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은 지금 26] 주민들과 순례에 동참한 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 양윤모씨

지난 14일 6박7일 일정으로 시작한 강정마을 주민들의 도보순례가 그 절반 일정을 넘어서고 있다. 남녀노소 할 거 없이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신념으로 강정마을을 출발한 주민들은 제주섬 절반을 넘게 걸어 제주시를 지나 애월읍 하귀리에 있는 하귀성당에 머물고 있다.

아스팔트 차도를 100킬로미터 넘게 걷다 보니 무릎이 상하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젊은이들도 밤이면 고통을 호소하기 일쑤다. 그런 마당에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와 팔순 노인을 포함한 순례대원들은 '생명평화' 깃발을 들고 불평 없이 대열을 지키고 있다. 고향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이리도 강한 것일까?

▲ 양윤모씨 전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을 역임한 양윤모씨가 강정마을 주민들과 도보순례에 함께 했다.
ⓒ 장태욱
그런데 이번 순례길에서 이전에 강정의 마을행사에서 보지 못했던 얼굴이 눈에 띄었다. 투명한 피부에 긴 흰머리를 늘어뜨린 모습에서 농촌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눈치챌 수 있다.

그런데도 주민들과는 격이 없이 '형님', '아우'를 연발하며 막걸릿잔을 기울이고 있다. 처음에는 강정마을 출신인데 고향을 떠나 살다가 도보순례에 참여한 출향민이라 여겼다. 알고 보니 작년 도보순례에 참여해서 일주일 가까이 주민들과 고락을 같이한 이후 서로 친분이 돈독해진 사이라고 한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을 역임한 양윤모씨다.

먼저 인사를 드렸더니 "장태욱씨가 당신이구나? <오마이뉴스>에서 강정마을 기사 많이 봤어. 나 당신 좋아해"라며 화통하게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는 필자 대하기를 격이 없이 동생에게 하듯 하는 것을 두고 친화력이 좋다고 판단해야 하나?

▲ 양윤모씨 도보 중에 잠시 비를 피해 앉아있다.
ⓒ 장태욱

양 전 회장은 제주시 건입동이 고향이고, 제주동초등학교와 오현고등학교를 졸업한 제주인이다. 그럼에도 그가 제주를 고향이라고 찾은 것은 대학 진학 후 30여년 만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찾은 고향은 제주시 건입동이 아니라 바로 강정마을이다.

"75년도에 대학에 입학한 이래 제주에 올 일이 별로 없었어. 그런데 정부에서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짓겠다고 하면서, 모든 것을 무력으로 통과시키려하는 것을 보니 분노가 솟구쳤지. 2008년에 주민들이 도보순례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얼른 달려왔지."

2008년 그가 30여년 만에 제주를 찾을 당시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영화배우 김부선·연극배우 권병길, 영화감독 김경형·윤인호·임순례·임창재, 촬영감독 이동삼씨 등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에 앞장섰던 영화인들을 함께 제주로 불러들였다.

이들은 지난해 8월 22일에 제주도청 정문에서 회견을 갖고 "진정 국익과 국민 안녕을 위해 제주해군기지 계획은 철회돼야 한다"고 밝혀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또, 22부터 24일까지 열린 '강정마을 생명평화축제'에 참여하여, 영화상영·영화교실·영화감독과의 대화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축제를 더 알차게 했다.

"해군기지 소식을 처음 접하고 나서 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고민했어. 상호간에 신뢰를 쌓고 서로 친화될 수 있어야 진정한 연대가 가능해지는 거잖아. 강정마을 주민들도 처음에는 외부인들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을 거야. 이런 경우,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진정성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지. 지난해 평화축제에서 청소년들과 연화인들이 함께 영화교실을 열었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야."

▲ 양윤모씨 숙소에 지지방문 온 농민회원들을 맞고 있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똑 같은 심정으로 지내고 있다.
ⓒ 장태욱

그는 지난해에 개최했던 행사들이 단순 이벤트가 아니라고 말했다. 자신은 늘 강정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고민한다고 했다.

"이제 강정마을 주민들은 나를 마을 주민으로 대해주잖아. 26일에 치러질 주민소환투표가 중요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잖아. 난 투표가 끝나면 주민등록상 거주지를 강정마을로 옮길까 생각 중이야. 내 선도적 노력이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해. 대규모로 거주지 이전 투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어."

강정마을에 많은 영화인들이 다녀갔지만 아직까지 그 영화인들의 손을 통해 이 마을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2년 넘게 생업을 포기하고 마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노력이 영화로 이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에 대해 양 전 회장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했다.

"한 가지 사안이 영화로 제작되기 위해서는 대중 전반이 그 문제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거지. 그리고 감독이 그것을 몸에 익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창발성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해. 그런데 영화를 통해서 강정마을의 문제를 대중에게 알리려면, 현지토착 예술인들의 노력이 필요한 거야. 특히, 최근에 다큐멘터리 영화가 많이 발전했잖아. 그런 의미에서 동규와 같은 역할이 매우 바람직하지(제주출신 양동규 감독이 강정마을을 소재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서 올 5월에 환경영화제에서 우수상을 받은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 숙소 마당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듯하다.
ⓒ 장태욱

 

 

그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6박7일의 도보순례 일정을 끝내고도 제주에서 할 일이 남아있다고 했다.

"난 강정마을 주민들을 위해서 뭐라도 좀 더하고 싶어. 일단 주민소환운동본부에서 며칠간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할 거야."

양 전회장에게는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중학교 3학년생인 딸이 있다고 했다. 남편을 지금도 "형"이라고 부르는 그의 아내가 생계를 포함한 모든 집안일을 책임지고 있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늘 "당신에게는 집안일보다 더 중요하게 해야 할 일들이 있다"며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준다고 했다.

끝으로 군사기지를 반대하는 이유 말고도 강정마을을 다시 찾은 또 다른 이유가 없는지 물었다. 강정마을에 부당하게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막아야하겠다는 정의심 말고 그를 강정으로 이끄는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내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곳에는 절대 가지를 않아. 이렇게 주민들과 어울려 며칠 동안 걷다보면 내 안에서 잠자던 뭔가가 자꾸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지. 내게 강정마을은 예술가로서의 영감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곳이야."

도시생활을 오래 한 양 전 회장에게 걷는 것이 보통 고통스러운 것이 아닌 모양이다. 잠을 잘 때 자신도 모르게 밤새 신음소리를 내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옆에서 잠을 자려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신음소리는 밤새 숙소를 진동하고 있다.

 

양윤모씨는

1956년 생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졸업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역임
강우석필름아카데미 초대교장
스크린쿼터영화인대책위원회 집행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2004년 영화 '끝나지 않는 세월'을 사랑하는 모임의 공동대표
2006년 2월에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 주도
2007년 3월 백기완 선생 오충일 목사 등과 함께 '한-미 FTA 체결에 반대하는 각계 인사 1000인 선언'을 발표
2007년 대선정국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측 문예선거운동본부에 합류
2008년 8월 동료 영화인들과 제주해군기지 반대 입장표명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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