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조중훈 회장·전 유상희 대표 “국내 시판 않겠다” 확언…실종된 ‘기업윤리’

한진그룹 계열사인 한국공항이 생수 수출과 국내시판을 허용해 달라며 제주도를 상대로 건설교통부에 행정심판을 청구해 상당한 파문이 일고 있다.

한국공항이 청구한 행정심판은 제주도가 자신들이 생산한 생수(제주광천수)의 반출목적을 ‘계열사(그룹사) 공급’으로 제한한 부관을 철회해 달라는 것으로, 이는 자신들이 계획하는 ▲수출 ▲주한 외국인 상대 판매 ▲서울 특급호텔 대상 판매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수출은 물론 국내시판을 허용해 달라는 것으로 도민의 생명수인 지하수를 거대 재벌기업이 돈 벌이로 삼겠다는 것에 대한 도민들의 강력한 저항이 예상된다.

특히 한진그룹은 1996년 신구범 지사 재임시설 자신들에게 부과했던 ▲전량 수출 또는 주한외국인에 대한 판매에 한 한다 ▲제주도지방개발공사가 주문생산을 요청할 때는 이를 생산공급한다는 부관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후 승소했으나 도민여론과 대기업의 사회적 위치 등을 감안해 조중훈 한진그룹회장에 이어 한국공항의 전신인 제동흥산 유상희 대표이사가 “생수 국내시판을 하지 않겠다”고 도민들에게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헌신짝 처럼 버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고 도민들을 우롱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장면 1 : 조중훈 회장 “제주 물 가지고 돈 벌 생각 없소. 물장사 안 할 거요”

▲ 조양호 한진그룹회장은 지난 95년 7월 신구범 지사 부부를 초청한 자리에서 제주물로 돈을 벌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이 자리에는 조양호 현 한진그룹 회장도 함께 했다. 좌측부터 신구범 전 지사, 고 조중훈 회장, 조양호 회장.
1995년 7월. 제주에 모처럼 방문한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은 민선지사에 취임한 신구범 지사를 제동목장으로 초청, 이곳 별장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는 조 회장 부부와 신 지사 부부, 그리고 조중훈 회장의 장남인 조양호 현 한진그룹 회장이 함께 했다.

이날 오찬은 민선지사에 당선된 신 지사에 대한 축하와 함께 조중훈 회장의 지난 4년동안 숙원사업이었던 대한항공 훈련비행장(현 정석비행장) 활주로 확장공사 승인에 대한 답례의 성격이었다.

식사 도중 대화는 자연스럽게 선거 뒷이야기, 제주개발 문제가 중심이 되었는데, 말은 주로 조 회장이 하는 편이었다.  점심을 거의 끝내고 자리를 뜨기에 앞서 나는 조회장에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

“영감님, 제주도 지하수 가지고 물장사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순간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그는 조용하게 대답했다.

 “신 지사, 제주 물 가지고 돈 벌 생각 없소. 물장사 안 할 거요”

그 후에 제동흥산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불심(佛心)이 돈독한 조중훈 회장은 공양정신으로 제주 물을 늘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어쨌든 6.27 지방선거 때, 생수를 개발해 도민기업화 하겠다고 공약했던 나로서는 제주생수에 관한 한 선발기업이라 할 수 있는 제동흥산이 속한 한진그룹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의 대답을 듣고 난 후 본격적으로 생수개발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신구범 지사 회고록 ‘신지사, 독립운동한다며’ 128쪽)

조중훈 회장이 제동흥산에서 생산한 생수를 국내시판하지 않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힌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조 회장이 타개한 이후 한진그룹을 이끌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함께한 자리였다.

# 장면 2 : 조 회장 “ 지난 일은 미안하다. 유 사장에게 모든 것 지시하겠다”


▲ 제주생수와 관련된 조중훈 회장과의 이야기가 실린 신구범 전 지사의 회고록.
1996년 9월 28일 오후3시 제주 칼호텔. 조중훈 회장의 요청으로 신구범 지사가 다시 그를 만났다.

이 당시 신구범 지사는 한국공항의 전신인 제동흥산이 요청한 지하수 개발·이용허가에 대해 ▲생수는 전량 수출 또는 주한 외국인에 한해 판매하며 ▲개발공사가 주문생산을 요청할 때는 이를 생산·공급한다는 부관을 부쳤다가 제동흥산이 건설교통부에 부관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청구, 제주도가 패소한 직후였다.

조 회장 : 지난 일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도지사와 내가 싸우는 것은 서로 달걀로 바위 치기다. 둘 다 손해다. 앞으로 유 사장(제동흥산)에게 모은 것을 지시해 놓겠다. 잘 협력해 달라.

도지사 : 지난 이야기는 할 필요 없다. 조 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다. 조 회장이 내개 한 이야기, 내가 조 회장에게 드린 말씀이 잘 지켜지기만 하면 된다. 조 회장의 뜻이 현지에 잘 전달이 안 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꽈배기 꼬듯’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한번 신뢰했으면 그 신뢰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신구범 지사 회고록 ‘신지사, 독립운동한다며’ 134~135쪽)

1년 2개월 만에 신 지사를 다시 만난 조 회장은 제동흥산과 제주도간의 법정 분쟁에 유감을 표하고, 행정소송 취하의 뜻도 밝혔다. 또 95년 7월에 신 지사에게 말한 제주 물 가지고 돈 벌 생각이 없다는 예전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 장면 3 : 유상희 제동흥산 대표 “도민에게 송구스럽다. 국내시판 의사 전혀 없다”

▲ 유상희 제동흥산 대표이사는 96년 10월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생수 국내시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사진은 한라일보 기사.
1996년 10월 8일 제주도청 기자실. 한국공항의 전신인 제동흥산의 유상희 사장이 기자실을 방문,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며칠 전 조중훈 회장이 신구범 지사에게 말한 약속 이행이었다.

유상희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들이 생산한 생수를 국내에 시판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제주도가 개발공사에 먹는샘물을 공급해 주도록 요청할 경우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까지 말했다. 도민과의 약속이었다.

“먹는샘물 문제로 도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

제동흥산은 먹는샘물을 국내에 시판할 의사가 전혀 없다. 제동흥산의 먹는샘물은 현재 대한항공과 우리나라에 취항하고 있는 외국 항공기와 외항선을 대상으로 한 수출, 그룹내 자체 음용수로만 사용해 오고 있다.

이번 행정심판 결과와 관계없이 현행생산 공급 범위를 유지할 것이며 (국내에)시판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 현재 진행중인 행정소송도 먹는샘물 시판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은 아니며, 금명간 취하할 예정이다.

제주도가 도지방개발공사에 먹는샘물을 공급해 주도록 요청할 경우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1996년 10월 8일 유상희 제동흥산 대표이사 기자회견문)

# 장면 4 : 도의회...유상희 대표 “국내시판, 앞으로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1996년 12월 27일 제123회 제주도의회 관광건설위원회. 제동흥산이 제주도에 요청한 지하수(먹는샘물) 재이용허가 동의안 의결을 위한 도의회 관광건설위원회 회의장. 이 자리에는 이미 기자회견을 통해 먹는샘물 국내시판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제동흥산의 유상희 사장이 참고인 자격으로 나왔다.

▲ 유상희 대표는 기자회견에 이어 두달 후 도의회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국내시판을 않겠다는 것은 회사의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사진은 96년 10월 도청 기자회견 장면. 맨 우측이 유상희 대표.

한공익 위원장 : 제동흥산 측에서 언론인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하면서 “시판은 하지 않겠다” 이렇게 발표를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우리 의회측에 시판하지 아니하겠다고 하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한 사실이 없습니다.  유 대표 이사께서는 앞으로 시판계획이 있는가, 없는가. 시판을 하겠으면 얼마나 하겠고, 아니한다면 정말로 시판을 안 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유상희 대표 : 지금 위원장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저희 제동흥산은 전자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안 했습니다만, 기자회견도 했고, 저희로서는 일반 시판을 안 하는 것으로 회사방침이 결정되어 있고, 또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강공우 위원 : 앞으로 일체 제동흥산에서 시판을 안 하시는 것으로 우리가 확정을 해도 좋겠습니까.

유상희 대표 : 예, 그렇습니다. 저희는 시판할 계획도 없고...

강공우 위원 : 지금 이 자리는 제주도민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제동흥산과 제주도의회가 어떠한 타결이 날 것인가, 그래서 확고하게 재차 묻습니다. 제동흥산에서 앞으로 시판을 안 하겠다! 이게 확고한 의지죠?

유상희 대표 : 예 알겠습니다. 사실 저희가 이 지하수문제로 사실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또 제주도민 여러분께도 여러 가지 심려를 끼쳐 드렸고 해서 이것은 앞으로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안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123회 도의회 회의록, 355~358쪽)
 
한진그룹은 지금까지 그룹 내 왕회장으로 불리는 고(故 ) 조중훈 회장이 신구범 지사를 만나 제주 물을 갖고 돈을 벌 생각이 없음을 두 차례나 분명히 밝혔다. 두 차례 면담 중 한 차례에는 현재 생수 국내시판의 의지를 보이고 있는 조양호 회장도 함께한 자리였다.

또 한국공항의 전신인 제동흥산의 유상희 대표 역시 기자회견과 도의회 답변을 통해 생수를 국내에 시판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시판을 안 하는 것으로 회사방침이 결정됐다는 사실을 확언했다.

그러나 한진그룹과 한국공항은 이제 제주도를 상대로 국내시판을 허용할 것을 요구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불과 10년밖에 안된 시점에서 제주의 연고기업이라고 주장하는 한진그룹이 이제 제주도민의 생명줄인 지하수를 돈 벌이에 이용하겠다며 압력을 놓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해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제주도민에게 공개적으로 한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려 하는지, 아니면 조중훈 왕회장이 타개한지도 이제 2년 3개월이 흘러 그 약속은 이제 빌공자 공약(空約)이 돌려버려도 된다는 것인지 한진그룹이 제주도민에게 비쳐지는 이미지는 고약하기만 하다. 실종된 대기업의 윤리의식을 지금 한진그룹은 도민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