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석 의원, 무죄판결 이정렬 판사에게 공개서한

골프는 ‘우연’이 아닌 ‘기량’에 의해 승패가 좌우되는 만큼 억대룰 걸더라도 내기 골프는 도박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는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에 대해 스포츠 사회학자인 안민석 의원(열린우리당·경기도 오산)이 “골프는 스포츠이지만 억대의 내기 돈이 걸린 골프는 분명히 처벌받아 마땅한 ‘범죄’”라고 반박했다.

중악대학교 사회체육학부 교수와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을 지낸 안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www.osan21.or.kr)에 ‘스포츠 사회학자가 본 내기골프의 범죄성’란 제목으로 이정렬 판사에게 공개서한을 통해 “1년반 동안 20~30여회 십수억원의 판돈 걸린 내기 골프를 ‘무죄’라고 한 것은 스포츠사회학을 전공한 저는 물론 대한민국 국민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반론을 제기했다.

안 의원은 지난해 11월에는 제주출신 열린우리당 김재윤 의원과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 등 여야 의원 30명과 함께 "무분별한 골프장 증설을 반대한다"며 '국회의원 노(NO) 골프 선언'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제주의 소리 2004년 11월 18일 보도 : 국회의원 30명 'NO골프' 선언, "골프장 증설 중단해야">

다음은 안 의원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전문이다.

내기골프 무죄선고한 이정렬 판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내기 골프는 ‘스포츠’가 아니라 분명히 ‘범죄’

‘우연이 아니라 실력이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거액의 내기골프는 무죄라는 이정렬 판사님의 판결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판사님은 판결문을 통해 "도박은 화투나 카드, 카지노처럼 승패의 결정적인 부분이 우연에 좌우돼야 하나, 운동경기는 경기자의 기능과 기량이 지배적으로 승패에 영향을 끼치므로 운동경기인 내기골프는 도박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피고인들은 18홀을 9홀씩 전후반으로 나눠 전후반 각각 1타에 50만원, 1백만원씩 건 데 이어, 전반전 우승자에게 5백만원, 후반전 우승자에게 1천만원을 주는 내기 골프를 쳤다고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1년반 동안 20~30여회 십수억원의 판돈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무죄’라니요? 스포츠사회학을 전공한 저는 물론 대한민국 국민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판결입니다.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우연’이라는 불확실성이 재미를 좌우하는 ‘게임’입니다. ‘스포츠의 불확정성이 게임과 스포츠의 지속에 필요한 긴장과 흥분을 제공해 준다(Elias & Dunning, 1970)’고 합니다.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스포츠가 재미있는 것입니다. 물론 코치와 운동선수들은 모든 우연적 요소들을 인과적인 변수로 바꾸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이나 행운이라는 나머지는 항상 남게 됩니다. 판사님은 시종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골대 맞고 튀어나온 공 때문에 지는 축구경기를 한 번도 못 보셨습니까?

심지어 스포츠의 규칙마저도 게임의 긴장과 흥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집니다. 어떤 팀이 상대 팀을 거의 이길 수 없거나 그럴 기회가 전혀 없다면 그런 재미없는 게임을 누가 보겠습니까? 예컨대 1950년대 장신의 농구선수들이 나타나자 자유투라인을 확장하고 3초규칙을 바꾸어키 큰 선수를 보유한 팀이 지나치게 유리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연맹내 최종 소속팀에게 우선 선택권을 주는 선수 스카우트 제도도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저는 운동경기는 원천적으로 도박이 될 수 없다는 판사님의 견해에 절대로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운동경기는 행위자들의 행위에 따라 도박이 될 수도 있고 건전한 스포츠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우리 법은 모든 종류의 도박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오락 정도를 넘어서는 도박’(도박성)과 ‘상습적인 도박’(상습성)을 기준으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사실 도박(gambling)이라는 게 금품을 걸고 승부를 다투는 모든 종류의 일을 말하기 때문에 모든 도박을 처벌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 고유의 사행심을 자극하는 도박은 유희성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계까지가 놀이이고, 어느 한계까지가 범죄에 해당하는 도박이냐의 판별이 쉽지는 않습니다.

흔히들 알고 있는 트럼프나 마작, 화투 놀이만 도박이 아닙니다. 윷이나 주사위, 바둑, 체스와 같이 기구를 사용하거나, 룰렛, 슬롯머신과 같이 기계를 쓰는 것, 경마, 경정, 경륜, 자동차나 오토바이 레이스, 권투 등 스포츠의 승패를 대상으로 삼는 것과 당구, 골프, 불링 등 직접 운동경기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복권과 레크레이션 게임에도 내기를 거는 경우에서부터 요즘은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 도박까지 무궁무진합니다. 소액이든 거액이든 돈이 걸리는 게임은 다 도박입니다. 다만 그 ‘도박성’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의 ‘오락’인가, 아니면 처벌 받아야 마땅한 ‘범죄’인가하는 판결을 법원에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 기사에 인용되었듯이 “당구가 기량과 수련이 중요시되는 경기라 할지라도 그 경기자가 그 승패를 확실히 알고 있거나 또는 이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그 경기에서 우연성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라할 것이므로 도박에 이용될 수 있다.”(서울고등법원 1975.04.17 74노1501)고 했습니다. 또 대법원은 지난 2003년 10여차례에 걸쳐 10억원대의 내기골프를 한 신안그룹 박순석 회장에 대해 상습도박죄를 인정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습니다.

반면에 명절이나 심심풀이로 소액의 도박을 한 경우 일주일 이상 십수회를 거듭한 경우도 이를 일시적인 ‘오락’으로 보고 처벌하지 않습니다. 이는 우연한 승부에 재물을 거는 노름행위가 형법상 금지된 도박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일시적인 오락의 정도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점은 도박의 시간과 장소, 도박에 건 재물의 가액정도 도박에 가담한 자들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정도 및 도박으로 인한 이득의 용도 등 여러 가지 객관적 사정을 참작하여 결정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대법원 1985.4.9. 선고 84누692 판결, 대법원 1978.2.28. 선고 77도3999 판결, 1985.9.24. 선고 85도1272 판결 등) 그리고 상습도박죄에 있어서의 상습성이라 함은 반복하여 도박행위를 하는 행위자의 습관을 중요시 할 뿐만 도박의 전과나 도박횟수, 도박의 성질과 방법, 도금의 규모, 도박에 가담하게 된 제반 사정 등을 참작하여 판결하기 때문입니다.(대법원 1995.7.11. 선고 95도955 판결)

앞서 말씀드렸듯이 운동경기도 도박에 이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일년반의 세월동안 수십차례에 걸쳐 수억원을 걸 고 친 내기 골프는 도박입니까? 스포츠입니까? 위의 판례로 비춰볼 때 그리고 상식선에서 생각할 때 너무나 분명한 결론이 나옵니다. 명절마다 되풀이 되는 고스톱 판은 ‘도박’이지만 ‘범죄’가 아닌 것이요, 몇 억이 오고가는 내기 골프는 ‘스포츠’일지는 몰라도 분명히 ‘범죄’입니다.

판사님은 “로또에 인생을 걸었던 사람들이 자살하고, 정부가 허가한 카지노에서 가산을 탕진하는 사람들이 셀 수도 없는 현실에서 국가가 하는 것은 괜찮고, 개인 간의 행위는 위법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이중적 잣대"라고 하셨다지요. 복표나 사행산업이 문제가 있다면 공정한 규제의 틀을 만들어야 할일이지 어떻게 수억원짜리 내기골프를 무죄방면합니까?

내친김에 판사님께 내기 골프의 폐해를 몇 가지 더 말해야겠습니다. 판사님도 분명히 지적했듯이 골프는 ‘귀족 스포츠’입니다. ‘귀족’적인 이유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90타 후반의 실력이시라는 판사님과 달리 저나 평범한 서민들은 내기 골프가 얼마나 만연한 고질병인지, 또 상상도 할 수없는 거액이 오고가는지 잘 모릅니다.

캐디비나 식사비정도를 걸고 게임의 긴장감을 높인다면 내기 골프도 건전한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내기 골프’로 가산을 탕진한 사람이 속출하고, 사기범죄의 한 방편이 되며, 사회지도층의 비정상적인 로비와 뇌물공여의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이미 스포츠를 넘어 ‘도박’이고 ‘범죄’입니다.

골프장마다 공식적으로는 도박성 내기골프를 금지하고 있으나 대부분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 골프 전문잡지의 조사에 따르면 골퍼들의 91%가 내기 골프 경험이 있으면 매번 내기 골프를 친다는 응답도 무려 47%나 되었습니다.(http://www.igolf21.com/) ‘즐거운 라운드를 할려면 내기골프를 해라’는 말이 상식적으로 통할 뿐만 아니라 ‘내기 골프에서 이기는 법’이란 책이 있을 정도입니다.

2001년에는 수십억원대 내기 골프를 친 재벌 회장이 구속되고, 정당 최고 지도층 인사들이 골프회동에서 거액의 내기골프를 쳐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내기골프 추태는 해외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인 관광 골퍼가 1타당 무려 100달러씩이나 걸고 내기골프를 치다 고성이 오간 것이 원인이 되어 주변 불량배들에게 현금과 귀중품을 털리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뇌물수수죄로 기소된 한 지방공무원이 “뇌물이 아닌 내기골프로 번 돈”이라며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시청에서 건축 인·허가와 관련한 업무를 맡고 있었고 골프를 함께 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건설업체와 설계·감리사들이었습니다. 이쯤되면 내기 골프는 절대로 건전한 스포츠가 될 수 없습니다. 분명히 ‘범죄’이지요.

원래 골프는 건전한 스포츠이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매너의 운동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골프를 도박판으로 변절시키는 거액의 내기골프는 골프인 스스로가 추방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귀족 스포츠’가 ‘귀족’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할 때, ‘귀족’적 그늘에서 사회악을 양산할 때 마땅히 보다 엄격한 사법적 판단이 요구됩니다. ‘귀족’이 ‘특권’이던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만, 이정렬 판사님을 비롯한 사법부에게 다시 한 번 소박한 준법의식을 가진 국민으로서 말씀드립니다. 금수강산 백두대간 곳곳이 골프장으로 파헤쳐지고 과도한 농약살포로 오염되는 것도 원통한데 수십만원도 아니고 수억원씩 걸고 친 골프가 범죄가 아니라니요! 절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억대의 내기돈이 걸린 골프는 분명히 처벌받아 마땅한 ‘범죄’입니다. 이정렬 판사님의 판결에 재고를 요청하며 사법부의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합니다.

2005년 2월 22일

국회의원 안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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