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은 지금 29] 소환투표 날, 마을에 한탄이 쏟아지다

 

필자가 드리는 말씀
 
저조한 투표 참여율로 인해 제주지사 주민소환운동이 불발로 끝났지만, 주민들의 해군기지반대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강정마을에 대한 기사를 중단할지 고민도 해봤지만, 마을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노력이 지속되는 한, 강정마을 주민들에 대한 기사도 계속 쓰기로 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은 글일지언정 자주 읽어주시고,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늘 격려와 관심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 26일 새벽 투표가 시작되기 전에 주민들이 투표장 입구에서 기다리는 모습이다. ⓒ 장태욱

지난 7일에 시작한 김태환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 활동이 25일로 막을 내렸고, 26일 운명의 날이 밝았다. 제주도 전역 226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투표가 시작되었다.

새벽 5시30분에 이를 무렵 강정마을 주민들이 강정초등학교 앞으로 모여들었다. 강정마을 투표소인 대천동 제 1투표소가 초등학교에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김 지사의 소환 여부에 마을의 명운을 걸고 있는 주민들은 투표소가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새벽 6시에 투표소 문이 열리자마자 주민들은 정해진 순서대로 줄을 지어 투표를 실시했다. 

▲ 투표장 앞 복도에서 투표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 장태욱

예전부터 마을 주민들은 투표할 때 지켜온 규칙이 있다. 상을 당한 상주가 우선 투표를 하고, 범띠 여성 중 임산부가 있으면 두 번째로 투표를 한다. 그리고 범띠 남성이 그 뒤를 이어 투표를 한다. 주민들은 이 규칙을 지키면 투표 결과가 주민들에게 유리하게 나올 것이라고 믿어왔다.

마침 모친상을 당한 윤재수씨 가족들이 상복을 입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그리고 범띠 임산부 김아무개씨와 범띠 남성인 조수준씨와 조성언씨가 순서대로 그 뒤를 이었다. 나머지 주민들은 이들의 투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한 표씩을 행사했다. 

▲ 주민들이 정한 순서대로 상을 당한 윤재수씨 가족들이 가장 먼저 투표를 했다. ⓒ 장태욱

마을 주민들 중 상당수는 서귀포시 각 마을에 마련된 투표소에 투표 참관인으로 갔다. 도내 226개 투표소에서 투표가 실시되는데, 소환본부에서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서 강정마을 주민들이 나머지 짐을 부담한 것이다.

투표율은 오전 내내 예상 외로 저조하게 나타났다. 선관위가 각 마을회관에 배포한 투표안내 방송문을 주민들에게 들려주지도 않은 마을이 대다수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주민들은 발을 동동 굴렀고,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격분했다. 투표소에 참관인으로 배치된 주민들도 투표율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 속을 태워야 했다.

▲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아들의 부축을 받고 투표장으로 들어서는 모습이다. ⓒ 장태욱
 
8시도 채 되기 전에 유권자들로부터 주민소환운동본부로 투표방해 사례들이 보고됐다. 대부분 마을 이장이나 부녀회원 등이 투표소 입구에서 투표장으로 가는 주민들에게 투표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는 제보들이다. 현장에서 선관위에 고발되는 마을이장도 있었다.  

서귀포시 예례동 어느 투표소 참관인이었던 강정마을 김종완씨는 김태환 지사 측 공보물 일부가 투표소 인근 전봇대 9개소에 부착되고, 한 남성이 투표장으로 가는 주민들을 되돌려 보내는 현장을 적발해서 소환본부로 신고하기도 했다. 

▲ 전봇대에 김태환 지사측에서 작성한 공보가 붙어있다. 강정마을 김종완씨가 투표를 참관하던 중 발견하여 폰카메라로 촬영했다. 이날 하루 도 전역에서 수많은 투표방해 행위가 발각되었다. ⓒ 장태욱

"지금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대규모 투표방해가 난무하는 건가? 선관위와 경찰은 뭐하는 건가? 완전히 자유당 시절로 되돌아간 거야."

마을회관에 앉아서 상황을 주시하던 주민들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한탄이 쏟아져 나왔다. 주민들의 분통은 소환투표를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세력들은 물론이고, 단속에 손을 놓고 있는 선관위와 경찰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선관위가 집계한 오전 전체 투표율은 5% 안팎이었다. 주민들 사이에서 이미 주민소환은 물 건너갔으니 당장 다음날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논의해 보자는 의견이 오가기도 했다. 주민소환이 불발로 끝날 경우, 의기양양해진 김 지사측이 해군기지 사업을 밀어붙이게 될 것이라는 판단과 그에 따른 위기의식에서 나오는 발상이다.

▲ 강정마을 해군기지 싸움에 빠지지 않고 앞장서는 어른들이다. 투표율이 발표되자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장태욱

 결국 11%대의 사상 유례 없는 저조한 투표율을 기록하며 석달 넘게 이어온 주민소환정국은 마무리됐다. 강동균 마을회장은 주민소환본부에서 저녁 8시에 시작될 대표자회의에 참석했고, 나머지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양홍찬 위원장 주재로 이후 대책을 논의했다.

주민들은 주민소환투표 결과에 대해서는 주민소환운동본부의 논의 결과를 따르기로 했다. 다만 주민소환투표의 결과에 상관없이 이후에도 해군기지 투쟁은 이어가기로 합의했다. 

▲ 투표율이 발표되고 주민소환이 무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주민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이후 대책을 논의하는 장면이다. ⓒ 장태욱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해낸다, 독한 놈이 이긴다."

회의를 끝내면서 주민들이 주먹을 들고 외치는 함성이 마을회관 밖으로 크게 울려 퍼졌다. 주민소환투표는 기대 이하의 투표율로 끝났지만, 주민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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