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영 칼럼] 주민소환투표 청구에 즈음하여

주민소환투표 청구서가 어제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되었습니다. 당초 세간에서는 법적 청구요건으로서 제주도민 유권자 10%인 41,649명의 서명을 과연 받아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회자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5월 14일 주민소환청구서를 공식 제출하면서 2,000명 이상의 도민 유권자가 수임인으로 참여하였고, 최종적으로 7만 7천여 명의 소환서명이라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법으로 보장된 서명운동기간이 120일인 것을 감안할 때, 불과 40여일 만에 법적 요건의 2배에 달하는 도민들이 서명에 참여한 것입니다.

김태환 지사는 당초 주민소환과 관련, “도민의 뜻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예상 외로 도민서명이 활발하게 이뤄지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며 각종 간담회 개최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가 하면, 도민과의 대화를 개최해 도정홍보에 나섰다가 선관위로부터 선거법위반 경고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서명 막바지에는 주민소환의 도화선이 된 해군기지 문제해결을 명분으로 강정마을에서 민박출근에 나서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애초 밀실에서 추진되고 엉터리 여론조사로 결정된 해군기지 유치결정에 대한 태도 변화가 없는 대화노력은 진정성 없는 언론플레이라는 도민사회의 빈축만 살 뿐이었습니다.

주민소환 서명이 5만을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도민사회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소환서명결과에 따라 주민투표가 이뤄진다면, 그 자체는 되돌릴 수 없는 갈등을 만들어내고 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민소환은 철저히 법절차에 따라 이뤄지는 합법적 행위이며 주민의 권리입니다. 국가 주요정책, 특히 국가안보와 관련된 군사기지설치와 관련된 중요한 사안이라면 더더욱 절차적 민주주의에 충실해야합니다. 정부와 지방행정은 진실로 투명하게 모든 내용을 주민들에게 공개하고 투명하게 추진해야합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해서는 안 되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장된 주민선택권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정부와 지방행정이 독선과 기만으로 절대 다수 주민의 의사를 무시하면서 일방적으로 몰아 붙여 갈등을 유발하고 국가안보사업을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주민소환제는 이미 일본이나 유럽 선진국, 미국 등에서 오래 전부터 실시되어 온 주민 직접참여제도의 하나입니다. 실제로 그들 나라에서는 주민소환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나라나 그 나라의 어느 지역을 놓고 갈등지역으로 평가하는 사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민주적으로도 선진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 만큼 주민소환제도 자체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중요한 제도로 얘기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간접민주제, 즉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은 선거가 유일합니다. 때문에 주민들이 권리의 주체로서 인정되는 시기는 선거에 딱 한 번뿐이라는 자조도 생겨났습니다. 정치인 또한 선거 때만 잘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발상에 사로잡혀 선거 시기 공약남발이나 각종 잘못된 정보를 유포시켜 유권자를 현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선거문화 전체에 영향을 끼쳐 언제나 우리사회의 선거문화는 흑색선전과 비방, 공약남발, 각종 루머가 판치는 장으로 전락하곤 해왔습니다.

주민소환제는 주민발의제도, 주민투표제도와 더불어 대의제의 한계를 보완하는 중요한 제도로 오랫동안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정치인 개별이나 여야정당의 이해관계에 묶여 오랫동안 표류하다 결국 주민소환제를 여야가 합의에 의해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러한 민주적 정당성 때문입니다.

지방자치의 기본명제는 ‘지역의 문제는 지역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제주는 특별자치도로 지정된 곳입니다. 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은 그 과정의 여러 논란거리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자체가 주민주도의 풀뿌리 민주역량을 만들어가는 일이자 지방자치시대의 의미 있는 선례로 남겨질 것입니다.

이제 주민소환은 도민사회의 몫으로 넘어 갔습니다. 주민소환투표 청구과정은 주민소환운동본부가 소환사유로 밝힌 문제제기에 대해 도민사회의 동의여부를 묻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뤄진 소환투표청구에 따라 선관위가 주어진 법적절차를 마무리하고 소환투표를 발의하게 되면 이는 곧 소환운동본부가 밝힌 독선과 무능도백이라는 문제제기가 성립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다만, 성립된 문제제기의 기반위에서 실제로 현재의 도백을 법적으로 소환할 것인가 하는 결정은 전적으로 도민의 판단에 맡겨지게 됩니다. 9월 초로 예상되는 주민투표가 그것입니다.

▲ 허진영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주민투표결과 여하에 따라 도지사는 지사직을 상실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이뤄지는 주민소환이 비단 일 개인에 대한 소환의 의미를 넘어, 소환운동본부가 처음에 밝혔듯이 잘못된 정책추진의 오류를 바로잡고 소환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도민들의 참여는 향후 제주미래를 위한 너무도 중요한 과정일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주민소환의 진정한 의미는 지금부터 시작인 셈입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장점이라고 배웠습니다.

앞으로 남은 과정을 어떻게 치러내느냐, 그것은 제주도민의 자치역량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허진영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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