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에서 '홀로서기'를 배우는 이동헌씨 가족 이야기
"우리집에서 아빠는 '영웅'"...달리면서 '가치'를 배운다

“아들 건우와 함께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이 꿈입니다. 기록은 관계 없어요. 건우와 파트너로서 마라톤을 함께하길 바라요.”

이동헌 씨(37, 외도동) 가족은 거의 매달 ‘소풍’처럼 마라톤대회를 다닌다. 이동헌 씨는 하프코스, 아들 건우(9)와 딸 유빈(8)이는 5km를 뛰고, 부인 조복자 씨(37)는 이들을 후원하는 응원단장이다.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가족이 함께 하며 즐겁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가족들의 행복한 한 때’. 이것이 마라톤을 하는 이유다.

“마라톤이 기록대회라기보다는 ‘소풍’이란 느낌입니다. 식구들이 모여있다는 게 중요하죠. 대화가 사라진 가정이 많은데 우리 가족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 얘깃거리를 만들어 냅니다. 대회가 끝나면 ‘어느 지점이 제일 어렵고, 쉬웠니?’, ‘아빠, 동산을 만나면 숨이 턱턱 막혀요.’ 등등의 얘기가 이어집니다. 집에서 다과시간을 갖더라도 마라톤이 화제가 돼죠.”

7살 때부터 아빠를 좇아 운동을 시작한 아들 건우는 마라토너 아빠를 무척 존경하며 따른다. 부자지간에 반목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요즘, 이들의 애정과 신뢰는 단연 ‘마라톤’에서 꽃 핀다. 건우에게 마라토너 아빠는 ‘영웅’이다.

“아빠가 마라톤도 열심히 하고 축구도 잘 해서 ‘오버헤드킥’하는 걸 보면 부러워요. 저도 지금은 10km까지 뛰었는데 앞으로는 하프코스에 도전할 거예요. 하프코스 뛰려고 아침 6시에 알람 맞춰놓고 일어나서 학교 운동장 5바퀴를 뛰어요.”

▲ 이동헌 씨 부자의 마라톤 대회 참가 모습. ⓒ제주의소리

건우의 이런 신뢰는 부모의 신뢰로부터 나온다. 이동헌 씨 부부는 ‘신뢰’와 ‘인성’에 기반한 교육관으로 투철하다. 이의 발현이 ‘마라톤’이었다.

“건우가 한 번은 받아쓰기 점수를 받아들고 왔어요. 점수가 엉망이더라고요. 하지만 혼내지는 않았어요. 실은 저도 성적이 썩 좋지 못했거든요.(웃음) 성적 때문에 자신감마저 떨어져서는 안 되는 거죠. 마라톤이 자신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돼요. 더 어렸을 때는 건우가 운동치였어요. 태권도, 축구를 가르쳐도 체력이 약해서 잘 하질 못하더라고요. 마라톤을 하면서 기본 체력을 키우니까 태권도, 축구, 달리기 다른 운동도 다 잘하게 되더라고요. 건우 스스로도 자신감이 부쩍 는 것이 보입니다.”

이 씨 가정의 이런 분위기는 건우에게 대단한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건우의 부지런함과, 자발적인 행동들이 이를 말해준다.

“건우가 워낙 아빠가 하는 건 다 따라하려고 해요. 가족들끼리 한라산에 갈거니까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했어요. 한 번만 깨우고 일어나지 않으면 데려가지 않을거라고도 했죠. 그랬더니 다음날 자명종 맞춰놓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지금은 여름방학 기간인데도 아침 6시면 매일 아침운동을 하는 9살 건우다. 건우의 꿈은 대표선수다. 무슨 종목 대표선수냐니까 “과학자, 요리사, 트럭운전, 달리기...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그냥 대표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이들도 처음부터 이렇게 화목한 것은 아니었다.

이 씨 부부는 연애 8년만에 결혼, 초반에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단다.

“초반에는 정말 많이 싸웠어요. 연애와 결혼의 차이 때문이랄까.. 그런데 부부싸움을 하는데 아이들이 우리 눈치를 보더라고요. 이건 안되겠다 싶었어요. 아이들 때문에 우리도 서로 배려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죠. 이 시기 마라톤 대회를 함께 다니기 시작했어요. 많은 도움을 받았죠.”

이 가족의 전체 꿈이 있다. 바로 그리스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꼭 함께 가리라 다짐하는 이 씨 가족.

▲ 마라톤을 통해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이동헌 씨 가족. 최근에는 거의 매달 마라톤대회에 함께 참석할 정도로 마라톤을 사랑하는 가족이다. ⓒ제주의소리

이들 마라톤 가족은 오는 9월 27일 열리는 제2회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대회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은 아름다운제주마라톤대회가 참가비의 절반을 서남아시아 수해난민 아이들과 도내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기부한다는 점이 아이들의 교육면에서 좋을 것이라며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요즘 마라톤 대회들이 상업적으로 변질돼 난립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습니다. 이왕 할 거면 가치를 두고 치러야죠. 그런 점에서 이번 아름다운제주마라톤대회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기부에 동참하는 경험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라톤을 통해서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이동헌 씨는 무엇보다 마라톤을 통해 아이들의 인성이 훌륭하게 자라줄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마라톤이든 무엇이든 산 경험이 중요합니다. 보호자로서 끌어줄 필요는 있지만 언젠가는 홀로서기, 독립을 배워야 하죠. 마라톤이 홀로 서는 법을 가르쳐줄 겁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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