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은 지금 16] 백합과 딸기 수확, 투쟁 속에서도 농민들은 기쁘다

▲ 화원 강정 해군기지저지 주민대책위 양홍찬 위원장이 백합을 재배하는 화원이다. 해군기지 예정지인 중덕 해안가에 있다. ⓒ 장태욱

주민소환운동의 발목을 잡기 위한 여러 가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 청구 서명인 수는 이미 소환투표에 필요한 서명인원의 80%에 달하고 있다. 서명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6월 30일까지임을 감안하면, 청구 서명인 수를 채우는 것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전하는 말로는 김태환 지사 측에서도 소환투표로 가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주민소환운동에 대한 여론전이 뜨거운 와중에도 강정마을 '투사'들 중에 최근 들어 얼굴 보기 어려워진 이들이 있다. 특히 주민대책위를 이끌고 있는 양홍찬 위원장이 며칠째 마을회관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 필자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사정을 알고 보니 백합 수확시기를 맞아서 출하에 열을 올리는 중이라고 했다.

 

주민들이 전하는 얘기로는 백합 출하는 꽃봉오리가 피기 전에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시기가 되면 백합 재배 농가는 집에 가지도 못하고 농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생활한다. 농원에서 3일 밤을 꼬박 새우는 것이 백합 농가에서는 보통 있는 일이라고 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양 위원장을 만나기를 기대하다보니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야 마을회관에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2, 3일 자리를 비우고 나니 주민소환운동이 진행되는 상황이 무척 궁금했던 모양이다. 주민소환투표 청구 서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인지 지친 일상 가운데서도 표정에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6월 6일 현충일 아침, 양 위원장의 가족들이 운영하는 농원에 들렀다. 농원에는 양 위원장의 부친과 부인이 양 위원장과 함께 백합을 포장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여태껏 백합의 종류가 한 가지인 줄만 알았는데 농원을 둘러보니 꽃의 키와 색깔이 제각각이다. 그리고 시베리아, 소르본느, 카사블랑카 등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 화원 작업실 양위원장과 더불어 그의 부친과 부인이 백합 포장하는 일을 함께 하고 있다. ⓒ 장태욱

"백합농사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고 실패도 많았습니다. 이 일을 처음 할 때는 백합 뿌리를 공급하는 수입업체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나쁜 뿌리를 공급하는 바람에 수확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적이 있어요. 백합농사의 비용은 대부분 뿌리 구입비와 인건비인데, 헛돈을 날려버린 거죠."

백합농사 과정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백합이 다른 작물에 비해 연작피해(같은 작물을 같은 장소에서 계속 재배했을 때 오는 피해)가 심한 작물이에요. 처음엔 그걸 잘 몰랐어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난 후에, 토양을 살균해보기도 했는데, 찜통더위에 정말 할 짓이 아니었어요."

양 위원장은 땅이 충분히 있어서 뿌리를 자체적으로 따로 배양시키고, 연작피해를 줄이기 위한 돌려짓기를 할 여유가 있으면 백합농사도 할만하다고 한다. 그런데 강정에 그 정도 여유가 있는 백합농가는 없다. 대부분이 해군기지 예정지인 중덕해안에서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형편이다.

금년에는 환율이 오르면서 백합수출이 유리해져 백합 시세가 평년보다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전 양 위원장이 공판장으로 상장한 백합 6상자 중 네 상자는 낙찰이 되고 2상자는 유찰되어 재입찰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한다. 최근 도시에서 꽃 소비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백합농사를 짓는 이유를 묻자 그는 "백합농사가 마약과도 같다"고 답했다. 꽃에 정을 붙이면 눈에 어른거려 뗄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는 말이다.

백합향기를 뒤로하고 마을회관으로 갔는데, 마침 마을회관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왔다. 강정마을회 조경철(50) 부회장이 주민들을 딸기 하우스로 초청한 것이다. 금년 딸기 수확이 거의 끝났기 때문에, 딸기를 먹고 싶은 주민들은 수확하고 남은 딸기를 따가라는 전갈이다.

▲ 딸기밭 강정마을회 조경철 부회장이 딸기를 재배하는 농원이다. 가장 왼쪽에서 딸기를 따는 사람이 조부회장이다. ⓒ 장태욱
 

조 부회장의 딸기농원으로 갔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 차례 딸기를 따고 갔다고 했다. 농원에서는 조 부회장과 어린이들을 포함한 마을 주민들이 남은 딸기를 신나게 따고 있었다. 조 부회장은 딸기를 딸 때도 '해군기지 반대'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 티셔츠가 이 마을 주민들에게는 여름철 외출복이면서 시위복이고 동시에 노동복이다.

조경철 부회장은 딸기 농사로 생활을 이어간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직 딸기 농사에 대해서는 초보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눈치로는 다른 일을 하다가 딸기농사로 전향한 것 같은데 자세한 사연은 물어보지 못했다.

수확을 마친 농원이라고 해도, 딸기 넝쿨에는 아직도 알이 굵고 색이 빨간 탐스러운 딸기가 많이 남아 있었다. 어른들 틈에서 딸기를 따고 있는 아이들이 손에 든 바구니에도 딸기가 가득 차 있었다. 아이들 웃음에 곁들여 조잘거리는 소리에 딸기 따는 풍경이 더 정겨웠다.

 

▲ 어린이 바구니 가득 딸기를 따고서 즐거워했다. ⓒ 장태욱
 

"딸기는 다년생 작물이지만 농사를 지어 제대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매년 줄기를 새로 심어야 합니다. 겨울 온도가 0℃를 넘으면 생육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온실 안에는 조금만 가온해도 질 좋은 딸기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조 부회장은 강정마을의 토질이 우수하고 해안 기온이 특별히 높은 것이 딸기 농사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했다. 이 마을에서는 딸기 농원 1000평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하다고 했다.

"난 딸기 농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숙한 점이 많지만 농사를 잘 짓는 사람들은 딸기 농사만으로도 충분히 소득을 올리며 살고 있습니다."

농원에서 사진 찍고 돌아오려는데 조 부회장이 딸기 한 상자를 챙겨주며, 마을회관에 가서 주민들과 나눠먹으라고 했다. 마침 현충일이라 마을 충혼비에 참배하기 위해 모여든 주민들이 조 부회장이 보낸 딸기 상자를 받아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모처럼 강정마을에서 수확의 기쁨을 함께할 수 있었다. 이 농민들의 수확이 올해로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과 함께.

덧붙이는 글 | 여름방학을 맞아 농촌으로 봉사활동을 갈 계획을 세우는 학생들에게 강정마을로 '농활' 올 것을 권합니다. 이 마을에는 주민들이 재배하는 농작물 종류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체험을 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고, 주변의 절경과 더불어 주민들과 평화의 소중함을 함께 얘기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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