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영 칼럼] 21세기 '의료재앙국' 미국과 제주의 '운명'

오바마 행정부의 의료개혁 정책 추진으로 미국사회가 요란하다.

<뉴욕타임즈>,<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들은 연일 특집기사를 쏟아낸다.

미국은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없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국가의료체계는 민영의료보험, 제약회사, 영리병원이 주도하는 시장원리에 맡겨져 있다. 1971년 ‘세계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미국민에게 가져다 줄 것’이라며 닉슨 행정부에 의해 세계 최초로 민영의료보험이도입된 이래 오늘날 미국 국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21세기 의료재앙국’이라는 오명이다.

미국 국민 중 의료보험 가입자는 35%에 불과하다. 물론 미국에도 저소득층과 노인층을 위한 의료보호와 의료부조 같은 공공의료서비스가 있다. 하지만 전체 국민의 35% 정도밖에 혜택을 못 본다. 최소 연간 1500만원에 달하는 의료보험료를 낼 능력이 없는 나머지 45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의료서비스로부터 방치되어 있다. 최근의 경제위기와 기업들의 부도에 따른 대량 해고사태는 다치거나 병을 얻은 미국 국민들을 더욱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지난 해 미국 개인 파산자의 62%가 의료비 때문이었다.

문제는 턱없이 비싼 의료비다. 감기진료 한 번에 수 십 만원, 맹장염 수술에 천만원, 아이 하나 낳는 데 1500만원이나 든다. 다리에 난 상처를 마취도 없이 자신이 직접 꿰매고, 바로 코 앞 쿠바에서 5센트 하는 알약 하나가 미국에서는 백여 배나 비싸게 처방되는 현실을 앞에 두고 그들은 눈물을 흘린다.

미 민주당이 준비하는 오바마의 의료개혁 관련 법안의 핵심은 전국민의료보험을 도입하여 민영의료보험에 맞서는 공공의료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의료시장에 개입해 고비용, 저효율의 의료서비스 공급구조를 뜯어고치는 데 명운을 걸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고소득층의 세금 인상, 부가가치세 확대, 공공의료보험 효율성제고등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8%(2007년도)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을 국민의료비로 지출하고 있고 또한 이 비용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OECD국가 평균 9%). 조만간 미국 국부의 1/3이 의료비로 소진되리라는 예상이다. 이런 과도한 의료비는 온전히 가계와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것일 뿐 만 아니라 향후 국가 성장 전략에도 치명적이라는 것이 오바마 행정부의 판단이다.

미 공화당을 필두로 한 오바마의 의료개혁에 반대하는 보수진영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이 ‘산업을 국유화하고 의료제도를 사회주의적제도로 바꾸려 한다’고 공격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색깔 논쟁이다. 공화당과 의약계의 거센 반발은 과거 클린턴 행정부가 추진한 의료보험개혁을 좌초시킨 바 있다.

이에 대한 오바마의 대응은 단호하다. 미 의학협회(AMA) 연례회의 석상에서 의사들을 앞에 두고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GM처럼 (우리 미국도) 더 많이 지불하고 덜 얻으면서 결국 파산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건강보험 개혁에 반대하는 이익집단과 로비스트들을 “의료개혁을 사회주의화 시도로 매도하여 공포를 조성하는 자들”이라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즈>의 최근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85%가 오바마의 의료보험개혁을 지지하고 보험료를 더 지급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수술대에 오른 미국의 의료제도에 대하여 하버드의대 렐만 교수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70년대 이후 줄 곳 의료민영화의 폐해를 고치는 데 헌신해온 그는 얼마 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료민영화 시스템에서 미국 국민들은 피해를 보고 있지만 의약계와 보험회사들은 많은 이익을 내고 있다. 그들 집단이 가진 힘이 막강하기 때문에 개혁이 쉽진 않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미 의회와 오바마 대통령행정부의 결단이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한다.

“의료민영화가 더 큰 의료 혜택을 가져다준다는 논리는 증명된 바가 없다. 의료민영화 체제에서는 의료진이 환자의 건강보다는 경제적인 이익을 우선하게 된다. 그것은 절대 추진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라고 그는 강조한다.

미국의 의료개혁성패는 오바마 행정부의 잔여 임기의 명운을 가를 한판 승부가 될 것이라 언론들은 전망한다.

거꾸로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추진은 집요하고 강력하다. 민영의료보험의 대부분의 규제는 이미 다 풀렸다. 건강보험공단이 가지고 있는 국민들의 진료기록 정보를 민간보험회사에 공개하는 법률안이 한나라당에 의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의료채권발행, 병원경영지원회사 설립 허용 등의 법률안도 대기 중이다. 의료민영화를 구성하는 주요 내용들이다.

▲ 허진영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올 4월 영리병원 설립허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던 계획을 10월로 잠시 미룬 대신 이처럼 세부 내용들은 차근차근 추진되고 있다. 비정규직법, 미디어발전법 등 정국을 뒤흔들 대형 쟁점에 국민적 저항을 불러올 의료민영화 논쟁이 더해지는 부담을 의식한 이명박 정부의 숨고르기이자 우회전술 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오바마 행정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이명박 정부는 의료민영화 정책에 자신의 명운을 걸고 있는 것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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