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보덕사'에서 열린 '야단법석 음악회'

▲ 보덕사 경내 집 근처 보덕사에서 '야단법석 음악회'가 열렸다. ⓒ 장태욱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을 놓고 치열한 싸움이 재개되었다. 탐욕에 빠진 이 사회 기득권 세력들의 횡포에 맞서 주권을 지키고자 나선 주민들의 몸부림이 끊임없이 계속될 전망이다.

이 와중에 장마마저 쉽사리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작년 '촛볼정국'때도 정권은 장마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광장에서 드넓은 대지와 더불어 호흡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장마가 야속하기만 하다. 누군가는 올 여름을 윤흥길의 소설 '장마'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데로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고 기록할지도 모를 일이다.

▲ 민예총 허영선 지부장(좌)과 이도2동 강철수 동장(우) 행사는 민예총 제주지부가 주최하고 민예총 제주지부, 보덕사, 이도2동이 공동주관했다. ⓒ 장태욱

장마가 끝났는가 싶더니 태풍 '모라꼿'이 찾아왔다. 비록 멀리 중국으로 상륙하면서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를 남기지 않았지만, 태풍의 간접적인 영향으로 장마에 이어 며칠째 비 날씨가 그치지 않는다. 혈관 깊숙이 퇴적된 습기를 날려버릴 상쾌한 산들바람과 반가운 소식이 기다려진다.

그리움이 깊으면 꽃이 핀다고 했던가. 토요일 저녁 심신이 처진 상태로 집 앞에 차를 세웠는데 어디에선가 청아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집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있는 '보덕사'라는 절이다.

심신의 피로가 씻기듯 정신이 확 깨는가 싶더니 두 다리는 집에 들어가는 것도 잊은 채 저절로 보덕사 입구로 향했다. 절 입구에는 사람들이 왁자지껄 모여 있고, 그 틈 사이로 아주머니들이 운영하는 아나바다 장터가 눈에 띄었다. 담벼락에 붙어 있는 현수막에 '시민산사 음악회, 야단법석'이라는 문구가 독특하다.

야단법석이란 야외에 단을 세워 법회를 열고 그 자리에 명승을 초청해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니, 이 절에서 큰 법회를 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절 내에서 나눠주는 안내책자를 보니 짐작과는 다소 달랐다.

▲ 대웅전 마당 멀리 전시 중인 그림이 보인다. 저녁에는 이 뜰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 장태욱

이 행사는 보덕사가 주최한 불교행사가 아니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제주지회에서 준비한 음악회였다. 그리고 초대된 시민들에게 좀 더 다양한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보덕사 신도들과 이도2동 주민자치회가 공동으로 행사를 주관했다.

불교가 담장너머 일반에게 불교가 아닌 모습으로 자신를 드러내고, 불자가 아닌 시민들이 문화를 통해 불교를 체험하는 장이 열린 것이다. 불교와 불교 아닌 것이 문화를 통해 서로 경계를 허무는 자리다.

"여름은 덥고 습해서 짜증나기 쉽잖아요. 이럴 때 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푸른 잔디와 숲이 우거진 시원한 사찰에서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행사를 기획했어요. 보덕사에서도 많이 양해해 주셨고, 이도2동 자치회에서도 많이 도와줬습니다. 시민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행복합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민예총 제주지회 허영선 회장의 말이다. 허영선 회장을 행사장 입구에서 만났는데, 그의 집도 마침 보덕사 근처라고 했다. 필자와 서로 이웃임을 확인하고 반가워했다.

사찰 경내에 들어서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띤 것은 국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는 안내표지다. 보덕사 신도회에서 이번 행사를 위해 자원해서 제공하는 국수였다. 시민들 틈에 끼어 국수를 먹었는데, 버섯과 채소가 듬뿍 들어간 게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향이 일품이었다. 옆에서 외국인 세 명도 함께 국수를 먹고 있는데, 젓가락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 다도 체험 어린 여자 아이가 다도를 배우는 장면이다. ⓒ 장태욱

국수를 먹고 나서 극락전 뜰로 올라서니 전통 차와 전통다식을 맛볼 수 있는 체험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 맛보기 행사는 다도협회 관음지부에서 준비한 것이라고 한다. 어린 여자 아이가 다소곳이 앉아 어른에게서 차 마시는 예절을 배우는 모습도 보였고, 외국인들이 신기한 눈으로 다식을 맛보는 광경도 보였다. 우리 전통문화의 포용성이 남다르기 때문인지, 외국인들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다도 체험이 열리는 맞은편에는 한지공예 작품들을 전시하고 한지공예를 직접 체험하는 행사도 열리고 있었다. 한지를 이용해서 만든 인형이나 손거울 등을 보면서 방문객들이 깊은 관심을 표했다.

▲ 다식 체험 한 외국인이 차와 곁들어 먹는 다식을 맛보는 장면이다. 우리 문화를 대하는 외국인들의 태도가 전혀 어색하지 않아 보였다. ⓒ 장태욱

극락전 안을 들여다보았다. 불자들이 쉬지 않고 절을 하고 있는데, 어린이들이 그 옆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놀고 있었다. 밖에서 잔치가 열리는 동안에도 스님들과 신도들의 예불은 그치지 않았다.

보덕사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언덕 꼭대기에 대웅전이 있다. 그 대웅전 앞뜰에 시민들의 긴 행렬이 늘어서 있었다. 부채에 그림과 글을 써주는 서예퍼포먼스가 열리고 있는데, 이날 준비된 체험행사 중 시민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듯했다. 서예가 김진호씨가 쉬지 않고 부채에 작품을 남기는 동안, 부채가 모자랄지도 모른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기도 했다.

▲ 서예 퍼포먼스 부채에 붓으로 글씨와 그림 작품을 남기고 있다. 줄이 좀체로 줄어들지 않았다. ⓒ 장태욱
 

대웅전의 북쪽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에는 연꽃이 뒤늦게 하얀 꽃망울을 터트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연못 인근에는 또 다른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리현도씨가 전통등과 창작등을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체험행사다.

극락전의 뜰은 시민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넓었다. 뜰의 동쪽 가장자리에서는 사찰과 야생화를 소재로 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찰 사진은 이병철씨가, 야생화 사진은 오승룡씨가 준비한 것이라고 한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그림들이다.

다채로운 체험행사들을 두루 둘러보는 사이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7시를 넘기면서 체험행사들은 모두 마무리되었고, 장내에 방송을 통해 8시부터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는 '야단법석 음악회'를 준비할 것임을 알려왔다.

▲ 극락전에서 두 어린이가 불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장태욱
 

대웅전 뜰에 간이 의자들이 준비되고 무대에 조명이 밝혀졌다. 사회자 김은미씨가 음악회를 이끌기 시작했다.

음악회에는 가수 한영애씨가 히트곡 '누구 없소' 등을 불렀고, 부산대 국악과 강사인 방병원씨와 문성철씨가 아리랑 등 우리 민요를 연주했다. 프로젝트그룹 '모레노트'가 재즈연주와 노래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공연 중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법능스님의 노래연주였다. 법능스님은 출가전 <광주출정가>를 작곡한 민중가수 정세현으로 더 유명하다. 1993년 출가하여 현재는 전남 화순에 있는 불지사에 안거중이라고 한다.

▲ 법능스님 음악회가 열리기 전에 범능스님이 미리 노래를 선보이는 장면이다. 법능스님은 <광주출정가>를 작곡한 민중가수로도 유명하다. ⓒ 장태욱

'가라 좋은 벗 있으면 둘이서 함께가라

가라 좋은 벗 없으면 버리고 홀로가라

달빛엔 달처럼 별빛엔 별처럼 바람 불면

바람처럼 가라'

법능스님의 노래 <무소의 뿔처럼(고규태 작사, 범능 작곡)>의 가사다. 평소에 즐겨 읽는 불경 숫타니파타의 구절을 스님의 노래를 통해 다시 만나니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행사 마지막은 이도2동 민속보존회가 맡았다. 민속보존회는 제주의 굿 가락을 사용해 신과 인간이 신명으로 하나됨을 표현한 '신풀이'라는 작품을 시민들에게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 시민들 음악회에 불자들과 일반시민들이 많이 참석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장태욱
 

행사가 열리는 동안 혼자 보기 아까워 아내와 아이들을 부르려고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아내는 마침 주말이라 애들 데리고 친정나들이를 갔다고 했다. 통화 끝에 휴대폰에는 웃음 섞인 한마디가 남았다.

"교회 집사님 맞아?"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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