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 (56)

수선화, '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 1, 2'에 이미 등장을 했던 수선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쓸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습니다.

   
입춘, 우수가 지났고 이미 입춘 다음 날 복수초와 눈맞춤을 한 저는 봄꽃들의 행령이 언제부터일까 고대하고 또 고대하며 중산간지역의 눈이 녹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 눈이 남아있는 가운데 피어나는 꽃을 만나는 행운이 오는 것도 좋겠지요. 그런데 오늘(20일) 뜻하지 않게, 상상도 하지 못하던 꽃에 눈이 소보록하게 쌓인 장면을 만나는 행운을 맞이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올해같이 눈이 많은 경우에는 종종 해안가 저지대에서도 눈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만 바람 때문에 소보록하니 눈을 이고 있는 동백이나 수선화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중산간으로 가면 눈을 이고 있는 동백은 볼 수 있지만 겨울에 피어있는 수선화는 저지대나 해안가에서나 볼 수 있으니 수선화와 눈이 어우러진 것을 찍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차례 추위가 지나면 꽃이 물러서 예쁜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올해는 유난히도 추운 날씨가 많아서 한창 지천일 수선화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짓물러진 꽃에도 최선을 다해서 피어나긴 하지만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편이고, 이제 우수가 지나고 나니 남은 꽃들을 피우려는 듯 요사이 며칠 따스한 날씨에 열심히들 피어났습니다. 어제부터 추운 날씨에 다시 짓물러버리겠구나 했는데 그 꽃들이 하얀 눈을 만나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아, 좋다!'

수선화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언감생심의 현실을 보는 저의 마음에서는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언제 해가 떠서 녹아버릴지 모를 눈, 어서어서 담아야지 하는 마음에 뜰을 이리저리 눈을 맞으며 다니는 나를 보며 아내가 타박을 합니다.

"애들도 아니고, 눈이 온다고 더 좋아하냐?"

눈이 와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아주 특별한 풍경이 좋은 것입니다.
올 겨울이 유난히 춥게 느껴져서 어서 봄이 오기를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데요.

   

수선화는 자존심이 센 꽃입니다.
꽃말도 '자아도취'요,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을 사랑하게 된 나르시스가 상사병으로 죽어 핀 꽃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꽃이기도 합니다.

이미 얼어버린 꽃, 눈이 녹으면 아마 꽃은 보기 흉하게 짓무를 것입니다.
그래도 그건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햇살만 따스한면 다시금 누웠던 이파리도 세우고, 상처 입은 꽃도 당당하게 고개를 고추 세우는 꽃입니다. 상처를 감추지 않는 당당함, 그 당당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자연은 지금, 주어진 그 상황을 가장 아름답게 맞이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때로 우리들은 오지도 않은 미래에 절망하며 현실을 절망시켜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혜롭다는 인간들의 일입니다. 그런데 자연은 절대로 그렇게 미련하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지금 주어진 그 현재, 그 현실에 가장 최선으로 대하는 지혜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언제 봄이 올까 기다리는 마음을 꽁꽁 묶어두려고 수선화 위에 소복하니 겨울을 얹어놓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 없고 가라는 사람 없어도 오고 가는 것이 계절이니 이번 추위만 가고나면 봄이 성큼 내 앞에와 있을 것만 같습니다.

수선화에게는 미안한 날이지만 상상하지도 못했던 풍경이 행운처럼 다가온 날의 풍경, 한 토막이었습니다.

※ 김민수님은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는 것을 즐겨 합니다. 자연산문집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 '을 방문하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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