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은 지금 20] 놀이패 '한라산'공연에 마을은 웃음바다

 

▲ 공연 의례회관에서 마당굿 공연이 있었다. ⓒ 장태욱

 

잔치가 예정된 날이라 이른 아침부터 강정마을이 분주했다. 부지런한 정경보씨가 8시경에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목에 현수막을 걸었다. 저녁에 의례회관에서 놀이패 '한라산' 주관으로 마당굿 '세경놀이'가 열린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비슷한 시간에 의례회관에 강동균 마을회장과 양홍찬 위원장 등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마을잔치에 대비해 손님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함이다. 강동균 회장은 유치장에서 석방된 지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필자에게 환한 미소와 함께 농담 섞인 인사를 던졌다.
 
"이 모자 멋있지 않아? 일을 할 때는 뽐 나게 입어야 한다니까."

 

▲ 현수막 마당굿이 열린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현수막을 걸었다. ⓒ 장태욱

 

잔치에 필요한 돼지 한 마리를 구입하기 위해 주민 몇이서 트럭을 끌고 나갔다. 그사이 의례회관의 주방에는 아주머니들이 모여 음식 장만할 준비를 하였다.
 
남아있는 주민들은 마을을 단장하기로 했다. 우선 의례회관 마당 구석구석에 나뒹굴고 있는 휴지들도 치우고, 예초기를 이용해서 무성하게 자란 잡초도 베어냈다.

 

   
▲ 의례회관 주방 아주머니들이 주방에 모여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 장태욱

의례회관 단장이 끝날 무렵 제주도 선관위에서 양홍찬 위원장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잔치가 열리는 동안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이나 해군기지 문제에 관한 발언을 하는 것이 법에 저촉됨을 상기시켜주기 위함이다.
 
의례회관 단장이 끝나고 나서 중덕 해안으로 갔다. 중덕해안이 해군기지 예정지로 지정되고 나서부터는 평화를 염원하는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이곳에 평화를 상징하는 여러 조형물들이 세워지니  중덕해안은 평화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주민들이 투쟁을 이어오는 동안 중덕해안에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장마철을 맞아 올레꾼들의 발길마저 뜸해진 사이 잡초들이 올래길마저 덮어버렸다. 강동균 마을회장을 필두로 장정 여럿이서 예초기를 메고 풀을 베기 시작했다. 무성했던 풀잎이 제거되니 금세 길이 산뜻해졌다.

 

 

▲ 예초작업 중덕해안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주민들이 예초기로 풀을 베고있다. ⓒ 장태욱

 

정오가 가까워올 무렵 기다리던 돼지가 돌아왔다. 솜씨 좋은 주민들이 모여 돼지를 부위별로 분리해서 요리하기 좋게 장만했다. 비로소 잔치준비가 끝났다.
 
오후 두시 경 주민들이 의례회관으로 모여들었다. 잔치는 술과 고기를 곁들인 점심식사로 시작되었다.
 
"자네들, 마을에 기금이 많이 부족하다는 거 알고 있네. 적지만 오늘 잔치에 보태시게."
 
잔치에 빈손으로 오기 미안해서 어르신이 내미는 돈 봉투를 강동균 마을회장이 미안한 표정으로 받았다. 주민들 간 이어온 끈끈한 정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 술자리 잔치에 술과 고기가 빠지지 않는다. ⓒ 장태욱

 

두 시가 좀 지나서 놀이패 '한라산' 대원들이 의례회관에 도착했다. 주민들이 차려준 잔칫상을 맛있게 먹은 '한라산' 대원들이 의례회관 마당에 무대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긴 대나무 막대기 끝에 색깔 있는 여러 개의 천을 묶어 사방으로 길게 내린 것이 과거 이웃집에 푸닥거리할 때 종종 봤던 시설이다.
 
외부에서 또 다른 손님들이 찾아왔다. 지난 2년 동안 강정마을 주민들과 고락을 함께했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다. 이들을 반갑게 맞은 주민들이 고기가 곁들인 푸짐한 술상을 내놓는다. 그간 겹겹이 쌍인 회포를 언제 다 나눌 수 있을까? 손님들과 주민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6시가 되었다. '한라산' 대원들이 앞장서서 길트기를 시작하니 흥겨운 풍악이 마을에 진동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흥이 난 주민들이 길트기에 참여했다. 길트기에 참여했던 주민들이 '한라산' 대원들을 따라 의례회관에 모여 들었다.

 

   
▲ 웃음 남녀노소 구분없이 주민들이 즐거워했다. ⓒ 장태욱

 

놀이패 '한라산'이 준비한 공연은 '땅 지킴이 들네 이야기'라는 제목의 마당굿 '세경놀이'다. 들네는 세경놀이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세경놀이는 총 네 마당과 뒷풀이로 구성되었다. 첫째마당은 자본의 침투에 의한 제주 농촌 공동체의 붕괴를 얘기하고, 둘째마당은 밭에서 일하기를 좋아하는 들네가 밭에서 백장동티(뒤로부터 겁간을 당한다는 뜻)를 당하고 시집의 냉담함 속에 길을 떠나는 장면을 서술한다.
 
셋째마당은 들네가 자신을 뒤따라 나선 정남이와 삼신할망의 도움으로 불구인 아기(팽돌이)를 낳는 내용을, 넷째마당은 팽돌이가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통해 역경을 이겨나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 공연장면 들네가 삼신할망의 도움으로 아기를 낳는 장면이다. ⓒ 장태욱

 

들네 : 아이고 배여, 아이고 배여!
정남 : 무사마씸?
들네 : 애기가......, 아이고 배야!
정남 : 맞다, 맞다, 삼신할망!
삼신할망 : 애기 나오잰 햄져. 강 물그릇 가져오라.
 (정남이 물그릇 가져오자)
삼신할망 : 야! 고만이 사지마랑 시렁목해당 애기어멍손에 심지라.
들네 : 아이고!
삼신할망 : 할마님아, 할마님아! 금줄 같은 손으로 애기머리 돌여줍서.
들네 : 으으으......,
삼신할망 : 기여, 잘햄져. 다 경허는 거여.
 
셋째마당에서 들네가 애기를 낳는 장면의 일부분이다. 걸쭉한 제주방언에 배우들의 과장되면서도 익살스러운 연기로부터 주민들이 눈을 떼지 못했다. 고통스러운 장면을 웃음으로 극복하는 해학이 할머니들 얼굴에 눈물과 웃음이 뒤섞이게 하였다.

 

▲ 폭소 '아기 젖좀 먹여달라'는 광대의 요청에 관람석에 앉은 아주머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 장태욱

무대에서 관중석으로 넘어가 아주머니를 붙잡고 '우리 애기 젖 한번만 줍서'라고 하며 아주머니에게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기도 하고, '애기 키우잰 허난 우유 값이 어시니 돈 좀 보탭서'라며 어르신 지갑에서 돈을 꺼내게 만들기도 했다.
 
무대와 관중이 서로 다르지 않고, 주민과 외지인의 염원이 서로 다르지 않은 곳이 강정마을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이 강정마을에 밤이 깊어갔다.<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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