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 도로왕국 제주(1)]- 도로개발에 대한 반성

제주의 도로개발. 환경운동가뿐만 아니라 많은 도민들, 심지어 관광객들도 너무 심하다고 이야기한다. 객관적으로도 제주의 인구대비 도로면적은 전국최고이며 북제주군은 전국 최고의 도로포장율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왜 지금도 제주의 도로개발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것일까?

그리고 무분별한 도로개발로 인해서 어떤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는가? 특히, 지난 2004년 조천우회신설도로 반대운동의 사례를 통해서 향후 도로개발정책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것일까? 이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총 5회에 걸친 기획기사를 준비하였다. 앞으로 5회에 걸쳐 제주의 도로개발에 대한 심층기사를 싣는다. [필자 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교육팀장]

길과 도로. 이 두 단어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같은 개념으로 나오지만 우리가 느끼는 이미지에서 차이가 있다. 오솔길, 숲길, 골목길, 황톳길, 고삿길 등 길의 종류는 무척이나 많다. 이 단어들이 풍기는 이미지는 인간적인 소통의 공간이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은 인간적 규모의 길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현대의 도로는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동차 문명을 위한 기능으로 쓰이고 있다.

더구나 도로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주도적인 개발사업중의 하나이다. 박정희 정권때부터 시작한 고속도로 사업은 한국사회를 산업화로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 좁은 농로가 시멘트로 확 포장되었고 개발이 진행될 곳에는 어김없이 도로가 개설되면서 사업이 시작되었다. 그 누구도 도로개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않았다.

그런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박정희정권때부터 시작된 '토건국가'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고, 토건국가의 가장 기본적 개발요소였던 도로개발은 인간을 위한것도, 산업의 발전을 위한것도 아닌 관련 당국과 건설업계의 조직유지를 목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도로개발로 인한 문제는 환경문제, 교통사고 문제, 침수피해 등 열거할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도로개발의 주목적인 산업의 발전이라는 시각에서 보았을때도 문제가 있다. 오히려 수많은 대규모 신설도로가 생기면서 지역 상권이 낙후되어가는 것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주의 도로개발, 과거와 현재는 어떤가?

▲ 도로개발은 제주생태계파괴의 가장 큰 주범이다. 사진은 동부관광도로 확포장 공사 현장.
제주의 도로개발, 과거와 현재

조선시대 제주도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로는 제주와 대정, 제주와 정의를 잇는 두 도로였다. 오늘날 동부산업도로와 서부산업도로로 넓혀진 이 도로는 내륙 중산간 지대를 통과할 뿐, 해안을 거치지는 않는다. 이 곳을 잇는 도로야말로 목사와 현감은 물론 관리들이 가장 자주 이용하는 길이었으며. 두 도로를 따라 양반 유림촌이 형성되었고, 이 마을들이 제주도의 중심 마을로 번영을 누려왔다.

일제는 1912년부터 도로 정비와 확장에 나섰는데, 먼저 힘을 쏟은 곳은 기존의 두 도로가 아닌 해안 일주도로였다. 이렇게 해서 일주도로 개설은 총 길이 181km를 폭 6m로 확장하여 1918년에 끝냈고, 다시 1932년에 폭 10m로 다시 확대 단장하는 공사를 벌였다. 그리고 오늘날 제1횡단도로라고 부르는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도로도 개설하였다. 또한 1938년 군용도로로 개설된 제주-표선간 동부산업도로와 제주-대정간 서부산업도로가 개통됨으로써, 물자 및 인구 이동이 나날이 확대되었다.

그리고 2005년 현재 어느 시.군을 가나 도로의 확포장과 새로운 도로의 개설이 수없이 이뤄지고 있다. 아래표에서 알수있듯이 광역시를 제외하고는 제주도보다 도로밀도가 높은 곳이 없다. 인천광역시와 울산광역시의 경우는 제주도보다 면적대비 도로밀도가 낮을 정도이다. 그리고 인구대비당 도로면적이 전국에서 제일 높을정도로 높은 도로포장율을 자랑하고 있다.

                  [전국 광역자치단체의 도로밀도 비교/출처 : 황경수, 2004]
   
위표와 같이 제주도는 어느 지역보다 도로밀도가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제주도의 도로의 총연장은 3,200.7km(2003년 12월 기준)로서 제주도의 해안선을 따라 12번 반을 돌고도 남는다. 그러면 면적은 얼마나 될까? 제주도의 모든 도로를 2차선으로 가정하더라도 포장도 2,625km(포장율 82%)에 차로폭, 보행자도, 기타요소 등 도로폭원을 곱하여 산출한 면적이 40㎢ 가까이 달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제주의 도로개발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예정이다. 2003년, 북제주군의 도로분야 개발사업비는 전국 최고 수준에 이르렀을 정도로 도로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개발도상국이었던 상황에서는 도로밀도가 높은 것이 미덕이며, 경제발전 정도를 나타내는 긍정적인 지표였다. 그러나 제주도의 도로개발은 이미 적정량을 넘어섰고 경제발전에 기여하기보다는 그보다 더한 생태적․사회적인 문제점을 발생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도로개발은 행정당국의 가장 주요한 업무중의 하나일정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왜 도로개발이 아무 장애물없이 순조롭게 이뤄지고있는것일까?

도로개발은 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첫째, 지방정부는 개발정책 중 도로에 우선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의 혜택받는 정도의 기준을 예산에 두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논리하에서는 예산을 많이 받아오면 혜택을 받은 것이며, 그만큼 힘이 있는 것이고, 자치단체장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둘째, 지역개발의 결과를 도로로 보려는 경향이 많다. 도로를 개설해주면 배려를 해준 것이라 생각하고, 지역주민도 감사하게 생각했다. 이러한 의견의 일치로 인해 도로는 계속해서 지역균형 차원에서 증가해갔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자기지역에 하수종말처리장이나 쓰레기매립장 등의 시설을 허용한 지역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이 도로 개설의 경우가 많았다. 지방정부입장에서는 주민이 기피하는 시설을 설치할 수 있어서 좋고, 지역주민들은 이동의 편의성이 담보되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도로개설의 결과 도로주변 지가의 상승이 되어서 좋은 점도 있었다. 이렇게 지방정부와 지역주민들이 궁합이 맞았던 점도 도로를 많이 개설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국가기관인 제주지방국토관리청과 같은 중앙정부의 역할이다. 이 국토관리청은 도로의 유지관리보수도 중요하지만 도로의 확장과 개설에 많은 부분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잘못 개설된 도로는 예상치 못한 피해를 인간에게 안겨준다. 사진은 지난해 9월 11일 집중오후시 잘못된 도로개설로 엄청난 침수피해를 당한 구좌읍 일대.
제주도의 개발을 위해서는 물론 도로가 필요했고,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은 국토관리청 조직의 생리상, 조직의 유지와 확장을 위해서는 예산을 확보해야 하고, 그 예산의 확보를 위해서는 도로를 개설하거나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2호선과 16호선 국도의 확장사업, 굴곡노선 직선화사업 등을 끊임없이 추진하고, 동부산업도로의 확장, 심지어는 많은 자연을 훼손하는 5.16도로의 확장사업에 대해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섯째, 비대화된 토목산업과 이를 유지하려는 정부와 지자체의 경기부양방식의 문제이다. 한국사회내에서 토목산업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환경부보다 건설교통부의 규모가 십수배에 이르는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산업계구조에서도 토목산업의 비중은 만만치않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제주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제주의 경제구조를 보면 1차산업(농어업)이 16.7%, , 2차산업(광공업․제조업)이 3.7%, 3차산업(건설업,관광업)이 72%를 차지하고 있을정도로 건설업의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대공황이후, 그 원인과 처방을 고민하던 중에, 저명한 경제학자 케인즈는 공공건설사업을 일으키는 방식을 주장하였다. 도로, 항만, 공항 등 대규모건설사업을 일으켜 토목업계를 살리고 소비를 진작시키면 자연스럽게 경기부양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방식은 유효했고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흔히 쓰는 방식이 되어왔다.

한국사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정부는 대규모의 토목사업을 발주하였다. 제주도에서도 올해초부터 공공사업을 빨리 발주한다고 공표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제주도의 경기부양방식도 토목산업에 기대고있다. 토목산업에서도 도로공사는 가장 수월한 공사에 속했다. 이러한 원인으로인해 한국사회내에서, 특히 제주도내에서 도로개발은 무분별하게 이뤄져왔던 것이다. /계속 [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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