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소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2) 민심을 쫓아라
거버넌스보다 ‘직관력’에 절대적 의존...공직사회 장막 찢어야

“아직은 우리가 더 자세를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도민들과 대화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것을 민생투어를 통해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주민소환투표는 승자도 없고, 패자고 없습니다. 도민 여러분께 많은 걱정을 안겨드린 것뿐입니다.
(직무정지당한) 20일간 도민과 민생투어를 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 공직자가 대화의 폭을 보다 더 강화돼야만 하겠다, 도민들이 도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겠다, (제주도가 추진하는) 어떤 시책이든 그대로 (도민들의) 가슴에 와 닿도록, 있는 그대로 대화를 나눠달라...
그게 바로 도민통합을 위한 길이고, 소통을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민소환투표로 인한 20일간의 직무정지를 끝내고 업무에 복귀한 김태환 제주도지사의 일성이다. 주민소환이 무산된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인 공무원들과 마주한 직원조회에서 그는 새삼 ‘소통’을 화두로 삼았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치적 운명이 흔들릴 수도 있었던 주민소환투표가 제주해군기지 찬반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배경에는 제주도정 즉 도지사인 자신과 도민 사이에 ‘소통부재’란 벽이 가로 놓여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대목으로 해석될 수 있다.

주민소환투표가 끝난 후 잇따라 발표된 각계 성명 논평에서도 “소환투표 결과에 자만하지 말고 민심의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주문이 주류를 이뤘다. 그리고 이들은 한결같이 ‘진정성 있는 대화’를 강조했다. 즉 일방이 아닌 쌍방향 소통, 거짓이 없는 참된 대화를 촉구한 것이다.

# 제주시장시절 제법 소통했던 김지사 “대법원 무죄 판결 이후 확실히 변했어....”

예전 김태환 지사를 겪어본 사람들은 지금의 지사에 대해 ‘변했다’는데 이야기를 종종한다. 과거의 김 지사, 그러니까 제주시장시절이나, 그 후 재선거를 통해 제주도지사에 당선된 때만해도 그에게 이번 주민소환투표의 이유였던 독선이나 독주, 일방통행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을 받아 왔다. 제주시장 시절 환경시장이니, IT시장이니 하는 평을 들었던 것도 시민사회단체나 전문가 그룹과 항상 가까이 하면서 그들의 정책적 자문을 구한 효과가 크다.

김 지사는 제주도의회나 시민사회진영에서 자신을 향해 ‘독주’나 ‘제왕적 도지사’로 비판하는데 대해 “제 성격상 독주란 평가는 맞지 않다. 주변에선 제가 너무 좌고우면하고, 돌다리도 너무 두드리면서 간다고 한다. 또 좀 소신껏 일하라는 당부를 받는다”고 반론을 펼친다.

또 이런 말도 한다.

“성격이 유해서 주변사람들로부터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 ‘사람이 좀질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자신이 독선적이거나 제왕적이지 않다는 것을 항변하는 예다. 정치권에선 적어도 초기 도지사시절만해도 ‘맞는 이야기’라는데 동의한다.

그렇다면 언제 변했을까?

1차적 계기는 역시 행정체제개편으로 시장 군수가 폐지되고 제주도에 한명 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자치단체장인 제주특별자치도지사에 당선돼 과도할 정도의 권력이 집중되기 시작한 2006년 7월 이후라는데 대부분이 동의한다. 여기에다가 2006년 4월 선거법위반으로 기소돼 1심과 2심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6백만원을 선고받아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다가 대법원에서 그야말로 극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2007년 11월 이후 ‘확’ 변했다고 말한다. 이 재판 과정에 김 지사는 주민소환운동의 직접적 계기가 된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동의하고 후보지를 강정으로 선정하는 이른바 ‘도민의 뜻’을 앞세운 ‘여론조사 정치’가 시작된다.

# 해군기지 문제로 NGO와 금 가기 시작, 전문가 그룹도 반대그룹은 철저히 배제

김 지사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대법원 무죄판결 이후 좋은 말로 ‘자신감’이 붙었다고 할까? 행정 스타일이 확 바뀌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도 그 이전과 이후가 많이 달랐다. 이때부터 주변에서 독선이니 독주니, 그리고 지금 이야기가 나오는 제왕적 도지사, 불통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한 동안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시민사회진영과도 이때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중앙정부의 권한이양과 규제완화를 골자로 한 이른바 특별법 제도개선도 특별자치도 출범 전후만 해도 시민사회단체가 논의의 한 파트너였을 정도였지만 이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해군기지에서부터 정책적 대립이 시작되더니 이후 영리학교, 영리병원, 내국인카지노 등 김 지사의 표현을 빌더라도 ‘사사건건’ 대립되기 시작했다. 시민사회단체뿐만 아니라 전문가 그룹과도 마찬가지가 됐다.

주요한 도정 방향을 정하는 ‘워킹그룹’이나 ‘스터디그룹’ ‘태스크포스’에서 반대 목소리는 차단됐다. 이견을 보이는 전문가그룹이나 시민사회진영에는 무엇이 어떻게 논의되는지 정보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영리병원 논란 와중에 시민단체 제안으로 만들어진 ‘보건의료정책심의위’ 2기 위원회 구성에서 시민사회단체나 공공의료서비스 강화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전원 제외된 게 단적인 예다. 뇌물수수사건으로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 중 일부가 구속되는 등 환경영향평가의 객관성이 땅바닥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도내 환경단체는 환경평가 심의위 구성에서 배제됐다.

# 9급에서 춭발한 ‘직관력’ 지나치게 의존...‘공무원 벽’에 둘러싸여 민심과 ‘차단’

허진영 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는 “특별자치도의 출범 취지인 민의에 기반한 거버넌스(협치)는 실종되고 ‘배제’와 ‘선별’만이 남았을 뿐”이라고 꼬집고 있다.

대화를 하더라도 이미 도정의 방침을 결정한 후 거기에 꿰맞추는 일방적 대화가 시작되면서 소통이 불통으로 변해갔다.

제주대 양덕순(행정학과) 교수는 “도정이 나갈 방향을 미리 설정해 놓고 동참을 강요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의미가 없다”면서 “지금의 도정은 ‘도민들은 잘 모를 것’이라는 전제하에 자신들이 만든 정책의 ‘성취의 대상’으로 도민들을 보고 있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겉으론 도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척 하면서 도정 정책과 다르면 ‘귀’를 닫아버린다”고 꼬집는다.

김 지사가 주변으로부터 ‘일방통행’ ‘독선’ ‘독주’란 비판을 왕왕 듣는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직관력(直觀力)을 믿는다는데 있다. 9급 공무원에서 출발해 공무원의 꽃인 관리관(행정부지사)까지 오르고, 두 차례 민선 제주시장, 연이은 두 차례 도지사 선거 승리, 그리고 갖가지 정치적 고비를 넘기면서 그때마다 들어맞은 자신의 판단이 제주도정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계 인사는 “지사 본인이 직업공무원으로 30년 이상을 생활해 온 탓도 있지만, 자신이 어려울 때마다 가장 큰 힘이 돼 준 정치적 자산이 공무원이다 보니, 소통 대상이 도민사회가 아닌, 공무원으로 점점 변하고 있다”면서 “지금은 지사와 도민사이에 ‘공무원’이란 큰 벽이 쌓여 있다고 느낄 정도로, 어떤 때는 과하다 심을 정도로 모든 것을 공직사회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제주도정에 대해 조언하는 것은 마치 커다란 벽에 대고 나 혼자 소리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꽉 막힌 도정시스템을 꼬집었다.

전직 제주도 고위공무원 출신인 한 인사는 “김 지사는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5천명 공무원이라면 능히 자신의 눈과 귀가 돼 도민과 소통하고, 손과 발이 돼 도전역을 샅샅이 누비며 도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고 함정일 수 있다”며 “도지사가 공직사회를 장악했다는 것과 거꾸로 공직사회 장막에 갇혀 도민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과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충고했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70년대 공직생활을 해 왔던 경우라면 주민들의 욕구나 발언력에 대해 피상적으로 파악할 가능성이 있다”며 “강정마을이나 부안(방폐장)에서 보는 것처럼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끝가지 버틴다. 사업진행 자체가 안되거나 굉장히 지연된다. 목적사업이 정상적으로 추진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인식을 도지사가 인식을 가져야 한다. 목적수행을 위해서도 주민을 아우를 필요가 있다는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닫힌 마음을 확 열고 ‘민심’을 들어라||
양덕순 교수, “1% 제주, 반대한다고 배척한다면 남는 게 뭐가 있나”
고동수 사무처장 “솔직한 대화 했다면 지금 이 사태까지 안 갔을 것”
강창일 의원 “민주주의란 게 결과보다 소통과 과정이 중요”
박태순 소장 “이명박 대통령, 북 조문단 접견하고 DJ국장 치르니 지지도 높아져”

 

제주경실련은 27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김 지사가 만약 주민소환투표에서 이겼다고 현안사업들을 강력하게 밀어붙인다면 이는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며 "김 지사는 11%의 투표율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지, 이들에 대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배려하면서 남은 임기동안 정책이나 사업들을 추진해야 한다"며 민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주문했다.

이보다 하루 앞서 성명을 낸 제주상공회의소도 소환본부에 대해 “사회통합을 요구하는 도민적 요구와 시대적 요구를 결코 외면해선 안된다”고 당부하는 한편 김 지사를 향해서도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표출된 도정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해소하고 찬반 양측 모두를 아우르는 사회통합의 도정 기조를 정립해야 한다”며 주민소환투표를 촉발시킨 원인 제공자로서의 책임을 강조했다.

양덕순 교수는 “이번 투표결과가 도민의 뜻인 것은 분명하지만 거기에는 김 지사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서 (투표에) 불참한 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주민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심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냉철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제주가 그렇지 않아도 전국의 1% 밖에 안돼 중앙정부나 사회 각 방면에 다양한 네트워크가 부족한 상태에서 그나마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고 배제해 버린다면 과연 무엇을 갖고 제주를 이끌어 가겠느냐”며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내서 일반시민에서부터 특히 시민사회 진영과 전문과 그룹과의 격이 없는 소통이 정말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그는 “지금 시대에 주민들의 동의하지 않는 강한 추진력은 리더십이 아니다. 이제는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전문가 그룹이 도정의 카운터 파트너란 인식을 가질 때가 됐다”고 조언했다.

도의원 출신으로 김 지사의 정치 스타일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고동수 한나라당 제주도당 사무처장은 “김 지사에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정말 진정성을 갖고 도민을 대하라”고 말했다.

고 처장은 “김 지사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주민소환 사태가 벌어진 후 김 지사가 강정마을에 20일을 살았는데 도민사회에선 쇼로만 비쳐지지 않았느냐”며 “끝나는 판에 강정마을에 갈게 아니라,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 때부터 반대하는 주민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눴더라면 문제가 이 상황까지 가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시민단체들과도 솔직한 이야기를 나눴으며 주민소환투표라는 극한 상황까지는 안 갔을 것”이라며 “이제부터라도 정말 솔직하고 진지한 자세로 대화할 때 김 지사를 바라보는 도민사회의 인식이 달라 질 것”이라고 당부했다.

민주당 강창일(제주시 갑) 의원은 “자신과 생각이 다를수록 오히려 더 만나 일방이 아닌, 쌍방향 소통을 했더라면 이 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 아니냐. 국가 경제위기 속에 두 분의 대통령이 돌아가시는 등 나라 전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지금 이게 뭐냐”고 우려한고는 “민주주의란 게 결과보다 소통과 절차라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 지사도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 점은 분명하게 반성해야 한다"며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 소통임을 강조했다.

강 의원은 “중앙에서 시킨다고 다 할게 아니다. 영리병원도 지금 이처럼 제주사회를 갈등으로 몰아넣으면서 할 정도로 시급한 화두가 아니지 않느냐. 중앙정부에 대해서 ‘NO'라고 할 수 있는 배짱도 가져야 한다”면서 “지도자가 희망과 비전을 내 놓고 도민의 의견을 잘 수렴하고, 이해를 구하고 설득시켜 나가는 과정이 정치이자, 리더십이다”라고 말했다.

박태순 소장은 “도정 시스템을 바꾸면 민심이 달라질 것이다. 봐라 (명박산성으로) 한창 어려움을 겪던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 조문단을 접견하고, 고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름으로써 지지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지금은 화합을 위한 정책을 내 놓는 게 김 지사에게 유리하지 결코 손해가 안 될 것이다”라고 화합을 위한 소통을 거듭 강조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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