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성산포항의 새벽풍경…세상의 빛과 소금

▲ ⓒ김민수

손끝이 시리다.
두 손을 꼭 마주잡아 차가운 손끝을 녹여보려고 하지만 시린 손을 쉽게 녹지 않는다. 아직 남아있는 겨울의 한기가 온 몸을 흔들어놓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춥다.

어젯밤 밤하늘에는 무슨 별들이 그리도 성성한지 "얘들아, 나와서 별 좀 봐라, 이렇게 별이 맑은지 모르겠다."하고 아이들을 마당으로 불러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게 했다.
"와, 별이 쏟아질 것 같아."

정말 그랬다.
내일 새벽에는 일출이 곱겠다.

문득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소금이다"하는 성서의 말씀이 떠오른다.

'저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 그리고 소금처럼 맛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구나.'

그렇게 꿈을 꾸고 맞이한 삼월 첫 날의 새벽 성산포항에 서서 멜(멸치) 작업을 하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아직은 어둠이 깊어 불을 밝히고 밤새 잡아온 멸치를 드럼통에 담는다.

▲ ⓒ김민수

하나 둘 드럼통이 채워지는 것을 볼 때마다 채워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채워지려면 비워져 있어야 하는 것이구나 생각하며 '텅 빈 충만'이 이런 것일까 음미해 본다.

바람이 차갑고 서있기 조차 힘들 정도로 바람이 분다.
새벽바람이 드세기도 해서지만 해뜨기 직전이 가장 춥다고 했다. 성산포항을 서성거린지 5분도 안되었는데 온 몸이 떨리고, 손끝이 시리다.

바다에 나갔던 다른 배들은 아직 도착을 안 한 것인지 성산포항은 한가롭고 멸치를 집어먹으려는 갈매기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끼룩거린다.

채워진 드럼통은 또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그 곳에서는 소금을 뿌려 저장을 시킨다. 숙성이 되면 멸치젓이 되어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양념이 되기도 하고, 오겹살을 노릿하게 구워 찍어먹는 양념장도 될 것이다.

▲ ⓒ김민수

배에서 올라온 멸치들은 흡사 보물 같다.
드럼통 하나마다 채워지고 또 채워지는 것이 신나기만 하다. 하루 종일 채워도 비워지지 않으면 좋겠다. 물론 너무 많아서 값이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난 TV 아니면 출연을 안 하는데 이렇게 추운 날, 이른 시간 왔으니까 모델하는거우다."

그랬다.
밤새 바다에서 풍랑과 싸우며 피곤한 그들, 만선기를 펄럭이며 나갔다 기름값, 인건비도 못 미칠 정도면 사진기를 들이대는 낯선 이가 반갑지 않다. 언젠가 한 번 "사진 찍어도 될까요?"했다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싫은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그래서 늘 삶의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사진기를 들고 다가갈 때에는 조심스럽다.

▲ ⓒ김민수

갈매기들이 신났다.
어부들의 수고를 훔쳐먹는 것 같아서 밉상스럽기도 하지만 갈매기 없는 바다, 만선기를 펄럭이며 돌아오는 배에 갈매기떼가 함께 하지 않으면 얼마나 을씨년스러울까 생각하니 도시의 쓰레기통을 탐하며 살아가는 도시의 잿빛비둘기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얼핏 배의 이름이 '해신'인가 했다.
다시 보니 '해진'이다. 배마다 이름이 있다. 사람들에게 이름이 있는 것처럼 배에도 저마다 의미를 담아 이름을 붙였다. 그 안에 들어있는 꿈, 소망은 만선의 꿈일 것이다.

▲ ⓒ김민수

밤새 밤바다에서 잡아 올린 멸치를 부지런히 올리는 이들의 입에선 하얀 입김이 올라온다. 그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비린내가 아니라 사람 사는 냄새, 살 맛나게 하는 냄새다. 그들의 몸짓을 바라보면서 감사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세세하게 모르지만 '당신들이 있어 세상이 맛있습니다'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예수의 말이 다른 말이 아닐 것이다.

세상을 맛나게 하는 사람이 있고, 그 맛난 세상을 맛없게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맛나게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세상을 맛나게 하는지 잘 모르고, 맛없게 만들어 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한다.

▲ ⓒ김민수

▲ ⓒ김민수

이 사람들의 땀방울과 이 사람들의 손길, 그리고 이들과 같은 익명의 보이지 않는 이들의 노동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잊고 살아간다.

덜 수고하고 많이 벌어야 능력 있는 것처럼 포장된 세상,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못 사는 것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학벌중심의 세상, 차곡차곡 모아 집도 마련하고 부를 축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되어버린 투기가 극성부리는 세상이 어떨 때는 진저리치게 밉다가도 이런 이들에게 위로를 받는다. 이런 이들을 볼 때마다 '당신들이 있어 세상이 맛있습니다.' 감사를 한다.

▲ ⓒ김민수

드럼통에 담긴 멸치들이다.
이제 소금에 버무려져 숙성이 되고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또 많은 보이지 않는 손길들의 수고가 있을 것이다.

'아, 저 작은 것들이 모이고 모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렸을까?'

그들도 한 생명이다.
넓은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며 살아가던 생명들이다. 그 생명들을 먹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단지 먹이사슬의 폭압자가 아니라 생명을 먹고 살아가기에 또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그 폭압자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 던질 수 있을 것이다.

▲ ⓒ김민수

소금에 버무려진 멸치들은 밀봉되어 삭혀진다.
항을 오가는 뱃소리를 들으며, 파도소리를 들으며, 갈매기떼들의 비상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성성한 눈을 뜨고 자유로이 유영하던 바다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삼월 첫 날, 성산항에서 맞이한 새벽.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만나느라 일출을 놓쳤지만 일출보다 더 아름다운 이들의 끈끈한 삶을 보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붉은 홍시 같은 해가 바다 위에 둥실 떠있다.

우리의 삶을 맛나게 해주는 이들, 그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 김민수님은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는 것을 즐겨 합니다. 자연산문집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 '을 방문하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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