시느냐'는 이메일을 보냈고, 다른 관광객처럼 김해 봉하마을에 조용하게 다녀오고 싶었다"며 "하지만 청천벽력처럼 지난 토요일 갑작스럽게 서거하셨다"고 안타까워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유씨는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며 "사람들이 많이 몰려가 추모하고 있는데 조금 더 지켜보고 있다 가서 자원봉사라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이승록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