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명렬 전 준장 “군역사 바로 잡아야”…박진경·최경록·송요찬·함병선 모두 일본군 출신

제주도민과 우리 군(軍) 사이에는 지난 50여 년 동안 ‘4.3’이라는 역사적 상처를 두고 미묘한 긴장이 흘러왔다.

2만여명이 학살되는 등 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친지들을 졸지에 잃은 도민들은 5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4.3당시 토벌대인 군에 씌워진 ‘학살’의 올가미를 거둬들이지 못한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너무나 컸던 탓이다.

반면 이제 세월이 흘러 노골적인 표현은 못하지만 군 일각에서는 아직도 제주4.3을 ‘남로당의 사주에 의한 폭동’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해 있다.

국민들은 자신들을 지켜주는 군을 ‘학살자’로 인식하고, 군은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국민을 향해 ‘빨갱이’란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3년 10월말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사과한 국가권력에는 ‘군’이 자리 잡고 있다.

5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양측의 앙금은 그리 쉽게 씻어지질 않는 상황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개혁군인’의 표상인 표명렬 예비역 준장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목되고 있다.

정훈감 출신인 표명렬 예비역 준장은 17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출연해 “가장 부끄러운 군인은 정권유지를 위해 수많은 죽음을 양산해낸 박정희”라고 말한 후 “아직까지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 정권과 독재 정권으로 인해 군역사 왜곡이 초래됐다”며 4.3을 예로 들며 과거사 진상 규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표 준장은 군 역사 재조명과 관련해 “우리 사회가 새롭게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하는데, 군대야말로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그런 문제에 있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건은 4.3사건이나 또는 거창양민학살사건”이라고 말했다.

표 준장은 “(4.3 사건 등 양민학살사건은) 우리 군이 저지른 것이 아니다. 우리 군이 누명을 쓰고 있는 것이다”라며 “소위 일본 앞잡이 하던 그런 친일 세력들이 저지른 것이다. 그 정치인들이 정치 군을 동원해 군대의 무력을 활용했을 뿐이다”라고 말해 4.3학살의 주범은 군 전체가 아닌 일본군 출신의 ‘친일군’이라고 주장했다.

표 준장은 발언은 4.3당시 2만여명의 양민을 학살한 주범은 일본군 출신의 친일세력이며, 그들이 군대의 무력을 활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표 준장이 말하는 4.3과 일본군 출신 친일세력은 누구를 말하나.

1948년 4월3일. 소위 4.3사건 발발 직후부터 종료직전까지 김익렬 9연대장, 박진경 9연대장, 최경록 11연대장, 송요찬 11연대장, 함병선 2연대장이 4.3사건을 진압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이중 김달삼과 평화협상 직후 교체된 김익렬 연대장을 제외하고 박진경 최경록 송요찬 함병선 연대장 모두 일본군 출신이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는 이들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군정장관 딘 소장이 제주에서 군정 당국 수뇌회의를 주재하고 떠난 다음 날인 5월 6일, 전격적으로 제9연대장의 교체가 이뤄졌다. 그 동안 화평정책을 추진해 온 김익렬 중대장을 해임하고 그 후임에 김비대 총사령부 인사처장 박진경 중령을 발령한 것이다. 박진경 중령이 새 연대장에 박탁된 것은 일제 때 오사카 외국어학교를 나와 영어에 능통해 미군과 잘 통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일제 말기 일본군(소위)으로서 제주도에 주둔한 바 있어 일본군이 축성한 진지나 지형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217쪽)

즉 박진경은 일본군 출신으로 일제 말기에 제주에 주둔하며 독립운동을 탄압해 왔던 인물이다.

김익렬 중령은 그의 회고록을 통해 “박진경 중령이 연대장 취임식 때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명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고 발언했다”고 기록했다.

연대장으로 부임한 박진경 중령은 ‘양민과 폭도의 구별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중산간마을 주민들을 무조건 연행했으며, 딘 장군은 이를 ‘성공한 작전’으로 평가해 그를 대령으로 특진시켰다. 그러나 그는 며칠 안돼 그의 부하에 의해 암살당한다.

“박진경 연대장이 암살당하자 미군사령부는 6월21일 새로운 11연대장에 최경록 중령을, 부연대장에 송요찬 소령을 임명하였다. 이들은 모두 일제 때 전투 경험을 쌓은 일본군 준위 출신으로서 미군정 시대에는 나란히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한 공통된 경력을 갖고 있다”(229쪽)

이후 경비대 총사령부는 9연대를 부활시키면서 연대장에 송요찬 소령을 임명했다. 송요찬은 계엄 사령관이 된 후 제주전역에 초토화 작전을 펼쳐 대량학살의 주범이 된다.

“문명국가라면 계엄법에 80대 노인에서부터 젖먹이에 이르기까지 비무장 민간인을 무차별 총살하라는 조항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일제 때 일본군이나 만주군으로 복무했던 군인들에게 중국인 학살의 경험이 있을 뿐이었다....(중략) 실제로 강경진압작전을 주도한 송요한 제9연대장과 함병선 제2연대장은 모두 일제 지원병 준위 출신이었다”

송요찬 연대장이 재임중이던 1948년 11월부터 1949년 2월까지 약 4개월 동안 벌어진 강경 진압작전 때 대부분의 중산간 마을이 불에 타 사라지는 등 제주도는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특히 11월 중순 이전에는 주로 젊은 남성들이 희생된데 반해 강경진압작전 때에는 토벌대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주민들을 총살함으로써 제주4.3사건 희생자 대부분이 이 때 희생됐다.

4.3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 통계를 보더라도 15세 이하 전체 어린이 희생자 중 이 때 희생자가 전체의 76.5%를 차지한다. 또 61세 이상 희생자 중에서는 이 기간에 76.6%가 희생됐다.

초토화 작전을 성공리에 마친 송요찬의 11연대는 이후 2연대(연대장 함병선)으로 교체된다. 제주 주둔군을 제9연대에서 제2연대로 교체하고 과격한 반공주의자인 서청단원들을 토벌대에 합류시킨 것은 제9연대보다 더욱 더 강경한 작전을 통해 조속히 사태를 끝내기 위한 조치였다.

“제주에 파견된 제2 연대장 함병선 중령은 일제 지원병 준위출신으로, 최경록 제11연대장, 송요찬 제9연대장에 이어 일본군 준위 출신이며 3대 연속 제주도지구 진압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일본군으로서 만주 지역 등지에서 중국군이나 항일 빨치산과 싸웠던 전투 경력을 인정해 제주 진압전을 맡긴 것으로 보인다”(305쪽)

4.3보고서는 3대 연속이라고 표기돼 있으나 박진경까지 포함하면 4대 연속 일본군 출신이 제주 4.3사건을 진압한 셈이다.

함병선이 이끄는 2연대가 무차별적인 살육과 토벌로 무장대는 거의 괴멸하고 나서야 1949년 7월 제2연대는 제주를 떠난다.

4.3위원회에 신고된 1만4028명의 희생자 중 일본군 출신인 박진경-최경록-송요찬-함병선 4명의 연대장 재임시절에 전체의 1만2245명, 87.3%가 희생된 것이다.

표명렬 준장이 말한 일본군 출신들이 저지른 만행이라는 것이 바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표명렬 준장은 CBS대담에서 “군인으로서 제일 부끄러운 군인이 항일 독립 전쟁 당시에 독립군 광복군을 토벌하기 위해 일원에 참여했던 군인이다. 다음은 군인이 쿠데타를 해서 민주 정권을 탈취해 버리는 것, 그리고 정권유지를 위해 수많은 죽음을 만든 이런 군인이 있다면 가장 부끄러운 군인이다”면서 “그런 군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내가 보기에는 박정희이다”라고 말했다.

제주4.3과 거창양민 학살 사건에 대해 언급한 표 준장은 “광주 학살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에 대한 정리를 해야 한다”며 “우리가 그러한 불모로부터 해소되고, 정말 자랑스러운 국군으로 원래 우리 국군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이러한 자부심을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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