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편지(9)] 빙벽(氷壁), 수직의 고드름에 매달린 존재의 가벼움

▲ 영실기암은 먼 옛날 제 어미를 삶아 만든 죽을 먹고 슬픔에 복받쳐 석고대죄(席藁待罪)의 심정으로 울음 울다 바위로 굳어버린 오백 아들의 섧은 전설 서려 있는 곳이지요.ⓒ오희삼
신(神)들의 정원(庭園)에 벼랑이 있습니다.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고 절벽 한귀퉁이에
새들의 보금자리를 보듬고,
지상과 천상을 잇는 하늘길이지요.
영실기암(靈室奇巖)은 그렇게 바라볼 순 있으되,
닿을 수 없는 무지개였습니다.
먼 옛날 제 어미를 삶아 만든 죽을 먹고
슬픔에 복받쳐 석고대죄(席藁待罪)의 심정으로 울음 울다
바위로 굳어버린 오백 아들의 섧은 전설 서려 있는 곳이지요.

▲ 하얀 겨울 영실기암 벼랑의 푸른 빙벽은 피끓는 클라이머(Climber)를 유혹합니다(왼쪽).

빙벽등반에서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손끝에 느껴지는 자일의 인장강도(引張强度) 만으로 줄 건너편에 매달린 동료가 호흡하는 숨결의 강도를 알아챕니다(가운데).

수직의 벽으로 앞장서 올라가는 선등자(先登者)가 할 걸음 한 걸음 오르는 순간에, 올려다보는 이들의 눈빛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마른 침을 삼키며 고요히 바라봅니다(오른쪽).ⓒ오희삼
기약 없는 천형(天刑)으로 이 벼랑에 유배된 바위들은
밤마다 홰치는 닭의 울음 같은 눈물을 뚝뚝 쏟아내립니다.
바위 마져 꽁꽁 얼어붙는 강추위에
눈물은 차마 지상으로 내려앉지 못하고
그 차가운 벼랑의 허공에서 꽁꽁 얼어붙고 말지요.
얼어붙은 빙벽(氷壁)은 지옥문이라 불립니다.
서럽게 울다 바위로 굳어버린 오백의 영혼들이
지상에 흘리고간 회한(悔恨)같은 푸른 빙벽은
피끓는 클라이머(Climber)를 유혹합니다.
뜨거운 피가 아니고선
그 차가운 벼랑을 녹일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수직의 고드름 드리운 절벽에서
신명나는 씻김굿판 한바탕 벌려주라고 손짓합니다.

▲ 번역가인 윤길순씨가 푸른 빙벽에 픽켈을 휘두릅니다.ⓒ오희삼
겨울 한라산의 매혹에 빠져 해마다 한라산을 찾는 서울 봔트클럽 윤길수씨(48)가 오늘 그 유혹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같은 클럽의 황준선(39)·안치영(29), 윤길순(45)씨와 서귀포백록산악회의 오경훈씨(38)씨가 굿판에 합세하게 되었습니다.
밭을 가는 농부에게 쟁기가 필요하듯이 수직의 절벽에 다가가기 위해선 연장이 필요한 법.
두 손엔 얼음을 찍을 두 자루의 픽켈로,
두 발끝엔 독수리의 발톱보다 날카로운 아이젠으로 중무장 하고
빙벽으로 다가서는 이방인의 방문에
까마귀 울음소리 영실계곡으로 번집니다.
이 벼랑에 둥지를 틀고 신들의 거처를 지키는
텃새(鳥)의 텃세(勢)겠지요.

▲ ‘특’ ‘특’ 고드름에 꽂히는 피켈과 아이젠의 부드러운 감촉과 빙벽을 지나는 바람소리만이 존재합니다.ⓒ오희삼

차가운 빙벽에서의 굿판은 고요함 속에 치러집니다.
‘특’ ‘특’ 고드름에 꽂히는 피켈과 아이젠의 부드러운 감촉,
살짝 얼어붙은 고드름 덩어리가 중력에 이끌려 추락하는 소리,
빙벽을 할퀴고 지나가는 겨울바람의 웅웅거림.
그리고 중력을 거스르며 수직의 벽을 오르는
가벼운 몸짓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손끝에 느껴지는 자일의 인장강도(引張强度) 만으로 줄 건너편에 매달린 동료가 호흡하는 숨결의 강도를 알아챕니다.ⓒ오희삼
빙벽에서 다섯 사람은 한 목숨이 됩니다.
다섯 몸을 잇는 생명줄(자일,Zeil)엔 혈서(血書) 같은 무언의 맹세들이 흐르지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손끝에 느껴지는 자일의 인장강도(引張强度) 만으로 줄 건너편에 매달린 동료가 호흡하는 숨결의 강도를 알아챕니다.
자일파트너란 그래야 할 것입니다.
‘자일로 맺은 정(情)’이 이런 것이겠지요.

윤길수씨와 안치영씨가 번갈아 앞장섭니다.
수직의 벽으로 앞장서 올라가는 선등자(先登者)가 할 걸음 한 걸음 오르는 순간에, 올려다보는 이들의 눈빛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마른 침을 삼키며 고요히 바라봅니다.
예기치 않았던 추락에 대비하는 것이지요.
추락이란 예고없이 찾아드는 불청객인 법입니다.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등반의 세계에서 추락은 두려움과 정비례합니다.
추락하리라는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다리가 떨리고 중력(重力)이 잡아끄는 힘에 이끌려 가는 것이지요.
그런 두려움을 스스로 떨쳐버릴 수 있을 만큼 노련미가 몸에 베이게 될 때, 비로소 벽(壁)에서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중력에 이끌리지 않는 진정한 ‘쟁이’가 될 수 있겠지요.

▲ 두려움을 스스로 떨쳐버릴 수 있을 만큼 노련미가 몸에 베이게 될 때, 비로소 벽(壁)에서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왼쪽).

기약 없는 천형(天刑)으로 이 벼랑에 유배된 바위들은 밤마다 홰치는 닭의 울음 같은 눈물을 뚝뚝 쏟아내립니다. 바위 마져 꽁꽁 얼어붙는 강추위에 눈물은 차마 지상으로 내려앉지 못하고 그 차가운 벼랑의 허공에서 꽁꽁 얼어붙고 말지요(가운데).ⓒ오희삼

우리가 만나는 삶의 벽에도 수많은 중력이 잡아끌 것입니다.
한번의 추락도 경험하지 못한 삶은
단 한번의 추락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 겨울 한라산의 매혹에 빠져 해마다 한라산을 찾는 서울 봔트클럽 윤길수씨(48세)가 오늘 그 유혹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같은 클럽의 황준선(39세)·안치영(29세)·윤길순(46세)씨와 서귀포백록산악회의 오경훈씨(38세)가 굿판에 합세하게 되었습니다.ⓒ오희삼
추락은 때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보약이 되는 법이지요.
면역력을 높여주는 백신처럼 말입니다.
허허로운 웃음으로 추락의 아픔을 딛고 다시 픽켈을 움켜잡고 벽에 다가설 수 있는 용기야말로, 바위보다 단단한 얼음벽을 올라선 이들에게 주어지는 마음의 훈장이 아닐런지요.
두려움을 비워낸 가벼움 만이 저 수직의 빙벽에서 오백의 아들이 흘린 서러운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신명나는 굿판의 춤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희삼 님은 한라산국립공원에서 10년째 청원경찰로 근무하고 있는 한라산지킴이입니다. 한라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좋은 글과 사진으로 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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