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GO!GO!] 부부마라토너 고영희, 전근일씨"마라톤을 함께 하면서 신혼 생활로 다시 돌아갔다"

“남편과는 성격, 취미가 모두 달랐다. 10여년이 지나면서 결혼생활이 너무 권태로웠다. 가족끼리는 할 얘기가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밥 먹기 바쁘고 애들 숙제 챙기고 앉으면 9-10시, 이때부터 TV봐야하고...”

비단 고영희(38), 전근일(43) 부부만의 얘기는 아닐듯. 많은 가정이 일상의 굴레에서 서로 바쁘게 지내다 보면 서로를 돌아볼 시간은 갖기 힘든 게 사실이다. 단, 고 씨 부부가 뭔가 다른 것은 이 권태로움의 굴레에서 ‘탈출’을 시도했고 또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는 마라톤을 통해 가능했다.

“사는 게 너무 재미없어서 안되겠다 싶었죠. 남편하고 같이 할 수 있는 뭔가를 찾다가 마라톤을 하게 됐어요. 남편 혼자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었는데 언젠가는 저한테 같이 하자고 말할 줄 알았어요. 남편이 먼저 끌어줘야 뭐든 잘 된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기다렸지만 남편이 도저히 안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제가 먼저 같이 뛰어보자고 했고, 의외로 괜찮은 시도였어요.”

이들 부부의 얘기를 지난 25일 도청 공원에서 고영희 씨를 만나 들어봤다.

▲ 함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나란히' 완주하고 있는 고영희(우), 전근일(좌) 씨 부부. ⓒ제주의소리
고 씨는 마라톤이 개인뿐 아니라 부부관계, 가족관계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특히 부부관계에서의 변화는 ‘신혼부부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는 말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같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공감대가 형성되니까 서로 할 얘기가 많은 거예요. 어떻게 하면 마라톤을 잘 할 수 있을까 등등 해서요. 주중에는 퇴근 후에 애들 숙제를 챙기고 나서 9시쯤 남편과 함께 연습하러 나와요. 남편이 옆에 있으니 어두운 길을 뛸 때도 좋더라고요.(웃음)”

처음에는 고 씨 혼자의 독주였다고 한다.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한 것은 남편이 선배였지만 적극적인 회원은 아니었다. 남편 전 씨와 함께 뛰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남편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 말로만 '하자'고 한 게 아니라 마라톤 대회에 직접 데리고 갔어요. 또 제가 열심히 해서 남편보다 실력이 월등해지니까 오기가 생겼던 것 같아요. 1년 뒤에는 저보다 더 열심히 하더라고요."

사실 고 씨에겐 반드시 ‘마라톤’일 필요는 없었다. 그저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면 족했다. 하지만 고 씨 주도하에 남편을 마라톤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면서 나타나는 ‘남편의 변화’는 고 씨를 ‘마라톤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게 했다.

“남편을 마라톤에 더 적극적으로 끌어들이 위해서 말로만 권한 게 아니라 대회 때마다 데려오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같이’ 열심히 하는 환경을 만들었는데 운동 후 1년쯤 지나니까 남편이 변하는 거예요. 술도 자기가 끊고, 친구 만나는 것도 줄이면서 집을 우선 돌보더라고요. 그 때 마라톤이 이렇게 좋구나 느꼈죠.”

한국 가정의 중심축은 아이들이 커갈수록 부부 보다는 ‘자녀’에게로 옮겨간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자녀의 삶을 살게 되는 것. 하지만 고영희, 전근일 씨 부부는 마라톤을 통해 부부만의 시간을 확보했고, 이것은 전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주중 두세 번은 퇴근 후에 애들 숙제 챙기고서 9시쯤 나와서 한시간 정도를 남편하고 같이 뛰어요. 주말에는 새벽에 동호회 활동을 하고요. 처음에는 저 혼자 뛰었었는데, 연습량이 저보다 적다 보니까 남편이 저보다 못 뛰는 거예요. 일 년 뒤쯤에 오기가 생겼나봐요 그 때부터 열심히 하더라고요. 부부가 같이 운동을 하니까, 14살 딸아이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처음에 엄마만 운동할 때는 엄마 혼자 생활하는 것 같아서 싫었는데, 이제는 아빠하고 같이 하니까 운동하다 늦어도 늦는 것 같지 않다‘”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행복한 대화를 나누자,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부모들 만의 공간과 시간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부부’가 행복하자 ‘가정’이 행복하게 됐다고 할까..

▲ 마라톤이 되찾아준 부부간의 화목이 인생의 기쁨이라고 말하는 고영희 씨(우). ⓒ제주의소리

이들은 이제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의 관계를 넘어 완주점을 향해 나란히 달려가는 마라톤 메이트다. 마라톤 대회 때면 종종 남편 전 씨가 피니시 라인에 같이 골인하자고 권한다고 한다. ‘페이스 메이커’로 함께한 것이다.

고 씨는 “인생이든 마라톤이든 혼자가는 길이긴 하지만 가정을 같이 꾸리는 거니까 뭐든 ‘함께 할 수 있으면’ 더 힘도 되고 빛도 나고 안정도 되고, 아이들도 보담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인생의 페이스 메이커로서 다시 부부 관계를 재설정한 고영희 씨, 전근일 씨 부부. 이들은 앞으로도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갈 계획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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