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GO!GO!]까칠남 고태진 씨의 변신 사연"12시면 밥먹어야 하는 공무원에겐 괴로운 첫 출전 기억"

까칠한 남자였다. 고태진(54) 씨는 회사에선 까다로운 직장 상사, 집안에서는 날카롭고 엄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랬던 그가 마라톤이 주는 고통의 한계를 넘자 이해심과 배려심을 겸비한 ‘부드러운 남자’로 변하고 있었다. '마라톤GO!GO!' 취재기자는 고 씨를 만나기 위해 안개비가 섞여 촉촉한 바람이 불었던 8일 이도그린공원을 찾았다.

고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활력을 되찾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마라톤을 적극 추천했다.

▲ 마라톤이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까지 지켜줬다고 말하는 고태진(54) 씨. ⓒ이미리 기자
“운동 자체가 신진대사를 좋게 하고 활력을 돌게 하잖아요. 특히 마라톤은 ‘하이런’이라고 해서 달리는 동안 희열을 느끼는 순간도 있지만 그 과정만 계속되는 게 아니라 ‘왜 이런 운동을 하고 있나’라는 고통이 따르죠. 고통을 여러번 겪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긍정의 힘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고 씨는 이날 아침에도 28km를 뛰었다고 했다.

제주도청 생활환경과에 근무하면서 도청 마라톤 동호회 ‘도르미’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 씨는 작년에는 도르미 회장직을 맡았고 올해는 고문으로 활동중이다.

그는 3년전 춘천마라톤대회에서 ‘머리를 올렸다’(마라톤 애호가들의 용어. 대회 첫 출전을 의미). 당시를 고 씨는 “완전 죽었죠. 뭐.”라고 한 마디로 표현했다.

“마라톤 코스 중간에 5km마다 식수대가 있고 20km가 지나면 요깃거리가 있잖아요. 저는 마라톤 경험이 없던 터라 이걸 다 먹으면 뛰는 데 지장을 줄까봐 거의 안 먹었어요. 그런데 30km가 넘어가니까 너무 허기진거예요. 당시 대회 시작이 10시였으니까, 공무원들은 12시면 칼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데 2시간이 넘도록 굶고 있었으니 말 다했죠.”

4시간 36분만에 허기진 배를 부여안고 피니시 라인에 서자마자 고 씨가 찾은 것은 요깃거리였다. 완주의 기쁨을 즐길 새도 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빵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본 동료들은 이후에도 ‘처량하게 보이더라’고 우스갯소리를 덧붙일 정도다.

고 씨의 표현대로 ‘지옥에 다녀온 기분’을 느끼게 한 첫 마라톤 이후 ‘재도전’을 할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다시는 나보고 마라톤 하란 소지 하지 말라고 했죠. 그런데 해단식을 하는 순간 마음이 바뀌는 거예요.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이 공항에 마중 나와 환호를 해주는데 거기서 힘들었던 기억이 다 날아가요.”

고 씨는 마라톤 경력 3년 동안 풀코스만 9번이라는 적지 않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힘들고 귀찮아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은 격려와 환호를 아끼지 않는 마라톤 동료들 덕분이다.

“동호회는 같이 대회 참가도 하고 서로 격려도 하고 힘이 되죠. 사람이 살아가는 즐거움이라는 게 더불어 파이팅하고 잘못되면 격려하고 그런거 아니겠어요. 서로 정보도 주고, 인간관계도 다양하게 쌓고요. 그래서 동호회가 좋죠.”

   
요즘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온 대학생 아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고 있다. 비날씨가 계속돼 매일 달리지는 못하지만 날씨가 좋은 날이면 오전 5시에 일어나 사라봉까지 달려간다. 그는 마라톤을 하는 습관을 아들에게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마라톤이 생활이라든가 성격의 변화를 주면서 아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거라 생각해요. 요즘 젊은이들이 개인주의에 빠져있어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기초질서를 지키는 데서도 약하잖아요. 고통을 극복하는 이런 운동을 하면서 앞으로 인생 사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얻었으면 해요.”

고 씨는 오는 9월 27일 진행되는 ‘제2회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대회’와 오는 10월 11일 개최되는 ‘인천대교 개통기념 국제마라톤대회’와 에 참가할 예정이다. 2주 차이인데 괜찮겠느냐는 질문에 고 씨는 “끄떡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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