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추적 60분', '2005년 노숙자 보고서' 파문...노숙자 문제 이젠 쉬쉬할 일 아니

   
지난 23일 밤 KBS는 '추적 60분'을 통해 "2005년 노숙자 보고서-서울역 25시"라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1월 22일 서울역에서 발생한 노숙자 2명의 사망 사건과 관련, 당시 노숙자들의 강한 의혹 제기로 경찰과 대치하는 초유의 사태를 빚은 상황과 맞물려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목격자의 제보에 따라 제작된 것이다.

서울역의 노숙자는 50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 수는 서울시 전체 노숙인의 3분의 2에 이르는 수치다. 추적 60분은 서울역 노숙자 사망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면서, 동시에 제작진이 15일간 목격한 서울역 노숙의 실체를 생생하게 담았다. 

제작진이 서울역 노숙자를 대상으로 면접조사한 결과, 70%이상의 노숙자가 주 당 2병 이상의 소주를 마시고 있는는 등 심각한 알콜중독 문제 또한 드러냈으며, 그 동안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노숙자 알콜중독 치료 프로그램인 '비전트레이닝센터'를 공개했다.

이어 제작진은, 해외 현지 취재를 통해 프랑스의 대표적인 노숙인 집약지 '리옹역'을 찾아, 주거 지원에 힘쓰는 프랑스 노숙 대책을 살펴봄으로써,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프로그램이 방송된 이후 추적60분 시청자게시판에는 노숙자들을 당장 '강제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정부차원의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잇따라 올라오는 등 치열한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필자가 보기로도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와는 다르게, 자칫 노숙자들 대부분이 알콜중독자나 범죄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인 것처럼 비쳐질 우려도 있었지만,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주기에 인색하고 싶지 않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의 방영내용 중 제주에서 생활하다 올라온 노숙자 '김씨'의 입을 통해 제주 노숙자들의 실상이 전국에 생생하게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 (담당PD) 노숙생활 7년째인 그는 제주에서 생활하다 서울역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제주도에는 이런 쉼터가 없어 가지고 거기는 다 빈집에서 자요. 특히 뭐가 문제냐 하면 물 못 먹는 것하고, 또 사람이 먹다보면 오줌도 싸야 되잖아요"

- (담당PD) 거기(제주도)는 무료배식은 안해요?

"무료 배식은 점심 때 딱 한번 있습니다. 제주도 그 사람들이 여기 와서 생활해 보면 놀랄 것 같아요"

김씨의 말을 종합하면 제주의 노숙자들은 매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숙자들에게 있어 서울역은 '호텔급'이고, 제주는 '여인숙'인 셈이다. 무료 배식도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2001년부터 탑동에서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나누어주고 있는 구세군 제주영문교회의 제현우 사관은 '추적 60분'이 방영된 이후 필자와의 통화를 통해, "작년 12월 서울로 올라간 김씨가 올해 초 '쉼터'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전화연락을 받았는데 TV에서 그가 아직도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어 참으로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아직도 공식적으로 "노숙자는 없다"고 한다.

노숙자는 분명 존재한다. 이번 KBS 보도의 김씨 이야기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듯이, 또한 제현우 사관의 말에 따르면 구세군의 탑동 무료급식 장소에 작년 여름에는 90여명, 최근에는 50여명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참여환경연대 기관지, '참세상 만드는 사람들' 2004년 겨울호 참조)

한 두명이 아니라 탑동-동문시장-산지천-여객선터미널 일대 이른바 '노숙자벨트' 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객선 부두는 육지가 고향인 노숙자들에게 일종의 복귀를 위한 '마지막 출구' 같은 희망의 장소라고 제 사관은 얘기한다.

추적60분은 최근 발생한 서울역 '노숙자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제 사관의 말에 따르면  탑동에서 노숙자들에게 무료급식을 시작한 2001년 이후 벌써 세 번이나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제주지역에서도 매년 한 명꼴로 노숙자들이 길거리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에 관심을 갖는 시민들은 거의 없다. 서울역 인근에는 노숙자들을 위한 '상시분향소'도 마련돼 있다는데...

이제 더 이상 제주지역의 노숙자문제를 '쉬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공영방송인 KBS에서 제주지역 노숙자들의 실상이 공공연히 방영된 이상...

구세군이 3년 넘게 무료 급식공간으로 사용해 오던 탑동파출소는 지난해 여름 이후 '범죄발생 가능성'을 이유로 사용중단을 통보했으며, 이 추운 겨울 칼바람 속에서 노숙자들은 탑동의 벤치와 화장실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현우 사관은 주장한다. "노숙자의 실체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이를 우선 인정하고 그들의 자활과 사회진출을 돕기 위한 근본적 지원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무(三無)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표방되던 제주다. 최근 정부로부터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가 진정 평화의 섬이 되기 위해서는, 노숙자들의 삶의 개선을 위한 행정당국의 관심과 누군가의 첫걸음이 필요한 때다.


* 제현우 사관은 '노숙자'라는 말이 삭막하고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길 위의 사람들'이라고 불러 줄 것을 부탁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네티즌들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그냥 노숙자란 명칭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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