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은 지금 27] 도보순례를 마친 주민들, 풍성한 뒤풀이로 마무리

▲ 도보순례 강정마을 주민들이 도보순례 도중 산방산 앞 해안도로를 지나고 있다.
ⓒ 장태욱

지난 2년여의 기간 동안 해군기지철회 투쟁을 이어오던 강정마을 주민들이 제주도일주 도보순례를 마무리하고 20일에 마을로 돌아왔다. 지난 14일 주민들은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강정마을을 출발해서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은 서귀포를 지나 제주도의 극 동쪽 성산을 거쳐 제주시내를 통과하여 극 서쪽 고산을 거쳐 강정마을로 돌아오는 총 190킬로미터의 길을 걸어서 완주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천주교 제주교구가 도보순례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성당을 개방했다. 주민들은 순례 첫날은 남원성당에서, 둘째 날은 성산포성당에서, 셋째 날은 조천성당에서, 넷째 날은 하귀성당에서, 다섯째 날은 한림공소에서, 여섯째 날은 모슬포성당에서 여정을 풀고 잠을 잤다.

▲ 어린이 도보순례에 아빠를 따라나선 어린이가 시원한 물이 든 병으로 아빠의 목에 열을 식혀주고 있다.
ⓒ 장태욱

지난 7일 동안 주민들은 모진 여름 날씨와 사투를 벌여야했다. 출발 첫날은 하루 종일 폭우가 쏟아져 운동화가 질퍽거리는 가운데 순례를 지속해야 했고, 둘째 날은 뙤약볕 속에서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등에 땀이 흐르는 무더위와 싸움을 벌여야했다. 그리고 다시 셋째 날에 소나기가 두어 시간 내린 이후로는 끝까지 무더위가 지속되었다.

도보순례 이틀이 지날 때부터 주민들은 발가락이 갈라지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아픔을 감수해야했다. 그리고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발목부터 종아리까지 아려오는 고통도 견뎌야했다.

"주민소환투표 홍보에 왜 이리 인색한가?"

▲ 발바닥 한 주민이 바늘과 실을 이용해 발바닥에 잡힌 물집에 물을 빼고 있다. 도보순례 이틀 째 되는 날부터 주민들은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 장태욱

도보순례를 하는 동안에도 지인들을 통해서 주민소환에 관한 도내 여러 상황들이 주민들에게 알려졌다. 여러 가지 소식들 중 주민들을 가장 분노한 것은 일부 공무원들의 투표방해 행위가 도를 지나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현직 공무원들이 대중들이 모인 자리에서 투표 불참을 유도하는 발언을 하는가하면, 공무원들이 마을회장 등을 동원해서 주민들에게 투표에 응하지 말 것을 종용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관련 사항을 두고 검찰이 뒤늦게 조사에 나섰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유신 독재정권시절에나 있을법한 일이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주민들의 분노가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제주도를 일주하면서 두 가지 서운한 마음이 가슴에 자리잡았다고 토로했다. 그 중 한 가지는 제주선관위를, 다른 한 가지는 지역 언론사들을 향한 것이다.

제주도를 일주하면서 주민들이 각 마을 어귀에 설치된 각 현수막 게시대를 들여다본 바에 의하면, 8월26일에 주민투표가 실시된다는 홍보 현수막이 걸린 곳은 몇 되지 않았다. 선관위가 '기권도 권리다'고 주장하는 김태환 소환대상자의 주장에 동조한 것이 아니라면, 왜 이렇게 주민투표홍보에 인색한 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다른 하나는 지역 언론사들의 의도적 무관심에 대한 서운함이다. 주민들이 도보순례를 하는 동안 중앙언론사들도 강정마을 주민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주민들을 찾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과 <한겨레> 등이다.

중앙언론사들도 이 기간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데 반해, 지역 언론사들은 도보순례에 대해 대부분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주민들은 지역 언론사들이 김태환 소환대상자의 '민생탐방 연출'을 매일 내보내면서도 마을을 지키기 위해 많은 주민들이 뙤약볕을 맞으며 거리로 나온 사실은 애써 외면하는 지역 언론사들의 보도 태도에 대해 '실망을 넘어 기가 막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주민들이 도보순례 5일째 되던 지난 18일 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한림읍 수원리 수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던 중 부고를 접한 주민들은 이후의 일정을 놓고 회의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주민소환운동본부와 협의하여, 서거 당일만 유세를 잠정 중단하기로 하고, 이후의 도보수례일정과 유세일정은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마을 주민들은 "김 전 대통령이 과거 야당 총재시절에 풀뿌리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지방자치제도를 부활시켰다"며, "위기에 내몰린 제주도 주민자치를 회복하는 것이 김 전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의 장례절차를 의식해서 김태환 소환운동을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 낮잠 도보순례 중에 잠시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 잠이 든 모습이다.
ⓒ 장태욱

도보순례 마지막 날 주민들은 이른 아침 모슬포성당을 출발하여 사계리 산방산 앞을 지나 화순에 이르렀다. 애초에 유세차가 화순에서 유세를 계획하고 있었지만, 폭염을 피해 거리에는 걸어 다니는 주민이 없었다. 결국 거리 유세를 포기하고 유세차가 골목골목을 돌며 주민소환투표를 안내하는 방송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주민들은 안덕계곡 입구를 지나 서귀포시 예례동에서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에 중문 사거리에서 중문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주민소환투표를 호소하는 유세를 열었다. 그리고 아스팔트 열기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가운데 강정마을로 걸음을 재촉했다.

도보순례를 마친 120여 명의 주민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들을 위해 풍성한 뒤풀이가 준비되어 있었다. 마을 청년들이 어르신들을 위해 돼지 한 마리를 기증했고,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소주와 막걸리를 준비했다.

"민주주의는 아무나 하나"

▲ 건배 뒤풀이에 술이 빠지지 않는다.
ⓒ 장태욱

주민들이 저녁 식사를 마칠 무렵 민중가수 최상돈씨 사회로 장기자랑이 열렸다. 지난 5월 지녁 MBC노래자랑에서 수상을 했던 정영희 여성위원장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민주주의는 아무나 하나?  ……"

정위원장이 가요 '사랑은 아무나하나'를 즉석에서 개사해 노래를 부르자 주민들이 갈채가 이어졌다.

정위원장의 노래가 끝나자 서귀포시의원을 역임했던 윤상효 전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윤 의원은 주민들을 향해 "오늘 여기에 오시기까지 우리는 너무 위대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했다"는 말해, 완주의 감격을 나누기도 했다.

▲ 뒤풀이 민중가수 최상돈씨의 사회와 기타반주로 장기자랑이 열렸다. 흥겨운 노래와 춤으로 도보순례에서 느꼈던 고단함도 잠시 잊었다.
ⓒ 장태욱

도보순례를 위해 서울에서 일부러 강정마을을 찾은 양윤모 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도 마이크를 잡았다. 양 전 회장은 "강정마을에 와서 삶이 무엇인지, 행복하고 풍요롭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말한 뒤, "여러분들을 알고부터 인생의 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고백했다.

해군기지저지 주민대책위 양홍찬 위원장도 마이크를 잡고, "여기까지 올 때까지 함께 참여해주신 주민들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말한 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신념으로 최선을 다하자"고 당부했다.

▲ 노래모임 '모다정' 노래패 '청춘'과 노래모임 '모다정'이 주민들을 위문하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 장태욱

강동균 회장도 주민들을 향한 마무리 인사말에서 "이렇게 든든한 주민들의 협조가 있으니 이후 무슨 싸움이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주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날 마을 뒤풀이 행사에 노래패 '청춘'과 노래모임 ' 모다정'이 노래로 주민들을 위문하여 주민들에게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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