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들, 좀더 용감해야 한다

과학관련 서적을 재미있게 읽고 그 내용을 요약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송고했다. 그리고 그 기사가 첫 화면에 노출된 것을 보면서 과거시험에 급제한 것처럼 기뻐했다. 2005년 1월, 그렇게 설렘과 기쁨으로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4년 넘게 시민기자로 글을 써오면서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수입은 얼마나 되느냐”라든가, “한가지로도 힘이 들건 데 어떻게 생업과 글쓰기를 병행 할 수 있느냐”라는 내용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시민기자는 돈을 벌기위해 글을 쓰는 자들이 아니라 그저 기본적으로 두 가지의 여백을 채우는 일에 종사하는 자들이다. 만약, 이 두 가지 여백이 없다면 시민기자는 존재할 근거를 잃게 되는 것이다.  

 

 

▲ 강동균 마을회장이 법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날이다. 주민들이 애타게 기자들을 기다렸지만 기자는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당일 법정에서는 치열한 법정공방이 이어졌고, 검찰의 영장신청은 판사에 의해 기각되었다.

그 여백 중 하나는 언론사 혹은 언론사에 속한 상근기자들이 남겨놓은 여백이다. 대개는 기성언론인들이 취재대상으로 삼지 않는 분야, 지나치게 전문적이어서 전문적 식견을 갖춰야 다룰 수 있는 분야, 취재를 희망하면서도 언론사 여건상 취재를 할 수 없는 영역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래서 글쓰기 대상을 선택할 때도 시민기자와 상근기자 간에 큰 차이점이 있다. 상근기자는 사회적 관심사안을 주로 다루는 반면, 시민기자는 주로 남이 다루지 않는 ‘틈새시장’만을 공략한다는 점이다. 필자의 경우에 오랫동안 제주의 마을들을 소재로 글을 써 올수 있었던 것은 기성언론이 오랫동안 이 ‘틈새시장’을 여백으로 남겨둔 덕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여백은 시민기자 개인의 생활가운데서 찾아야하는 것이다. 대개의 생활인이란 대부분의 시간을 본업에 종사하거나 가정을 돌보거나 종교 활동에 참여하는 등의 사적 영역에 사용한다.시민기자로 글을 쓰는 것은 일주일에 7일, 하루 24시간의 제한 된 시간 중 사적 영역에 투입하고 남는 여백을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투입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이 개인적 삶의 여백이란 말처럼 쉽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직장에서 혹은 개인 사업장에서의 환경이 취재 현장에 다녀오거나 도서관에서 자료를 수집하는 따위의 활동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도 꾸준히 글을 쓰고자 할 때에는 적절한 여백을 만들고 채우기 위해 적잖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제한되고, 현실은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 주민소환투표가 발의되고 처음으로 지난 10일에 서귀포 중앙로터리에서 집중유세가 열렸다. 하지만 이곳에도 주민들이 기다리는 기자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자들이 현장을 보지않고 기사를 쓰면 어떤 기사가 나올까??

지난 5월에 제주도지사와 정부당국간에 해군기지건설에 관한 업무협약서가 체결되면서 필자는 강정마을에 들어가서 기사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기본협약서 체결로 해군기지 건설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마을 주민들의 저항도 더 처절해 질 것이라는 예상에서다.그리고 그 현장을 누군가는 기록해야할 것인데,딱히 누가 그 일을 할 것 같지 않다는 판단도 있었다.필자 나름대로 ‘가치 있는 여백’을 찾은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애초 예상과는 달리 해군기지 반대 싸움은 김태환 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운동으로 이어졌다.그리고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유권자들의 충분한 서명을 통해 주민소환투표 발의로 이어지기 까지 했다. 

유사 이래 최초로 광역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자,그동안 눈길도 주지 않았던 중앙 유력지들이 제주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운동과  강정마을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필자는 이 마을의 문제가 전 국민의 관심거리가 된 마당에 지역 언론사들도 이 문제를 더 이상 여백으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도내 유력 언론사들이 강정마을을 찾아 주민소환운동에 나선 마을 주민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더 나아가 언론의 관심이 마을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권의 노력을 이끌어 낼 지도 모른다고 희망도 품어봤다.그렇게 되면 그동안 언론의 여백을 채우기 기울여왔던 필자의 노력도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강정마을 주민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언론의 여백에 남겨진 상태다. 심지어는 위미 해군기지 반대 투쟁에서부터 해군기지 싸움에 가장 선두에 섰던 <제주의소리>마저도 강정마을 주민들의 투쟁현장에 상근기자를 파견하는데 매우 인색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 강정마을 주민들이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주민들의 얼굴에 흐르는 물이 땀인지, 눈물인지, 빗물인지 현장에 있던 필자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현장에 기자를 파견하지 않은 언론사가 무슨 명목으로 이 사안을 논할 것인가?

지역 언론에 관련 기사가 나오기는 하지만 어디에서도 현장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고,언론사 스스로의 가치판단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기사가 있다면 주민소환운동본부와 김태환 소환대상자의 하루 일과를 두고 기계적으로 무게를 맞춰서 작성한 박제된 기사이거나,책상에 앉아서 끄적거린 탁상공론만이 있을 뿐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시민기자 활동은 여백에 근거할 때 지속 가능한 것이다.그런데 시민기자 개인의 여백이란 누구에게든지 마찬가지지만 그리 충분한 것이 아니다.이 현실에 필자 역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전국민의 관심대상으로 부상한 강정마을 주민들의 투쟁현장에 일개 시민기자가 홀로 카메라를 들고 설치며 ‘자기만의 기사’를 써야하는 현실을 지역 언론인들은 뭐라고 설명할건가? 

이제 지역 언론사 상근기자들이 나서서 그들이 그동안 남겨뒀던 여백을 채워줄 때다. 이 문제에 <제주의소리>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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