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은 지금 ⑬] 강정마을, "악연 맺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서민 대변자"

필자의 말

필자는 과거 노사모 회원으로 활동하다 2007년 제주해군기지가 결정되는 과정과 한미FTA타결 소식을 듣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접으며 노사모를 탈퇴하였습니다. 그리고 최근 강정마을에 관한 기사를 연재하는 도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소식을 접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예전에 제주 노사모에서 함께 활동했던 분들이 제주시청 앞에 도민분향소를 만드는 과정에 미력으로나마 함께했고, 분향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사로 써 보기도 했습니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은 참여정부의 대표적 정책 오류라고 생각하고, 그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주민들과 함께 하던 도중에 노 전 대통령 서거소식을 전해 듣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로 인한 개인적 혼란이 너무 컸기 때문인지, 제주시청 앞 분향소와 강정마을을 차로 오가는 도중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습니다. 차를 폐차시킬 정도로 충격이 컸지만 다행히도 몸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정들로 인해 1주일 간 강정마을 소식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점 강정마을 주민들과 독자들께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연민과 원망사이에서 필자가 풀지 못한 혼란함을 강정마을 주민들이 대신 풀어주신 것 같아 감사한 마음으로 본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장례식 강정마을 해군기지저지 주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을 지낸 고 강종호 위원장아 생을 마감했다. 주민들이 장례절차를 밟는 모습이다. ⓒ 장태욱

주민소환운동이 도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으며 청구서명이 바람을 타는 와중인 5월 22일 마을에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2007년 6월 이후로 강동균 마을회장, 양홍찬 위원장과 더불어 해군기지저지 주민대책위회 공동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강종호(52)씨가 1년 가까운 투병 생활을 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다.

강종호 위원장은 후두암이 발견되어 작년 8월에 서울에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 후에는 제주대학병원에 입원해서 암과의 고통스러운 싸움을 벌여오다가 끝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제주에서는 장례식을 치르기 전날에 일포제를 지낸다. 주민들은 24일 서귀포시 한빛장례식장에서 일포제를 지내고, 25일 새벽에 발인해서 시신을 강정마을에 있는 가족공동묘지에 안치했다. 고 강종호 위원장의 유족으로는 부인과 1남 1녀가 있다.

▲ 고 강종호 위원장 고인의 시신은 강정마을에 있는 가족 공동묘지에 안치되었다. ⓒ 장태욱

24과 25일 양일간 강정마을 주민들 상당수는 주민소환투표 청구 서명 받는 일을 뒤로 미룬 채, 강종호 위원장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추모사와 함께 눈물로 고인에게 작별을 고했다.

'강종호 위원장님, 이제 우리는 당신을 보내드리렵니다. 우리의 따뜻한 이웃이었던 당신, 어렵고 흔들리는 세파에서 언제나 꿋꿋하게 우리 중심에 서 계셨던 당신을 이제 보내드립니다.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당신의 강정마을을 지켜주시옵소서.' -'추모사' 중 일부

강종호 위원장의 부고 소식이 전해진 이후, 장례도 치르기 전에 주민들은 또다른 부고를 전해 들었다.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저 뒷산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주민들의 감회는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한 것이나, 제주 4·3에 대해 정부를 대신해서 사과한 점 등은 모두 참여 정부가 제주 도민들을 위해 남긴 훌륭한 업적이다. 하지만 해군기지를 주민들의 동의도 얻지 않은 채 강정마을에 유치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 과오다. 이 그릇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삶의 터전을 잃을 처지에 놓인 주민들은 해군기지를 저지하게 위해 생업을 뒷전으로 미룬 채 2년 넘게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찍었어요. 서민적이고 소탈해서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 희망을 줄 것으로 믿었지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모든 정책에 일관성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로 큰 과오가 없었다고 생각해요. 해군기지가 주민동의도 거치지 않은 상태로 강정마을에 유치된 것은 대통령의 과오라기보다는 도지사가 철학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으로 봅니다.

지금 도지사는 중앙정부로부터 주민의 권리를 지키려는 기본정신이 없는 사람이에요. 2007년 5월23일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문제로 제주를 찾았을 당시 우리는 대통령의 입만 쳐다봤어요. 절차가 잘못되었으니 다시 원점에서 검토하라는 지시가 내려질 것으로 기대했던 거죠.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해군기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 없이 떠나고 말았어요. 지금도 그날만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강정해군기지 저지 주민대책위 양홍찬 위원장의 말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유치가 결정된 해군기지 문제로 2년간 생업을 뒤로한 채 싸우면서도, 유명을 달리한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연민이 남아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 국민장 분향소 제주시 한라체육관 야외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분향소이다. ⓒ 장태욱
 

강동균 마을회장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그리 인색하지 않았다.

"나도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찍었어요. 88년 국회 5공 청문회 때 노무현 의원이 활약하는 것을 보고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민초들의 목소리에 귀를 많이 기울이셨던 걸로 압니다. 지금 김태환 도정이 노무현 대통령의 노력을 조금이라도 배웠으면 해군기지 문제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해군기지 문제로 노무현 정부와 악연을 맺었지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연민은 일반 국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군기지저지 주민대책위는 논의 끝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분향하기로 결정했다.

5월 27일 오후 3시 30분경 강동균 마을회장, 양홍찬 대책위원장, 윤호경 사무국장 등을 포함한 강정마을 주민 대표 9명은 제주시 한라체육관 야외에 마련된 국민장분향소를 찾아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에게 헌화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 강정마을에서 온 조문객들 5월 27일 오후 강정마을 주민 9명이 노 전 대통령 국민장 분향소를 찾아 헌화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 제주의 소리

한편, 강종호 위원장의 사망으로 강정마을 주민들이 슬픔에 젖어 있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나라가 온통 추모 분위기에 뒤덮인 가운데서도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운동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현실의 벽에서 느끼는 좌절감이 민초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일까? 강정마을에 찾아온 슬픔과 분노가 오히려 이 마을 주민들에겐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주민소환투표 청구가 가능한 서명인 4만1649명 중 27일 현재까지 2만2287명이 서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소환운동이 시작된 지 13일 만에 목표치의 53.5%를 넘어선 것이다.

주민소환운동에 대한 도민들의 호응이 갈수록 커짐에 따라 그동안 주민소환운동에 별 관심을 갖지 않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등의 종이신문들이 국책사업에 찬성한 것이 주민소환의 대상이 될수 있는 지 의문을 제기하며 김태환 지사 구하기에 나섰다. 주민소환운동에 대해 중앙 언론사들이 입장을 표명하면서, 강정마을 해군기지 투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 와중에 소환본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예정된 29일에는 주민소환을 위한 거리서명을 받지 않겠다며, 전 국민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계속>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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